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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얕고 깊은 구덩이

by 윤신



나의 몸 주위에는 무수히 깊고 얕은 구덩이가 있다. 웅크린 고양이의 형태로, 한때 사랑하던 이의 몸둘레로, 아끼던 연필과 스웨터 자국 그대로, 그것은 나의 손끝과 책상 위 선반, 침대 모서리, 손등 옆. 어디든 있다. 미간을 찡그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아니 미간을 찡그려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알잖아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에요.


Q와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몸통 어딘가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구멍이 있는 것 같다고. 그 구멍이 우리를 번번이 타인에게 매달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고. 태생적 외로움일지 후천적 결핍일지 둘 다의 콜라보일지 하지만 우리는 그 구멍을 영원히 메울 수 없을 거라고. 메울 수 없으니 그래 안녕, 하고 인사하고 잘 잤니, 안부를 물으며 사이좋게 살아야겠다고. 서른둘 혹은 셋 팔월의 여름.


외로움이 구멍이라면 허전함은 구덩이가 아닐까.

깊어진 허전함이 외로움이 되는 건.


아꼈으나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마음은 자기 몸 크기만 한 구덩이를 인간의 몸 근처 어딘가에 만든다. 자신의 형태를 본뜬, 흡사 그림자를 닮기도 한.

가끔씩 떠오르는 내 곁의 엷은 그림자들.


그런 생각들이 이틀 전 새벽 나를 깨웠다. 아직 밤의 사위가 물러나지 않은 새벽.


나는 구덩이야. 네가 만들어낸 무수한 구덩이들, 너의 가끔의 그리움들이지.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그 팔월의 여름, Q와 내가 각자의 몸에 뚫린 커다랗고 시커먼 구멍을 인정하고부터 더 이상 타인에게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 안을 어둡게 하던 무시무시한 것들은 사실 순하고 여린 것들이라 그저 안녕, 하는 인사만으로도 보드랍게 무너져 내렸던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그리고 태어난 작고 큰 구덩이들.


새벽 내내 구덩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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