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늙고 아윤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 191001
찰떡이의 앙증맞은 발을 보다 피천득의 수필, 서영이가 생각나 다시 읽었다.
그의 막내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도 어쩌면 딸의 작은 발가락을 보면서 시작된 게 아닐까.
한없이 유약하지만 언젠가 내가 딛지 않은 미지를 씩씩하게 걸어갈 앙증맞고 보드라운 두 발.
한 번도 땅에 디뎌본 적 없는 딸의 작은 발바닥이 참 부드럽다.
네가 걷는 길은 어떤 길일까.
아빠랑 똑 닮은 발을 가진 넌 엄마처럼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날까.
아는 길을 돌아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향하고
목적지가 없어도 초조하지 않으며
길가 작은 풀들을 아끼는 이 대하듯 다정히 보는
'걷는 재미'를 아는 어른이 될까.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
서영이, 피천득
서영이를 읽던 나에게도 소원이 하나 생겼다.
내가 늙고 찰떡이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눈 오는 날 혹은 가을 냄새가 나는 날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어디든 함께 걷고 싶다.
서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하면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잔잔히 일렁인다.
[저작권 관계로 서영이 전문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서영이 , 피천득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 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냈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애에 가장 행복된 부분이다.
<중략>
결혼을 한 뒤라도 나는 내 딸이 남의 집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집살이는 아니하고 독립한 가정을 이룰 것이며,
거기에는 부부의 똑같은 의무와 권리가 있을 것이다.
아내도 새 집에 온 것이요, 남편도 새집에 온 것이다. 남편의 집인 동시에 아내의 집이요, 아내의 집인 동시에 남편의 집이다.
결혼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사랑은 억지로 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사람에 따라, 특히 천품이 있는 여자에 있어서 자기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아니하는 것도 좋다.
자기의 학문. 예술. 종교 또는 다른 사명이 결혼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의의 있을 것이다.
결혼생활이 지장을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퀴리 부인 같은 경우는 좋은 예라 하겠다. 여자의 결혼 연령은 이십 대도 좋고 삼십 대도
좋고, 그 이상 나이에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청춘이 짧다고 하지만 꽃같이 시들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고.
지금 나에게 이 축복받은 겨울이 있다.
장래 결혼을 하면 서영이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렇지 않으면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좋겠다.
그리고 다행히 내가 오래 살면 서영이 집 근처에서 살겠다.
아이 둘이 날마다 놀러 올 것이다.
나는 <파랑새> 이야기도 하여주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의 엄마처럼 나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장기도 둘 것이다.
새로 나오는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의 축복을 받겠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