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긴 산책의 묵상

생각도 산책만큼 길던 날

by 윤신


창문을 열었더니 개구리가 개골개골 노래한다.
노래를 한다.
우리 집 창을 마주한 큰 웅덩이엔 하나의 세계가 있다. 시끄러운 개구리와 말없는 올챙이, 높은음으로 특이하게 우는 새와 어두운 빛깔의 물고기가 있는 물의 영역이다. 밤이면 그 세계의 소리가 수백, 수천 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와 내 앉은자리까지 울린다. 긴 낮잠 탓에 느지막이 잠든 아가의 자장가가 되어준다.
개골개골 개골개골.



오늘은 한낮이 뜨거웠다.
큰 창으로 넘어오는 햇볕에 조금만 움직여도 더위와 짜증이 밀려왔다. 너도 덥지? 흥건하게 침이 묻은 에어컨 리모컨을 아윤이에게서 빼앗아 잠옷 자락에 닦으며 묻는다. 아기의 체온은 어른의 것보다 높다고 하는데 왠지 아기보다 내가 더 더위에 맥을 못 추고 늘어져 있다. 이 정도 날씨에 맥을 못 추다니, 대구 사람의 더위 부심이 무색하다.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건만.

발버둥 치는 마음으로 에어컨 작동 버튼을 누르곤 이내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원래 봄 더위는 여름보다 뜨겁고 늦가을 추위는 겨울보다 시린 거 아니겠어. 달뜬 마음을 식히는데도 에어컨은 필수다.


올해 첫 에어컨 개시 온도는 25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애매한, 다른 말로 하자면 딱 적당한 온도를 설정하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매일 해도 매일 쌓이고 아무리 해도 어디 하나 티 나지 않아 생색내기도 무안한 게 집안일이다. 그런데 또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일주일을 손 놓은 듯 보이는 것 역시 집안일이다. 시시포스의 현대판인 셈이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기 이유식을 먹이고 온 바닥의 고양이 털을 쓸고 난 뒤 짬을 내 버터쿠키도 만든다. 이제 막 반죽을 하고 동그랗게 모양을 내려는데 아윤이가 소리를 지른다. 저를 보라고 저를 안으라고 울상을 짓는다.
1분만 있어봐, 하고 말하지만 거짓이란 걸 아는 똑똑한 아기는 큰 울음이 터진다. 손에 묻은 반죽을 씻고 바지에 물을 털곤 달려가 아가를 들어 안는다.
아고, 심심했어? 엄마, 여깄네!


오늘의 바위를 산 끝까지 올린 뒤 아윤이와 산책에 나선다. 아니, 이 시간까지 바위를 올리는 일로 쳐야 할까. 내내 아기를 보살펴야 하지만 산책까지 '일'로서 치부하는 건 옳지 않다. 산책은 산책으로 두자.
집 나간(썰물을 말합니다) 바다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 유채꽃밭에 도착했다. 한참 때늦은 유채꽃이지만 알알이 핀 노란 꽃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그 한 시간을 걸으며 요 며칠의 감정을, 동해의 파도처럼 밀려오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운다.


여전히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는 내가 아이에게 굳세고 든든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기의 시간을 성장에 맞게 잘 채워주고 있을까,

이유식을 잘 먹지 않는 게 내 부족은 아닐까,

다양한 촉감과 놀이시간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제 이 작은 아기는 클까,

혹시 난 아기를 키우면서 너무 많은 욕심을 내고 있진 않은가.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노오란 꽃길을 걸었다. 그 사이 아윤이는 금세 꾸벅꾸벅 졸고 있다.
송글한 땀에 젖은 아가의 이마를 쓸어 넘기고 또 쓸어 넘긴다. 눈 감은 아기의 얼굴이 평화롭다. 그 표정이 내 손끝을 타고 불안과 걱정, 알 수 없는 내일과 책임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옮아온다. 찰랑이는 은은한 잔물결이 인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빤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라도 다들 하는 것만큼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일까만은. 결국 오랜 걸음에도 답을 찾진 못했다.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긴 산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듯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엄마'가 되자. 아윤이의 '엄마'가 되자.
각자에게 각자만의 엄마가 있듯 나는 아윤이의 엄마가 되자.
정답이 아닌 시시껄렁한 다짐을 내어 놓는 사이 아가는 잠에서 깬다. 얼굴을 찡그리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보고 함박 웃는다.
응, 엄마 여기 있어. 우리 아윤이, 잘 잤어?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디 가고 창으로 밀려드는 바람에 어깨가 쌀쌀하다. 개골이는 소리가 신기한지 한참을 바라보는 고양이 두 마리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문을 닫아야겠다.
한참을 걸었던 다리를 쉬게 해 주어야지.
한동안 뒤척이던 마음을 쉬게 해 주어야지.


돌꼇잠을 잘 아윤이 곁으로 가야겠다. 아가의 동그마한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야기해야지.
이제 엄마도 잠들 시간이야.
잘 자, 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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