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일기

by 윤신


생일은 꼭 바퀴에 그어놓은 한 가닥 선 같다. 지치지 않는 동력을 가진 바퀴는 계속 한 방향으로 돌고 순간마다 속도감은 다르지만 멈추는 일은 없다. 그렇게 그어 둔 선은 공전을 하듯 돌아와 같은 자리에 선다. 그러니 생일이란, 인간이 그은 선이 없었다면 아무런 날도 아닐지 모른다. 사건은 태초에 딱 한번 그때 일어났다.

3월 8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십 대 땐 받은 생일 선물의 목록을 다이어리에 주욱 한 줄씩 적어 넣었다. 선물은 사랑이었다. 받은 사랑을 네모칸에 한자씩 적어 그 안에 가둬두었다. 그 안에서 날 계속 사랑해 줘. 내가 널 잊더라도 넌 나를 잊지 말아 줘. 키티 볼 펜 하나, 립밤 하나, 작은 향수 하나. 그 모두는 기록하고 지켜내야 할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오해시켜 주는 최면이었다.

그 맘쯤 엄마는 늘 바빴고 대체로 스타킹에는 올이 나 있었다. 그런 엄마의 생일일 때면, 그러니까 매미가 동네 개처럼 울어대던 팔월의 달이 올 때면 나는 내 주위 친구들에게 몇 십원의 비용이 드는 부탁을 하러 어슬렁대곤 했다. 혹시, 혹시 말이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가난했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랑뿐이었다. 하지만 표현에 서투른 나는 그녀를 향해 환히 웃지도 눈을 마추지도 못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랑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녀를 훔쳐보는 시선, 올 나간 스타킹에 바르는 투명 매니큐어, 식탁 위의 물 잔, 현관을 나서며 흥얼대던 노래, 마아가린과 간장에 비빈 흰쌀밥, 주말 오후 길게 늘어지던 해의 그림자. 사랑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사랑으로 살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내 사랑을 보여줘. 내 사랑을 대신 전해줘. 띠링띠링띠링. 그렇게 음력 7월 25일 그녀의 핸드폰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내 사랑이 타인을 통해 0과 1의 이진법을 지나 문자로 그녀에게 다다랐다.



십 대의 아이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친구의 엄마에 대한 예의와 모든 이가 공평히 받아야 할 탄생의 축하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문자에 담았을 것이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누군가는 자신의 소개를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신이와 같은 반에 있는 누구라고 해요. 그렇게 엄마를 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그녀를 축하했다. 그녀의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해도 세지 못할 만큼의 아이들이었다.

아무래도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태어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또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문자들은 그녀에게 내 다이어리 선물 리스트처럼 사랑으로 각인되었을까. 딸과 그 친구들의 가벼운 장난으로 남았을까. 나는 나의 과거감정만 알 뿐 그 너머는 추측도 할 수 없다. 그저 문자를 부탁받은 이들의 어떤 다정한(조금은 신나 보이기도 하는) 결의와 '문자 잘 받았다'는 엄마의 색깔 없는 말만을 기억할 뿐이다. 오로지 나는 나의 입장만을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적는 사람은 적는 사람의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다. 시시포스의 징벌처럼 나만을 이야기하고 이야기할 뿐이다.

의도는 단순하고 당연했다. 나의 그녀가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길 원한 것이다. 그녀도 한때는 맨 꼬막손을 쥔 보드라운 울음 덩어리였음을, 신과 시간은 늘 자신의 편이라 믿는 소녀였음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딱 자신의 몸무게만큼만을 감당하며 실컷 뛸 듯이 날아다니던 여자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내 주위 사람들, 그러니까 내 세상을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이 모든 이들이 당신의 생일을 기뻐하고 있다고, 적어도 흉내 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고작 단조로운 기계알람이 부르는 생일 축하곡이지만 그녀가 그 안에서 자신을 긍정하길 바랐다. 그날만큼은 그 어떤 것이라도 화려하길 바랐다. 띠링띠링띠링, 그 별것 없는 신호음으로라도. 그러나 물론 거기에도 사랑은 분명 있었다. 50원 혹은 100원 모둠만큼의, 아니 동전을 뛰어넘은 아이들의 호기심, 설렘, 즉흥이 섞인 사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쩐지 그녀의 생일보다 내 생일에 그녀가 많이 생각난다.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다. 생일의 미역국은 오롯이 엄마몫이다. 태어났을 때 나는 그녀의 골반에 머리가 끼어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통이 두 배는 컸다고 했다. 진통이 시작해서 작은 병원에 갔으나 거절당하고 두 군데를 전전하다 결국 당시 허름한 집 전세금만큼 비싸다던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고 했다. 축복 없는 결혼에 돌봐주는 이도 없었을 텐데 얼마나 겁이 났을까. 곱슬대고 숱 많은 그녀의 머리칼은 땀으로 흥건했을 것이다. 마취제에 의식을 잃으며 단란한 꿈보다는 아득한 현실에 몸서리가 났을지도 모를 그녀의 나이는 스물이었다.

그래서 그렇다. 이제는 내 생일이면 어린 그녀를 생각한다.



아, 한 명 더 있다. 이유를 말하자면 내 생일 하루 전인 어제를 말해야 한다. 하원하는 아이를 마중할 때면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한다. 적정의 선을 지켜 그 이상이나 이하의 표정이나 단어가 나오지 않는 간략한 관계다. 아윤이가 오늘도 브로콜리를 잘 먹더라고요. 춤도 잘 췄고요. 집에서의 생활이 그대로 묻어 나오기도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머, 아윤이가 정리를 다했다고요? 점점 내가 모르는 집 바깥 아이의 모습은 늘어날 것이다. 여하튼 대화의 주된 주제는 보통 아이의 기호나 식사량과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어머니, 내일 생신이시라면서요? 아윤이가 하룻밤만 자면 엄마 생일이라고 모두에게 말하고 다녀서 반 아이들 전체가 어머님 생일날을 알게 되었어요. 생신 축하드려요, 어머니.

어머니라는 단어도 생신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낯설다. 온통 낯선 축하에 입술을 모으고 광대를 올렸다. 잘한 것도 없이 타인에게 순전한 축하를 받는 게 부끄러웠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태어난 게 정말 괜찮은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나의 십 대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도 수없이 밀려드는 이름 모를 아이들의 문자를 보며 기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한 그녀도 속으로 조금은 작게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생일의 기적은 둘이어야 가능하다. 혼자서 잉태하고 출산할 수는 없다. 내보내는 자와 나아가는 자. 자궁을 수축하는 자와 그 안에서 밀려나가는 자. 생일은 두 명이 이뤄내는 서사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그녀와 나의 내밀한 생일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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