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벌써 잊은 거야?

by 윤신


아이를 낳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즈음 우린 성혼선언문에 가까운 서약을 했다. 둘째를 가지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의 몸을 고이 즈려밟지는 않더라고 양 뺨을 살포시 연타하기로 말이다.


정신 차려. 무슨 소리야. 벌써 잊은 거야?

눈 밑이 시커멓도록 잠도 잘 못 자고 관절 마디마디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도 눕지 못하고 아이를 들쳐 안아야 하는, 머리가 떡지고 체력이 바닥인 그 시절을 다 잊은 거야? 아직 이 년밖에 안 지났는데?


서로의 안녕을 위해 뺨을 때림으로써 상기시켜주려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가졌다,

같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계속 아기가 보인다.

볼이 터질듯하고 살에 파묻혀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기들이 귀여워 죽겠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능력 밖의 일은 넘보는 게 아닌데.

잠시 귀여운 아기 끌어안겠다고, 젖내 나는 몸에 얼굴 갖다 대겠다고 수명을 단축시킬 것인가.

삶의 질을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것인가, 번뇌에 빠졌다는 얘기다.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후 직진 코스인 놀이터에 갔다가 아이 친구의 엄마를 만났다.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도 함께다.

어머. 축하해요.

어색한 웃음을 짓던 그 엄마는 잠시 배를 쓰다듬었다.

4개월이에요.

4개월이면 16주다. 난 그때 어땠더라. 그래. 입덧, 먹덧을 할 때야. 함께 그 고충을 얘기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그녀가 당장 겪어내야 할 일이었고 나는 변두리에 있었다.

아기는 심장부터 생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한 건 아이의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다. 강낭콩 만한 심장이 빠르게 뛰는 모습을 초음파로 보면서, 아직 팔다리도 생기지 않은 고것이 심장부터 벅차게 뛰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심장부터 태어났으니 그것을 따라가는 게 맞지. 그렇담 지금 내 심장을 뭘 원하는 거지?

사실 난 몇 번이나 그에게 뺨을 내줬다.

찰싹찰싹.

경쾌한 소리가 났다. 정신 차려. 잊은 거야?

난 정말 잊고 만 걸까?

아이 곁에서 함께 공룡 흉내를 하며 뛰어다니다 문득 궁금증이 들어 그 엄마에게 돌아갔다.

아, 혹시 지금 그러면 몇 살이세요?

아이의 엄마들은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아이가 곧 내 정체성이다.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현실을 똑바로 보려 용기를 냈다.

서른셋이에요.

아,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다.

내가 내 뺨을 때릴 필요도 없이 정신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욕심과 욕망이 사는 곳도 바로 이 현실이다. 간략한 대화를 나눈 뒤 눈웃음을 짓고는 그만 공룡의 역할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육아만큼 클리셰 범벅인 행위도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