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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n 24. 2024

혐오의 노래



입을 찢어도 가만히 있었더니

하기야 가만히 있는 건 너의 유일한 특기지

어머 저기 봐 너 같은 애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어

피가 나도록 머리를 바람벽에 찧고 있어

내 몸은 판도라의 상자도 아닌 게 자꾸만 열려서는 더러운 것들이 기어이 나오고 온갖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꼭 그건 오물이 만든 인간 도랑만 같아서


무릎을 오그리고 앉아 하나 둘 기어가는 것들을 가까이서 세어봅니다


하나는 미친 눈알

둘은 미친 목구멍

아이고 셋은 살뜰하게 미친 주먹이구나


어느새 가까이 온 첫 번째 눈알이 몸을 틀어

있지, 저 찢어진 입은 다시 꿰매지지 않아

깔깔대는 지겨운 말에 그저 가만히 앉아 손톱이나 똑똑 떼어먹다가

두 번째 미친 목구멍과 나눠도 먹다가

어머 가여워라 그래서 니가 미쳤구나

세 번째 미친 주먹의 위로를 들었습니다

어제 나를 죽인 니가 나에게 위로를 하다니 

그런데 그 우스운 다정이 싫지는 않았고요


싫어라 싫어라 오호호 나는 내가 싫어라

종종 땋은 머리카락이 휘도는 그들의 노래가 유쾌해

나는 벌건 이를 드러내고 웃다가

퉁퉁 부은 머리를 그 사이에 밀어 넣고

싫어라 싫어라 오호호 나는 내가 싫어라

우리 함께 노래를

고인 더러움이 튀어 서로의 뺨에 달라붙으면 더 신이 나서 노래를


잘 들어봐요

이건 언젠가 들어 본 노래

누구나 한 번쯤 불렀을 유년의 노래


머리칼이 휘돌고 찢긴 입을 꿰매지 않아도 그저 우리는 흥에 겨워서

싫어라 싫어라 오호호 나는 내가 싫어라

고장 난 마음은 고쳐지지 않고요

이빨 머리통 발가락 정강이뼈 우리의 악기는 아무리 때려도 부서지지 않아요

부르고 부르고 부르고

짓찧고 짓찧고 짓찧고

 

자, 이제 알겠죠

어쨌든 격하고 사특한 것에 휘둘리기만 하면 된다니까요 그러니

하나 (미치고) 둘 (미치고) 셋 (미치고) 넷 (미쳐서)

몸에 붙은 악기를 떼내어 자유롭게 불러요


랄랄라 이제 당신의 순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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