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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by 윤신



저마다 다른 시간의 틈과 조각을 모아 저마다의 빛 아래에서 읽어 내린 텍스트를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여덟 개로 나뉘고 가끔은 몇 개로 추슬러 들었다가 때로는 하나가 또다시 여덟이 되는, 보통의 당연한 일들.


책에서 건져진 단어들은 작은 조약돌이 되어 던져진다. 예를 들면, '언어'라는 단어에서 '언어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하는 단순하지만 조금은 생각할 거리가 되는 질문으로. 대답은 다양하다. 언어는 감옥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었어요. 자신의 사고를 규정하고 한계 짓는. 언어는 재앙을 포함하는 축복 같아요. 언어는 하나씩의 세계 아닐까요. 언어는 자신이 닦고 걸어가는 길이예요. 언어는 그 존재자체지요.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답은 어느 분의 부끄러운 웃음을 동반한, 언어는 분자 같아요,라는 말. 원자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모여 분자를 이루듯, 언어도 여러 조합이 있고 미지를 포함하기도 하니까요. 그 말로 언어가 다시 한번 다른 이들의 머릿속에서 쪼개지고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내내 서툴고 더듬대던 나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그 시간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거기에 얽힌 각자의 순간을 위한 이른 소야곡임을 깨달았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다 괜찮아요. 서로의 생각과 존재 자체를 책이라는 매개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다정한 속삭임.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지나가듯 누군가 말했다.

작가들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긍정이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누군가 답했다.

그렇죠. 제대로 봐야 하는 일이니까요.


스쳐 지나가는 말들이었지만 그것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하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제대로 봐야 하는 일이지, 그의 얕고 깊은, 어둡고 환한 모든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봐야 하는 일이지. 봐내야 하는 일이지. 문득 한강이 하루 아홉 시간 한 달을 내리읽었다던 광주의 기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로 인해 써낸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며 그 배경에 끝끝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긍정이 없었다면, 쓸 수 있었을까, 써낼 수 있었을까 가만히 잠겼다.


두 시간은 쉽게 지나갔다. 진지한 사유의 언어도 있었지만 그보다 비언어적 가벼운 웃음이 넘쳐흘렀다. 하긴, 그게 다 아닌가.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만남에는 눈 맞춤과 인사, 웃음, 환대, 인정, 그런 것들이 다여야 하지 않나. 날 선 날개를 접고 더 쉽게 서로를 껴안을 수 있도록 우리는 읽고 쓰고 만나는 것 아닌가.

그래, 그것뿐 C'est tout(뒤라스의 책 제목으로 '이게 다예요'라는 뜻). 정말 그것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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