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에 남은 태고의 흔적
너를 보는 내 얼굴이 온전히 나의 것인가를
내가 보는 네 얼굴은 그대로의 너인가를
배꼽에서 배꼽으로 이어진 생명들이
태어나고 묻히고 다시 태어나는 원에 갇혀
나의 목소리인지 너의 얼굴인지
나는 모른다
수십수백수천의 푸른 잎으로 연결된 덩쿨처럼
뿌리를 깊게 내린 그녀와 나와 너와 수많은 그녀들은
하얀 핏줄로 연결되어
너인 듯 그녀였다가
그녀인 듯 나였다가
나인 듯 누구도 아닌 이름을 남기고
다만 하나의 대명사로 사라지고 마는 것
우주가 얼기설기 얽혀버린 탯줄을 손바닥 한가득 쥐고 묻는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
누군가는 대답한다
하나이자 모두 혹은 아무도 아닌
첫 숨과 마지막 숨의 시간 아래
결국은 같고 매 순간 다른 시간 속에
너를 보다가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는 듣다가 나는 대답한다
수많은 독백이 하루를 열고 닫는 사이
그녀들이 쓰지 않은 마음은 쓰이지 않은 종이 위에 춤추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는 적고 적다 또다시 적어 내린다
닮고 닮은 나와 너와 그녀와 그녀가 아닌 그녀들
그녀는 엄마 동시에 딸
그녀는 딸 동시에 엄마
너는 딸 동시에 딸의 딸
나는 엄마 동시에 딸의 딸의 딸
언제까지고 이어질 배꼽에 남은 태고의 흔적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