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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푸른빛을 잡아두는 일

<작년 여름의 글>

by 윤신



태초의 기록은 받아쓰기다. 기역 니은 디귿으로 시작해 발가락, 빗방울, 반짝반짝으로 이어지는 앳된 글자들. 유년은 선생님이 부르는 입말을 글자로 더듬으며 사잇소리, 두음법칙, 연음화 같은 규칙을 떠올려 사각사각 종이에 적어 내린다. 나팔꽃과 여름 더위, 공책과 푸른 바다. ㅂ과 ㄷ이 각자 ㅏ를 만나 바다가 되는 일은 때로는 기적처럼 때로는 마녀의 마술처럼 작은 머리통들을 채우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몇 자루의 연필이 필요하다. 24개의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낱말들이 몇 권의 공백을 반복으로 채울 무렵 문득 유년은 작게 놀라며 깨어난다. 어린 시야에 가득 찬 사물과 그것의 형태, 일렁임, 벅찬 마음, 스쳐가는 냄새, 갑자기 쏟아지는 비, 심지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까지도 글자로 옮길 수 있다니. 선생님은 이어 말한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들어가는 게 방일지 가방일지. 이것 봐. 사람의 걸음처럼 문장에도 쉼이 필요해.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띄어쓰기라고 부른단다. 문장 어디에서 숨을 쉬어 어떤 의미를 만들지, 걸음 어디에서 멈춰 어떤 궤적을 이어갈지. 문장과 생이 닮았음을 아이는 어렴풋이 배운다.


열렬하게 쓴 기록을 몰래 찢어버린 적이 있다. 유년의 받아쓰기가 익숙해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매일 쓰던 일기였지만 그 시기에 일어난 일이란 불행과 불운뿐이라 글은 대부분 짧은 욕설이나 원망에 불과했다. 진짜 싫어, 죽어버려. 발설할 수 없는 만큼 손끝에 힘을 주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벌건 숨을 토했다. 아빠는 왜 우리를 버렸어?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끝내 물음을 삼키던 열다섯열여섯. 엄마가 아빠에게서 도망칠 때 나는 현실로부터 종이 위 글자로 도망쳤다. 일기는 내 뜻대로 펼치거나 구길 수 있는 유일한 나의 구원. 범람하던 자아와 생각을 종이 위에 베낄 때면 마음이 가볍고 차분해졌다. 가지런히 나열된 아슬한 문장과 마음을 바라보는 캄캄한 새벽, 노트에 스민 감정과 냄새는 바깥으로 튀어올라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거나 쓰다듬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날것의 생각은 정리되어 조금씩 새로운 길을 찾았다. 어쩔 수 없는 울음은 현실에 두고 우리, 웃음이나 눈 깜박임처럼 금방이고 지나가 버릴 것들을 일기에 적는 건 어떨까. 적어도 하루의 빛 하나씩을 적는 건.


밤이면 꽃잎을 닫는 개망초, 밑줄 그어진 도서관 책, 줄넘기 2단 뛰기의 성공, 점심마다 연습하던 연말의 연극 공연, 몰래 나눠 먹던 새콤달콤, 교정 잔디밭에서 달리는 아이들과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의 일정한 간격. 안으로 말려든 시야를 바깥으로 꺼내는 일이자 새로운 형태의 받아쓰기. 노트 한 권이 바깥의 일들로 가득 메워질 즈음 이전에 쓴 증오의 글은 찢어버렸다. 가로 세로 격자로 잘게 잘게, 더 이상 찾을 수도 작을 수도 없게. 그리고 또 거기서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잊힌다. 꾹꾹 눌러쓴 노트 한 권은 빼고.


다시 뭔가를 쓰게 된 건 아이를 낳고서다. 서투르지만 날짜까지 적어가며 정성스레 아이가 자라는 모습과 단상을 기록했다. '8월 31일 12시 30분 새빨간 아이가 태어나다.' '풍덩 빠지는 것만이 모성인 줄 알았더니 종이가 물을 빨아들이듯 천천히 스미는 것도 모성이어라' '1월 모일, 그토록 애를 쓰던 뒤집기를 하고 엎드려 발을 구른다. 이도 없이 그토록 환한 얼굴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년을 꼬박 쓰다 보니 또 사소한 데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산책하며 만난 붉거나 흰 꽃의 이름, 어른의 보폭에 맞춰진 계단 높이, 크레파스의 색과 질감, 초록의 잎으로 가득 찬 그림책, 손 그림자로 만들 수 있는 동물의 형태와 수. 그렇게 나의 세 번째 받아쓰기는 시작되었다. 언젠가 너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우리의 한때를 밀봉한 봉투를 너에게 건네주기 위해서.


얼마 전 비비언 고닉의 글에서 '빛의 스펙트럼 가장자리인 푸른색은 시간과 거리에 비례해 깊어지고 그리워진다'는 문장을 읽었다. 멀거나 가까우나 결국 사라지고 말 빛, 스치거나 이미 사라진 빛. 아이는 어제와 다르게 자라고 나는 그 어제가 아쉬워 순간을 기록한다. 아이뿐만이 아닌 내 주위를 채우는 빛과 바다, 고양이의 낮잠까지도. 모든 날은 어제가 된다. 기록은 결국 그리워하고야 말 푸른빛을 박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통과해 멀어지는 사물과 사람을 순간으로 붙들자는 기꺼운 마음일지도.


쓰는 동안 생각은 긴 숨을 쉬며 몸을 씻는다. 그날그날의 일상과 그날그날의 기록. 부엌 의자에 앉아서 혹은 선로 위 열차 안에서 나를 스치는 찰나의 순간을 수집한다. 현상이 종이에 남아 기록되는 순간, 시간은 멈춘다.


거실의 책장 선반 위 올려진 사물들은 모두 태어난 곳이 다르다. 리티디안 해변에서 모은 산호의 뼈, 숲에서 주운 손톱만 한 화산암, 모래 사이에서 발견한 초록의 유리 조각, 출처 미상의 소라 고동, 아이가 선물 받은 자수정 파편과 꽃의 잔해들. 제주의 유리공방에서 데려온 세 개의 산을 배경으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모아 온 기록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기도 출처도 다른 기록의 모둠. 어떤 것에는 슬픔이 또 어떤 것에는 달뜬 기쁨이 섞여 하나의 두꺼운 세계를 이루는 정원처럼.


오래된 노트를 펼쳐 한참을 그 안에서 머문다. 깜박 잊고 지내던 기억과 단상이 스냅처럼 넘겨지고 나는 웃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아이의 어깨를 톡톡 치며 이것 봐, 이것 좀 봐 함께 웃는다. 펼쳐진 기록은 기지개를 켜고 자신의 멈춰진 시간을 내어 보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몸을 웅크려 잠든 각자의 이야기들로, 저마다 다른 서사의 기록물들로. 그리고 그것은 의도치 않게 해방과 위안을 준다. 쓰는 마음에도 읽는 마음에도. 나는 몰래 생각한다. 내가 하나의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나의 결핍과 상처를 종이가 함께 견뎌주어서가 아닐까. 너만의 것이 아니야, 종이가 제 무게만큼 쓰는 가볍게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기쁨의 순간에도 마찬가지. 지나가도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야. 차마 붙들 수 없는 순간의 빛들도 네가 기록하기만 한다면 시간은 멈춰 이곳에 남을 거야. 종이의 격려는 어김없이 이어진다.


어쩌면 기록은 푸른빛이 아니라 온갖 빛을 잡아두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둡거나 밝은, 채도나 명도와 상관없이 그때마다 발해지는 빛 그대로의 남기는, 유년에서 이어지는 끝없는 받아쓰기일지도.

칠월, 여름 장마가 시작했다. 오늘의 나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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