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몸을 본 적이 있다

*심약자는 읽지 않으시길 권장합니다

by 윤신



죽은 몸을 본 적이 있다. 푸른색에 가까운 회색빛 피부, 부어있는 살결, 냄새, 무엇보다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 젖어 있는 머리칼, 물의 느낌-그것도 아주 차가운 물의 느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단편적인 감각의 조각들로 그 시간은 내게 남아 있다. 은빛의 철제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일부는 흰 시트에 가리어진) 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은 말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메스를 들었다. 천천히 몸은 벌어지고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여기 보이시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게 다 이쪽으로 밀려들어갑니다. 이 작은데로 그렇게나 많은 것들이 들어가니 힘들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적당히 먹어야 해요. 적당히. 그런 얘기를 우습게 했던 것도 같다. 철제 침대 주위로 자꾸만 사람들이 둘러 섰다. 소독약 류의 냄새가 지독했지만 사람들은 떠날 기미가 없었다. 해부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던 나는 거기에 밀리는 돌멩이처럼 서 있었다. 사람들이 밀면 미는 대로 밀리면서 오로지 피부만, 붓고 퍼런 피부와 어두운 혈관만을 바라봤다. 긴 머리와 젖. 몸은 여자의 것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이렇게 누울 줄, 사람들 앞에서 벌어질 줄 알았을까. 죽고 나서의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만은 적어도 무엇이든 원하지 않을 권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나중의 생각이다. 그때는 온 힘을 다해 서 있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납빛의 몸이 뿜어대는 권위와 압도는 대단해서 모든 시선과 생각을 가두어버린다. 몸, 오로지 몸. 그 자체에만 강렬히 집중하게 한다. 차가울까. 문득 저 살결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우리 모두는 누워 벌어진 몸 바로 앞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그 몸의 어디라도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수많은 시선이 쓰다듬는 죽은 몸과 몇 센티미터의 거리에서 우리는 부끄럽게 서 있었다.


꾸욱.


나는 몸의 어딘가를 찌르듯 만졌다. 그리고 뒤돌아서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주위엔 온통 죽은 몸들이 있었다. 뒤를 돌아 떠난 자리를 봤다. 나의 공백은 이미 다른 관객으로 채워졌다. 메스를 든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웃어댔다. 이상한 세계였다.


열두 살 혹은 열다섯이었다. 아마 열다섯이었을 것이다. 친구 몇 명과 각자의 동생 몇 명을 데리고 집 근처 대학 축제를 찾았다. 솜사탕과 연극, 먹을거리 같은 뻔한 것들을 상상했지만 활짝 열린 건물 일층엔 크고 작은 포르말린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린 놀라 당황했지만 의대니까 그런가 보다고 센 척하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기형아에서 임신부, 어떤 몸, 저떤 몸, 손가락에 꼽을 수도 없이 많은 몸과 부분들이 병 안에서 눕거나 서 있었다. 진짜 사람일까. 에이, 아니겠지. 진짜 같은데. 아무도 우리를 제지하는 이들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곳은 축제였다. 다들 신기한 듯 눈을 번득이며 돌려댔고 우리는 장난을 섞여 키들댔다. 두려움과 공포, 엄숙함이 찾아올라치면 아니야, 가짜야 하고 우린 말하곤 했다. 설마 죽음을 이렇게 가볍게 전시할리가 없잖아.


글을 쓰다 보니 이 날의 삼십 분도 채 안되던 시간이 나에게 어떤 것으로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감각, 어떤 의식, 어떤 의미, 어떤 경계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낸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문장으로 생각으로 발현되는 어떤 것으로 남은 게 아닐까 하고. 예를 들면 이렇게.


대학 시절 첫 일본어 수업이었다. 히라가나와 기초 문법을 배우던 수업이었는데 그날은 기본 동사인 いる이루와 ある아루를 배우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에는 いる이루를 쓰고 움직이지 않는 물체나 사물에는 ある아루를 씁니다. 나는 손을 들어 물었다. 그러면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면 いる이루를 쓰나요, ある아루를 쓰나요. 아마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처음인 모양이다. 다음시간에 알려주겠다고 선생님은 친절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 사람이 죽으면 ある아루를 쓴다고, 의지를 갖고 움직일 수 없으니 ある아루를 써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조금 씁쓸했는데, 사람이 죽으면 의지를 잃어 사물의 단계로 진입해 버리는 일본어 문법의 잔혹성 때문인지 아니면 학생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해서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어린 시절 본 그 몸은 ある아루를 써야겠구나, 나 역시 씁쓸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열다섯의 그날은 봄이나 가을, 나무에 새어든 잔햇살이 빛났고 하늘이 파랬다. 우리는 이내 근육, 핏줄, 뼈, 인체의 부분들이 전시된 건물 바깥으로,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 바깥으로 내달렸다. 다시 우리의 주위로 생이 펄떡대고 요동쳤고 이내 익숙한 배경에 안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우리가 죽음의 구경꾼인줄로만 알았다. 겁도 없이 죽음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헷갈린다. 우리가 구경한 건 죽음이었을까. 애초에 의지와 생명이 빠져나간 ある아루의 상태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생이 소멸한 잔해를 허락도 없이 훔쳐보기만 했던 거 아닐까. 이제 나는 그때가 그저 부끄럽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그날 누군가는 입을 막고 밖으로 튀어나갔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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