매거진 아기와 나

대수로울 것 없는 하루

올해 초의겨울 어느날

by 윤신

오늘도 대수로울 것 없는 하루다.

무슨 밥을 먹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쓸까 고민하는 전형적인 주부의 하루.


스스로를 주부라고 생각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비행기 입국 서류의 직업란에 무심하고 무의미하게 써넣던 버릇처럼 무직이라 여겼을 뿐이다. 생활 살림을 부끄럽게 여겨서나 그 역할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 나 같은 불량 주부가 있을까 하는 마음. 매 끼니 뜨끈한 밥은커녕 청소나 정리에도 서툰 데다(못하면 점점 멀어지는 법이다) 나만의 깨알 같은 살림 팁도 없는 주부가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군상이 있으니 다양한 주부가 있을 테지만 스스로를 당당히 주부라 일컫기에 너무 살림에 성의가 없다. 지금도 그렇다. 서랍 속 복잡한 사물들도 널브러진 거실도 그대로다.

다만 살림에 대한 감각은 조금 변했다. 집안에 도는 고양이 냄새를 털어내기 위해 하루 한 번 이상은 꼭 환기를 시키고 식사 때마다 반찬을 고심한다. 역시나 그렇다고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매 끼니의 메뉴를 생각하는 시간이 훌쩍 길어졌다. 뭐하고 놀지가 아니라 뭐해 먹지를 생각한다. 주부라는 인식을 한 것 역시 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주부로 인식한 순간은 그러니까 셋을 위한 밥을 뜨던 때다. 딱 한 끼 남은 쌀밥을 뜨다 딱딱한 부분을 당연하다는 듯 내 밥그릇에 푸던 순간 말이다. 난 어쩌면 이제 주부가 되었는지도 몰라. 밥솥에 밥을 안치고 반찬을 고심하고 빨래와 청소의 효율적인 시간을 생각하는, 일 인분의 주부는 아니라도 1/2 정도의 주부는 된 건 지도 몰라.

누군가의 뻔한 일상이 왠지 크나큰 발견이자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난 영 주부는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주부라는 자의식이 생겨도 역시나 대수로울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건 계절뿐만 아니다. 어린 아기와 보내는 하루 역시 고만고만한 소일거리와 생활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냄새도 색도 크기도 비슷한 날들 가운데 목적 없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점점 늘어난다. 나의 엄마와 나의 딸에 대한 생각. 이것 역시 난데없이 시작한다. 아윤이의 똥 싼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문득 말이다. 아윤이의 작고 동그만 엉덩이를 씻다가 정말이지 별안간 생각이 들었다. 아기의 똥이 온 손에 묻어도 괘념치 않는 나를 향해서였다. 만약 말이지. 만약에 말이야. 그런 시간이 온다면 어떤 마음일 거야? 엄마가 아윤이처럼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엄마의 볼일을 처리하고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 날이 온다면 지금처럼 선선하고 당연한 마음을 가질 거야? 그것도 아기를 키우는 일처럼 몇 년이고 이어진다면 말이야. 혹은 뜨는 해와 지는 해는 다르다고, 나의 뿌리와 나의 열매가 같을 순 없다고, 그렇게 생각할 거야?

어떨까, 난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잔잔하던 하루에 작은 생각 돌멩이가 던져졌다.

그리고 돌연 조금 슬퍼졌다.



대수롭지 않은 하루의 끝자락, 두꺼운 앨범을 정리했다. 그와 내가 만나고 아윤이가 나고 자란 몇 년의 시간이 수십 장의 종이에 내려앉았다. 역시 아날로그 방식이 좋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골라내어 인화한 사진들을 시간별로 기억 별로 두 자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앨범 한 페이지는 노란색으로 잔뜩 물들었다. 제주도의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다. 꽃밭 가운데 바람을 맞고 서있던 내 뱃속에는 4개월 된 아윤이가 있었다. 10센티의 작은 몸에 이제 막 솜털이 나기 시작했을 우리 아기. 우린 태교여행을 빙자해 늦봄 여행을 떠났다.

생각해 보면 제주도는 내게 각별한 곳이다. 5년 전 의사에게 '자궁을 들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한 후회는 '갖지 못한 나의 아이'와 '가보지 못한 제주도'였다. 결혼은 안 하더라도 내 자식은 한 명 낳았어야 하는데 하는 밑도 끝도 없는 후회와 타국의 섬이 아닌 제주도를 갔어야 했다는 영문 모를 아쉬움이었다. 별 뚱딴지같은 후회라는 생각도 들지만 억장이 무너지던 그때의 심정으론 내 인생에는 더 이상 분홍빛 아기도 파란 섬 제주도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둘이 내 눈앞에 있다. 섭지코지의 유채꽃밭 앞에서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으로 말이다. 노란 유채꽃 사이에서 뱃속의 아기에 손을 가만히 대고 노란 머플러를 휘날리며 환하게 환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이 좋은지도 모른다. 그 말은 '별것 아니'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하다. 장엄하고 격하게 몰아치는 파도가 아니라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을 닮았다. 대단하지 않은 보통의 일상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내는 닮고 다른 수많은 하루들.


아마 나는 내일도 대수로울 것 없는 주부의 하루를 보내며 길어지는 생각의 끝을 쫓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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