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않는 이 자리를 소중히 여기는 힘
손가락 열 개, 발가락도 열 개.
눈 두 개, 코 하나 입하나.
내가 가진 신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이 딱 가진 만큼 보고 만지고 맡아요. 내 손의 한 뼘과 온기만큼 아이의 볼을 쓰다듬고 내 키에 맞춰 물건을 두고 내 시선이 닿는 만큼 바라보는 거지요. 두 다리의 폭이 지치지 않을 만큼 걷기도 하고요. 살짝씩 시간에 닳고는 있으나 나의 몸 구석구석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정해진 자리, 늘 있는 그곳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요.
몸이 형태와 자리를 가진 탓에 영향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면 그들을 갖지 않은 마음의 자세나 태도, 즉 정신은 능력에 있어 더 자유로울 줄 알았습니다. 펼치는 만큼 늘어나고 꼭 쥐는 만큼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거라고 기대했지요. 필요할 때 딱 펼쳐지는 우산처럼 내 마음도 능력을 펼칠 거라고요.
아마도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와 아빠라 불리던 사람이 헤어지던 나의 여덟부터요. 보이지 않는 머릿속에서 돋아나 날아다니는 날개처럼 내 마음도 내가 이끄는 대로 날아갈 거라 생각했어요. 위기 때마다 나를 구하는 건 결국 나 자신, 내 마음일 거란 생각이었던 건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나 환경은 어쩔 수 없으니 내 안에서 뭔갈 찾았던 건지는 몰라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일찍 안 거죠. 누구를 위해 무엇도 못하는 무력한 현실보다 색도 모양도 없는 마음을 바꾸는 게 나을 거라 여겼나 봐요. 그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서요.
요즘도 그 어려운 일을 견디는 중이에요.
가끔 밀려드는 우울이나 피로, 비뚤어진 마음을 바꾸려 하죠. 환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너무나 이쁜데 그와 함께 딸려오는 무한 반복의 일과 감정이 감당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너무나 다행인 것은 곁에 든든한 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가 아니었으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까만색으로 잔뜩 칠해진 데다 물에 한껏 젖은 스케치북 같았겠죠. 돌아보면 위기 때마다 나를 구하는 건 결국 내가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마음을 구하는 건 마음이지만요.
또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점이라면 '그래, 나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랄까요. 그나마 이것도 육아를 일 년 이상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체념이자 고백일 거예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처음엔 쉽지 않거든요.
오늘도 나의 두 눈과 하나의 코, 두 팔은 온통 아윤이에게 닿아 있었어요. 여린 두부처럼 말랑한 손을 잡고 장난기 가득한 눈을 맞추며 잠드려 하는 아가를 안았죠. 늘 제 역할을 하는 몸에게 고마워요. 정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도 굉장한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음에게도 고맙다고 토닥여봅니다. 그에게 연약한 개복치라고 놀림받는 몸과 마음이지만 오늘도 이렇게나 잘 살아냈으니까요.
아무리 한숨을 쉬거나 샐쭉거려도 결국 웃었던 시간이 훨씬 훨씬 길어요.
그걸로 됐습니다.
나는 요즘 이렇게 삽니다.
하루에 얼마큼 웃었나, 점심은 무엇을 먹나 간단한 생각을 하고 아이의 눈빛을 기억하면서요. 쏟아내기보다 잔뜩 담아내는 시간들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자리에서요.
아마 당신의 몸과 마음도 그렇겠지요.
멀리서나마 손을 뻗어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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