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오래되어 탈색되고 떨어진 벽면, 켜켜이 쌓인 흰 먼지, 탁자에 엎어 놓은 의자와 비어있는 병, 차갑게 식은 벽난로. 곁에서 영화를 보던 아이가 조용히 방이 늙었어, 하고 말한다. 방이 낡았어, 하고 말 그늘을 짓던 나는 늙고 낡은 것들을 생각하다 얼마 전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괴로워요. 몸은 늙고 마는데 마음은 늙지가 않아서.
인간에게 죄가 있다면 몸이 늙는 게 형벌일까 마음이 늙지 않는 게 형벌일까를 생각했다.
그렇다면, 늙은 몸에 늙은 마음은 자비일까를.
푸른 고래의 후두가 울리는 소리가 수백 킬로미터까지 퍼지듯 생각이 끝을 모르고 번지는 사이, 영화 속 주인공은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창문을 열어 화면 속 제 삶을 환기시켜 살아냈다. 그래, 살아야지. 언젠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노인의 문자처럼. 커다란 글씨로 애쓰지 않아도 너무나 훤히 읽히던 글자처럼.
살아 있어야 언젠가 만난다. 잘 살다가 우리 꼭 만나자.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이르노니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사무엘 울만이 칠십여덟에 쓴 청춘 YOUTH이라는 시의 첫 문장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야 느슨하고 온화하게 쓰다듬을 수 있는 관념을 생각한다. 낡고 늙은 지층의 표면이 아닌 그 안의 퇴적물을 가만히 살피는 마음을 바라보기도 한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을 주조하는 것은 결국 마음이라는 것도.
늙은 방 낡은 방 비어있는 방 기다리는 방 고요한 방 시간의 방, 혹은 몸이나 마음 그게 뭐든지.
점점이 다다른 생각은 영화와는 조금도 상관도 관계도 없었지만 이것 또한 영화 보는 법의 하나라고 우겨본다. 켜켜이 살아가는 법의 하나라고 우겨본다. 그렇게 우기며 잘 살다 당신을 만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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