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입구에 초록의 바람이 불자
비밀을 품은 토끼의 걸음이 빨라졌다
바람이 불지만
이미 지나간 바람은 다시 불지 않는
이곳은
아름답고 이상한 평면의 세계
잠깐,
지금 아주 작은 별들이, 빛이 가득한 점들이, 달싹이는 말들이 지나쳤는데
뒤를 돌면 오직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수련만이 그곳에 떠 있고
어떤 아름다움은 찢어버리고만 싶어
물을 헤치고 숨을 참고 귀를 막고 흐드러진 색채의 잎과 풀물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빛도 시선도 닿지 않는 백지에까지 헤엄을 치고 숨을 참아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손을 뻗는데
스륵 얇게 찢긴 사이로 환한 빛이 들어오더니
발목에서부터 보랏빛 물감이 새어 흐르고
이리 와
이제 나갈 시간이야
누군가 나의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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