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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5. 2024

놀이터


엄마들이 둥그렇게 줄을 서서 불안을 감시하고 나는 시를 읽는데 어, 잠깐만 나도 분명 불안의 손을 쥐고 여기에 왔는데 불안은 어디 가고 왜 혼자 시를 읽고 있나요     


어머 그랬대 세상에

미쳤나 봐 어떻게 미끄럼틀에 주방 가위를 꽂아놓았대 

누구라도 다치라고

익명의 누구든 어디 한 번 찢겨지라고     


시는 읽히지도 않고 가위를 꽂아둔 이의 마음도 읽히지 않아. 기다리는 오후는 지겹도록  길고

뜨겁게 달아오른 미끄럼틀에 눕고만 싶어요     


가위대신 박혀서

누구라도 놀라기를

누구라도 부딪혀 새파란 멍이 들기를

그럼 우린 파랗게 멍든 무릎을 붙잡고 함께 미끄러질 수 있을 텐데 

떼굴거리며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깨금발로 숨바꼭질을 할 텐데     


그런데 어디 있을까     


사라진 아이를 찾습니다 

나를 천천히 죽이는 아이고요

축축이 젖은 작은 손의 아이예요

얼굴은 꼭 제 아빠를 닮았고 

그 아이가 없으면 아마도 저는 살지 못해요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작고 빠른 나의 불안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뛰어다닐  때

다시 나는  시집을  펴고

기나긴 오후를  누군가  덩그러니  꽂아둔  가위를  엄마들의  비명을  아이들의  야유를  봅니다     


이것 봐     


뛰어 온 아이의 손에 고인

올챙이에게 어느새 뒷다리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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