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Jun 14. 2023

안 써지는 날은 그저 쓰는 날의 하나라서


써야지, 종이를 펼쳐

흰 면면을 바라보는 데

뽈뽈뽈

어디서 작은 개미 한 마리가 걸어 옵니다


사선으로

미량의 주저도 없이

가는 다리 여섯 개로 들어 올린 몸 가슴 배


개미는 걷고

글은 안 써져

어쩐지 심술이 나

펜으로 개미의 앞을 막아섭니다

개미는 멈추고

글은 여전히 안 써지고


쓰려는 말과 붙잡으려는 손 사이

개미는 다시 움직이는 점이 됩니다

뽈뽈뽈

종이에서 사라집니다


써야 할까

쓸 수 있을까


안 써지는 날은

쓰는 많은 날의 하나라서


안 써지는 날은

그저 쓰는 날의 하나라서


다시

평평하고 흰 면과 나만

또 이렇게

남았습니다



_


매거진의 이전글 탯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