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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May 09. 2021

밀랍을 채울 심지 세우기

그림책 수업 두 번째

어떤 사람은 막연한 일에도 세세히 구획을 나누고 순서를 정해 나름의 구체적인 틀을 만들지만 다른 어떤 사람은 그저 막막한 마음으로 대책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는다. 넓고 황량하고 건조한, 그러니까 아주 팍팍한 '막漠'자가 두 번이나 들어간 무진장 막막한 마음으로 말이다. 굳이 이런 말을 구구절절 쓴 이유는 하나다. 난 후자에 속한다. 물이 차오른 수경을 덧쓴 듯 흐릿한 시야로 허공을 휘저으면서 발만은 동동동 구른 채로 서있는 막막한 사람 말이다.



요 몇 주간 그림책 만들기가 딱 그랬다. 

한없이 미루고 싶은 어린 시절 개학날처럼 수업 날짜가 오지 않기만을 손꼽으며 헛된 마음을 졸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으로 내 업보와 함께 퉁쳐서 미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다음 생이 있다는 전제와 다시 태어나고 싶은지에 대한 진지한 답이 먼저겠지만 다 필요 없다. 목적은 하나, 미루는 거니까. 

어쨌건 이번 경우엔 개학날이 칠일마다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각자 보낸 작업의 시간이 여실 없이 맨몸으로 드러나는 때다. 무연히 칸으로 분절된 흰 A3 크기의 종이를 보다 결국 연필을 들었다. 뭐라도 그려야지. 그려야만 해.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거지 뭐. 그런데 그림이라... 

난 뭘 그리고 싶은 거지? 

어떤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에 앞서 맨 먼저 고민해야 할 건 소재였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가. 



소재

나무, 시간, 아이, 꽃, 바다, 커피, 책.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가장 그림책에 담고 싶은 걸 생각했다. 순간 푸른 수영장과 세 살배기 나의 딸이 떠올랐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를 이야기할까, 딸에게의 사랑고백을 닮은 시를 그릴까. 둘 중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둘 다를 이야기에 담기로 했다. 아이가 수영하는 내용, 그래 그거면 되지.   



이야기

수업 시간에 받은 프린트물 첫 번째 문장을 생각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일지 써보자.' 먼저 거기에 내 답은 '아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는 기본적인 육하원칙을 생각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 것인가. 시나리오 수업 때 귀 흘려듣던 플롯이란 단어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같은 단어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아이는 수영을 처음부터 좋아했을까?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작가에 따라 그림책을 그리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디테일한 글을 완성한 다음 거기에 연상되는 그림을 구상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처음과 끝의 내용만 정한 다음 생각나는 대로 이미지를 그 사이사이를 채워나가는 작가도 있다는 것이다. 그림엔 영 소질이 없는 나지만 글보다 이미지나 느낌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단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림도 글처럼 하나의 언어에 속한다. 표현하고 교감하고 전달하는 하나의 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글이 먼저 완성되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만화책을 봐도 그림보다 글자에 집중하는 사람이니까.

총 32면에 들어갈 대략적인 이야기를 정하고 그에 맞춰 그림을 떠올리기로 했다. 아이가 수영을 주저하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물에 첨벙 들어가고 유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16장의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 언어로 먼저 적어내자. 수영의 기쁨을 어떤 감각으로 풀어낼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길지 않은 시간 끝에 짧은 두 장의 시놉시스와 스토리보드가 만들어졌다. 지금껏 열 번은 넘게 수정하고 복기하고 수정했을 한 장의 스토리보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고양이(집에서 동거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그려 넣기로 했다)를 어떻게 넣어야 어색하지 않을지, 말투는 '합니다' 체가 좋을까 '해요' 체가 좋을지 따위의 사소한 고민이나 세세한 대사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대충의 이야기는 완성된 셈이다. 그다음이야 어떻게 되든 그건 또 내일의 내가, 다음 주의 내가 갈등할 문제니 배턴을 넘기도록 한다. 일단 심지를 세운 게 어디야, 칭찬에 짠순이인 스스로를 토닥인다. 



한여름, 뜨겁다고 태양을 피할 순 없다. 정해진 둘레를 도는 해가 지구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 빛으로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각자 제 몫의 일을 하고 쉼을 하다 또 내일의 태양을 맞이해야 한다. 그 태양이 얼마나 크고 열도가 높고 마주하기가 힘든가는 상관없이 맞이하고 보내고 또 맞이해야만 한다. 사실 뭐 이런 거창한 말도 필요 없다. 막연하든 허무맹랑하든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맞이하라. 그림에 개발새발 젬병이라도 원기옥을 모으듯 한 장씩 만들어 꿰어야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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