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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Oct 28. 2022

나의 아저씨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 


엄마의 장롱 속에는 노랗게 변색한 흰 편지봉투들이 밤새 내린 눈처럼 소복이 쌓여있다. 정직한 우편 봉투들이 만든 오래된 단층이다. 과거의 유물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버리는 엄마지만 그것만은 낡은 신발 상자에 담아 애지중지 보물처럼 여긴다. 입지 않고 아껴둔 속옷과 스카프 아래에 편지들은 그렇게 잠수하듯 자리했다. 


사모하는 당신 보시오. 그리운 사람 보시오.


가끔씩 엄마 몰래 훔쳐본 글들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엄마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사람, 일명 아저씨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로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와 동생을 만나러 온 엄마 곁에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다. 곱슬곱슬한 머리칼에 아래로 살짝  처진 눈을 하고 처음 듣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아저씨. 그는 자꾸만 엄마 뒤로 숨는 우리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묻고 어떤 책을 좋아하냐 묻고 어떤 취미가 있냐 물었다. 참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 본 날 상주 읍내에 있는 옷 가게에 들어가 잔뜩 옷을 사주기도 했다. 생판 모르는 완벽한 타인의 친절이었지만 우린 선선히 받아들였다.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한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환했으니까. 하지만 이제야 그를 더 가깝게 이해한다. 그의 행동에 조금의 긴장이 들었던 것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엄마의 가족이었다. 그녀가 맨몸으로 지켜낸 유일한 가족이었다. 아저씨가 사랑하는 엄마가 사랑하는 금쪽같은 새끼들이었다. 


우린 다음 해에 화북에서 벗어나 엄마와 함께 대구에서 지냈는데 그해부터 아저씨는 간헐적으로 우리와 함께 살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철새처럼 한두 달 머물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다시 돌아와 지내곤 했다. 그렇게 그가 우리 집에 머물 때면 하루 이틀은 꼭 나와 동생을 바다로 산으로 데려갔다. 셋은 목적지도 없이 훌쩍 버스를 타고 걸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는 무수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런 기억이 모여서 어른이 되는 거라고, 유년을 유년답게 보내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그런 하루 이틀을 빼면 그는 대부분 책을 읽었다. 아저씨의 곁에는 늘 책이 성벽처럼 쌓여있었고 그의 앞에는 글자로 이루어진 평행선이 무한히 펼쳐져 있었다. 나와 동생도 모방 놀이를 하듯 하릴없이 책을 펼쳤다. 드러누워서 가로누워서 비스듬히 앉아서 책을 읽었다. 좁다랗고 작은 거실이 온통 크고 작은 글자로 가득하던 시기였다. 그가 동네 놀이터에 가듯 우리를 시내 서점에 데려갈 때면 매번 닮은 문장을 말하던 게 기억난다. 

책을 사는 건 돈이 아깝지 않은 거야. 읽고 싶은 것 있으면 사줄 테니 한 사람당 세 권씩  골라 오렴. 

혹은,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너희들 책 사줄 돈은 있어. 얼른 골라와. 


그는 계속 공무원 준비를 하던 학생이었고 우린 그저 어린 학생이었으니 그도 우리도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어딘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독특했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힘들게 등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지쳐 아저씨에게 그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자고 조른 적이 있다. 걸어서 삼십 분이 넘는 거리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날 쓰윽 돌아보며 그래? 하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의 징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돌연 바로 옆에 있는 주택의 벨을 사정없이 눌러댔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그리고 터지듯 말했다. 


얘들아, 튀어!


놀란 들숨에 가슴도 몸도 부풀었다. 좁은 골목을 힘껏 달음박질했다. 한참이나 뛰었을까 헉헉대는 숨을 고르려 걸음을 멈추니 어이없는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게 뭐냐고 항의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이렇게 잘 뛰면서 뭘 그래. 힘들면 말해. 다시 벨을 누르면 힘이 날테니까.


그는 참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자꾸만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나로서는 알듯 말 듯 결국은 알 수 없는 질문들 천지였다. 다시 예를 들면 이렇다.

-(내 이름을 부르며) 네 마음은 어디 있니?

매번 난데없는 맥락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를 다녀오는 일상에 툭 던져오는 조약돌처럼.

-음, 마음은 가슴쯤에 있겠죠? 

-가슴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지? 심장? 그럼 심장이 멎으면 네 마음은 어디로 가는 거니? 

-글쎄요, 아니면 머리에 있나? 

-그럼 네가 죽고 나면 네 마음은 사라지는 거니? 네 몸과 마음은 같은 것이니?


밀물 같은 말장난이었다. 알지 못할 작은 파문이 마음인지 가슴인지 심장인지에 이는가 싶더니 이내 만사 생각하기가 귀찮아졌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질문이었다. 

아 몰라요. 그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마음이 어딨는 게 뭐가 중요해. 공부나 잘하는 게 중요하지.

그땐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 따위. 나조차도 모를 내 마음 따위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여겼다. 아저씨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때 알고 있었을까.


한두 달 전 엄마의 보물 중 하나를 꼼꼼히 펼쳐보고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엔 엄마의 허락 하에서였다. 여러 장의 안부를 지나 마지막 장에 눈에 닿았다. '엄마(편지에선 이름이 쓰여 있었다)가 지켜야 할 목록들'이란 글이었다. 그중 맨 첫 번째는 이랬다.

<딸과 아들(역시나 이름이 쓰여 있었다)에게 잘하기,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 자주 보내기>

그때 그는 겨우 스물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알뜰살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동생이 있을까. 그의 선명함, 다정함, 섬세함이 그 시절 어린 우리에게 남아 지금의 어른 우리를 만든 게 아닐까. 지금도 내 마음이 나를 이겨 휘두르려 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말이 떠오른다. 네 마음이 곧 너인 걸까. 알듯 말 듯 모를듯하던 그 말들이 비눗방울처럼 떠오른다.     


몇 년 동안 공무원 시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아저씨는 결국 엄마와 헤어지고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느라 서울로 올라온 사이, 재색 옷에 민둥한 머리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스님이라니. 그의 건강하고 다부지던 심신과 난데없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어떤 스님이 되었을까 궁금하면서도 이리저리 떠돌고 머물며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리고 가끔은 철새를 닮은 그때처럼 우리에게도 머물렀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아저씨에게 책을 가득 사줄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씨, 참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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