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Mar 19. 2021

탯줄

배꼽에 남은 태고의 흔적

너를 보는 내 얼굴이 온전히 나의 것인가를

내가 보는 네 얼굴은 그대로의 너인가를

배꼽에서 배꼽으로 이어진 생명들이

태어나고 묻히고 다시 태어나는 원에 갇혀

나의 목소리인지 너의 얼굴인지

나는 모른다 ​


수십수백수천의 푸른 잎으로 연결된 덩쿨처럼

뿌리를 깊게 내린 그녀와 나와 너와 수많은 그녀들은

하얀 핏줄로 연결되어

너인 듯 그녀였다가

그녀인 듯 나였다가

나인 듯 누구도 아닌 이름을 남기고

다만 하나의 대명사로 사라지고 마는 것

​​


우주가 얼기설기 얽혀버린 탯줄을 손바닥 한가득 쥐고 묻는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

누군가는 대답한다

하나이자 모두 혹은 아무도 아닌

​​


첫 숨과 마지막 숨의 시간 아래

결국은 같고 매 순간 다른 시간 속에

너를 보다가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는 듣다가 나는 대답한다

​​


수많은 독백이 하루를 열고 닫는 사이

그녀들이 쓰지 않은 마음은 쓰이지 않은 종이 위에 춤추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는 적고 적다 또다시 적어 내린다  ​


닮고 닮은 나와 너와 그녀와 그녀가 아닌 그녀들

그녀는 엄마 동시에 딸

그녀는 딸 동시에 엄마

너는 딸 동시에 딸의 딸

나는 엄마 동시에 딸의 딸의 딸

언제까지고 이어질 배꼽에 남은 태고의 흔적


​_


매거진의 이전글 자작은 무력한 공감이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