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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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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n 28. 2020

인생 55일 차

울어도 괜찮아. 191024




가끔씩 이 작은 사람이 아직 인생 55일 차라는 사실을 깜박한다.

‘쪼꼬맹이, 이런 걸로 울면 안 되지. 배고파도 조금 참을 수 있어야지(근엄하게).’ 

‘엄마 설거지랑 청소할 동안만이라도 혼자 놀면 안 되겠니(회유하듯이).’



당연한 말이지만 어림도 없다.

배고플 때나 심심할 때나 -어쩌면 어른이 예상하기 힘든 갖가지 이유로- 아가는 매번 세상 서러운 목소리와 표정을 짓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내겐 자동 호출 신호. 설거지하던 물 묻은 손을 대충 바지춤에 닦고 찰떡이에게로 쪼르르 달려간다. 

아가, 엄마 여깄어! 



이제야 55일 치의 하루를 산 아가의 생일은 8월 마지막 날이다. 

생일生日이란 한 사람이 생생生生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의미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 모두가 태어난 곳은 엄마의 자궁 어딘가다. 태초에 생명이 시작되고 움튼 에덴동산이자 우주의 시작. 



다 큰 어른의 기준에선 눈에 뚜렷이 보이고 수치화하기 쉽게 출산한 날이 인간의 시작이지만 아기의 기준에서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이다. 자신을 쪼개가며 성장하는 세포분열을 시작으로 볕을 받은 나무처럼 제 영역을 넓히며 뻗어나간다. 하지만 정작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진짜 햇빛을 받는 세상은 원 세상과 너무나 다르다. 숨을 쉴 필요도 음식을 섭취할 필요도 없던 양수 안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던 생명이 갑자기 공기 중에 던져졌다. 빛의 명암이 바뀐 우주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떨어진 기분일까. 아기에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납작하던 아가의 폐는 갑자기 부풀어 호흡해야 했고 탯줄로 넘어오던 영양은 입으로,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빨아야 했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엄마인 나는 처음엔 잠투정이란 개념마저 이해하지 못했다. 피곤하고 졸리면 그냥 잠에 빠지면 된 텐데 왜 투정을 부릴까. 나의 지난 아가시절을 잊어버린 탓이다. 

아기의 입장에서도 뭐하나 쉬운 게 없겠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지 55일. 

아직도 이마 위 대천문으로 팔딱팔딱 숨을 쉬는 아가를 위해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워져야겠다. 

심지어 어른에게조차 세상 모든 시작은 저어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기다려줘야겠다. 



우리 아가, 

울어도 괜찮아. 서툴러도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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