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원래 타인은 수수께끼 투성이지요

by 윤신



울음이 터진 건 순식간이다. 유독 힘들게 느껴지던 일을 끝내고 작은 로비에 앉아 책을 읽다가, 안녕히 가세요, 일면식만 있는 사람들과 선선히 인사도 하다가.


나를 울컥이게 한 것은 문장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행간 너머 생애의 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떤 책이나 문장은 그렇다. 문맥보다도 나의 부분을 더 돌아보거나 만나게 한다. 싫든 좋은 등을 떠밀고 목을 비틀어 외면하거나 잊던 나를 만나게 하고야 만다. 뜨거운 감정이 잦아들길 기다리며 문단이 묘사한 선물 같은 노을을 상상했다. 모녀가 찬 바람에 옷을 여미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긴 산책을 상상했다. 오늘도 잘 보내세요, 마지막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나갈 때까지. 혼자 가만히 의자에 앉아 텅 빈 로비에 남겨질 때까지.


문장은 단순했다. "엄마, 일어나 봐. 우리 나가야 돼!" 그리고 다음 문장. '우리는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섰다.' 짧게 설명하자면 작가는 스톡홀름에서 엄마와 여행하던 중 예상치 못한 추위에 놀라 배를 타려던 계획을 변경해 집에서 쉬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의 엄마가 깊이 잠들었다고, 하지만 커튼 밖으로 내다본 하늘은 정말 나가야만 하는 색깔이었다고 적었다. 정말 나가야만 하는 색깔, 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약간 취한 얼굴로 바라보는, 낮은 언덕에서 보이는, 이른 새벽에 만나는, 익숙한 풍경의 낯선, 다양하지만 정말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나가야만 하는 하늘의 색깔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생각보다 그 시간의 색채는 서둘러 뒤섞이고 뭉개지므로 작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이다. 지금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그녀는 저 큰따옴표 안의 말을 한다. 엄마, 일어나 봐. 우리 나가야 돼! 우습게도 나의 울컥임은 여기서 시작되고 다음 문장(우리는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섰다)에서 급기야 읽기를 멈춘다. 탐정처럼 그들의 향방을 책이 아닌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그들은 나가야만 하는 하는 색깔 아래 섰을까. 그녀는 엄마의 단잠을 깨웠을까. 엄마, 일어나 봐. 엄마를 흔들고 엄마는 눈을 비비고 엄마를 일으켰을까. 별 것 아닌 누군가의 일상은 때로 나의 불가능한 기적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한 적도 하늘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단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신 적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미래란 과거에서 유추하는 수식이다. 거의 180도에 반하는 인격의 변화가 아니고서 우리 모녀는 그럴 일이 없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 일어나 봐. 우리 나가야 돼! 나는 결코 그렇게 엄마를 깨울 일이 없다. 거대한 지진이나 해일이 밀어닥치지 않고서는.


그게 울음이 날 이유인가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내가 원래 감정이 예민한 편이거든요, 어색하게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것은 당신에게 수수께끼인가 보군요,라고. 원래 타인의 것은 수수께끼 투성이지요,라고 말할 뿐이다.


책을 다시 펼친다. 그들은 사물의 분간이 잘 되지 않을 무렵까지 길고 긴 산책을 했다. 그들이 하늘이 준 우연과 찰나의 선물을 잘 받았음에 안심했다. 받지 못한 선물은 미련투성이로 남았을 것이다. 남의 미련 따위 무슨 상관이냐만은 알든 모르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게 요즘 내 바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적는 순간 '아', 하고 깨달았다.


나와 엄마는 애초에 스톡홀름에 같이 여행 갈 리가 없다.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을 이야기하는 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