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의 기록

2021을 시작하며

by 윤신


질량이라는 단어가 주는 현실감이 좋다.

쉼표도 마디도 없는 육아를 하다 나 없는 내 인생에 대해 의문이 들 때면 체중계에 올라가 소수점 끝자리까지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만다. 나 여기에 있구나. 한 사람의 무게를 갖고 중력을 버티며 올곧이 서 있구나. 체중계 앞에 놓인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조금 피로해 보이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19년 늦은 여름, 여덟 시간의 진통 끝 결국 아랫배에 붉은 선을 가르고 나의 딸은 태어났다. 울음이 큰 아이였다. 온몸이 검붉다고 말하자 간호사는 일렀다. 원래 이런 애들이 피부가 하얘져요. 정말이었다. 이제 막 1년 4개월의 삶을 살고 있는 아가는 유난히 피부가 뽀얗다. 그리고 비치도록 얇은 검붉은 피부가 흰 살결이 되어간 딱 그 시간 동안 내 존재가 옅어져 투명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길을 걸어도 슈퍼에 가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그저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다. 어머니, 이것 좀 보고 가세요. 엄마, 오늘 오징어가 참 싸요. 아윤이 엄마라고 핸드폰에 저장하면 되죠? 나라는 개인이 엄마라는 거대 집단에 부분집합으로 먹혀들어 가는 순간들이었다. 그뿐 아니다. 나의 온 시간과 취향, 선택은 오직 유난히 하얀 아기만을 향한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 스스럼없고 자연스런 수순이다. 나의 호오나 안녕보다 아기의 즐거움과 안위를 우선에 두는.


그럼에도 가끔 나의 실재를 확인하고플 때는 체중계 앞으로 가 무게를 잰다.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는 물리적 힘을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는 육아 우울에 빠질 때면,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바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하루들에 지칠 때면, 아가의 조그마한 흰 손을 잡듯 내 몸의 질량을 떠올림으로써 나의 물질성을 감각한다. 이렇게 거대한 중력을 버티고도 사는데 별거 있어, 어떻게든 다 되겠지. 능청하고 뻔뻔한 마음을 갖는다.


매년 한 해의 목표랄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두는 편인데 올해는 그 첫 자를 쓰지도 못한 채 봄을 보냈다. 차마 파랗게 몽고점이 남아있는 아기를 키우며 미정의 계획을 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일 년, 종잇장처럼 가볍고 지문 하나 남지 않는 일상이 아쉬워 하루를 기록하고자 한 마음만은 지켰다는 거다. 아이의 첫 뒤집기, 이유식의 변천사, 쏟아낼 곳 없는 감정들을 적어 내렸다. 일상의 구슬 같은 순간들이 일기 속에서 반짝이며 남았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제는 녹록지가 않다. 검붉던 아기가 흰 조랑망아지가 되어버린 탓이다. 이리 퐁 뛰고 저리 팡 뛰는 아이와 오롯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사부작 거릴 힘의 여분이 없다. 책이라도 읽을라 치면 금세 눈을 감고 고양이 잠을 잔다.



육아는 체력이다. 점점 하루의 기록이나 하고 싶은 일보다 잠과 아기의 곁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선택처럼 이 역시 자연스러운 물길이다. 대대로 배꼽으로 이어져 몸에 새겨진 엄마의 역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못다 이룬 목표들을 하나씩 손에서 놓다 보니 어느샌가 몸이 둥실 가벼워진 것 같다. 어딘가 중력의 힘을 벗어난 모양이다. 손에 나 자신을 꼭 쥐었던 그 어느 때보다 안온한 마음이 든다. 둘만의 언어와 비언어가 늘어나는 요즘, 글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가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상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지금 우리의 시간이 그럴 것이다.


2021.

아직 어색한 숫자 앞에 역시나 하고픈 일의 목록보다는 딸의 까만 눈을 떠올린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작은 등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눈과 등에다 대고 가만히 약속을 한다. 숫자로 지어진 현실감을 확인하기보다 현실에서 발 딛고 살겠다고,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시간을 알뜰살뜰 살아내겠다고 말이다. 우리에겐 저마다의 질량을 버티고 살아내는 힘이 있으니 지금이 힘들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한번 몸이 둥실 공중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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