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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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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n 27. 2020

명상하듯 숨 쉬며

육아를 차명상하듯, 191023




‘우오모牛悟母’라는 찻집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하루 다음 하루, 그렇게 매일을 찾아갔지만 이제는 사라진 지 몇 년이나 흐른 곳. 

이른 봄 막 피기 시작한 어린 꽃잎을 동동 띄운 매화차, 

어느 비구니에게 받았다는 오래되고 귀한 보이차,

곡우 전에 딴 연한 찻잎으로 만든 우전, 

직접 간 고운 얼음에 미숫가루와 팥을 얹은 빙수를 전병과 곁들일 수 있던 그곳. 



문득 어제, 내 서랍 속 보석 중 하나인 우오모가 떠올랐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던 ‘차명상 tea meditation’ 때문이다. 차 명상이란, 고운 차를 찻잔에 따르며 오감을 이용해 그 색, 향을 음미하고 천천히 내 안으로 넘어가는 모든 순간과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이다. 

숨을 고요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은 물론이다. 



찰떡인 어제 종일토록 낮잠을 거부하고 칭얼거리거나 울어댔다. 보통 8-9시쯤엔 잠이 드는데 어제는 11시까지도 깨어있었다. 일명 등센서가 활발히 작동하기에 이불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안았다 아기띠를 맸다 배 위에 얹었다 혼자 별짓을 다했다.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자지러지게 우는 찰떡이를 달래다 점점 지치고는 종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두 달도 안된 아기에게 화를 내다니. 난 참 화도 많다.’ 


난데없는 자아탐색에도 치솟은 화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으앙으앙 울어대는 찰떡이를 안은 내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어떡하라고. 어쩌란 말이야.’ 


뜻하지 않던 자해가 차 명상을 떠오르게 했다. 

명상의 기본 중 하나는 ‘바라보기’다. 화가 난 자신을 알고 바라보기. 요동치는 현재의 마음 상태 알아채기. 

바라봐야 할 사람은 아기뿐만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난 자신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 화가 일순 사라지지는 않는다. 격앙되던 화가 그 자리에 머물고 울고 싶은 심정 역시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간신히 아기가 잠에 들고 멍하니 생각한다. 


난 왜 그렇게 동요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순간이나마 왜 미워했을까. 

정말 갈길이 멀구나. 



누군가의 말대로 이 작은 생명에게 나는 하나뿐인 엄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란 전부이자 우주. 

한 사람에게 우주로 존재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그렇다고 피할 순 없는 일이다. 

어떤 세계, 어떤 우주가 될 것인가.  

모르긴 해도 전전긍긍하고 어쩔 줄 모르는 세계이고 싶진 않다. 탁 너른 품을 가진 세계, 뒤에서 든든히 여유로이 웃으며 기다릴 줄 아는 우주가 좋지 않을까. 아마 어제도 그 마음에서 우오모의 순간이 떠올랐을 것이다. 고요하고 편안하던 심상이 톡, 하고.



찰떡이는 지금 내 배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온한 얼굴이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러다 갑자기 깨어나 응강응강 울어댈 수 있기 때문이다. 울음의 이유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못 찾게 된다면 내가 할 일은 무작정 달래주기다. ‘무작정’이란 단어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딱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명상의 마음가짐. 어제 떠올린 차 명상을 생각하며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지. 



그나저나 차 명상에서 ‘바라보기’ 다음은 뭐더라. 

화난 나를 알아채고 바라본 다음 말이야. 

가물가물 기억을 잡아보려는데 이런, 요 쪼꼬맹이가 꿈틀댄다. 코가 찡긋, 미간이 꿈틀, 이건 울 기세다. 

바라보기고 뭐고 일단은 잘 달래나 보자. 

우린 서로에게 하나의 우주, 단 하나의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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