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되지 마.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같이 이를 닦던 아이가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가만히 아이를 보니 아이는 다시 한번 제 바람이자 인류 역사상 모든 인간의 바람이었을 것을 반복한다. 엄마는 할머니 되지 마. 다섯 살 아이의 작은 머리통은 예상하기 힘든 범위를 넘나 든다. 저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만히 듣는다.
만약,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면 나도 엄마 손 꼭 붙잡을 거야.
그러니까 결국 사람은 나이 들고 만다는 생각, 그리고 나이가 들면 끝내 죽는다는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할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놀이터에서 만난 일곱 살 언니가 비슷한 말을 했다. 어른들이 감춰둔 비밀을 몰래 알려주듯 실눈을 뜬 채 앳된 목소리로. 있지, 사람은 다 죽어. 엄마도 아빠도 모두 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을 하고는, 사람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 우리도 나중에는 죽을 거야. 그때 어린 나의 딸은 나에게 울면서 달려와 물었던가. 엄마, 나도 죽어? 죽는 게 뭔지도 모르고 나이가 드는 게 뭔지도 모르던, 이미 눈자위가 축축해진 딸에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언젠가는. 하지만 아주 먼 이야기야, 혹은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남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기억하면 떠난 사람도 그 시간만큼 더 살아가거든. 차마 죽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하지 못하고 왜 굳이 저런 말을 아이에게 했을까, 일곱 살 언니에게서 화난 듯 등이나 돌리면서.
그런데 내가 하늘나라에 갈 때 내 손을 잡는다니. 어쩌면 아이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집 앞 슈퍼에 가듯 여긴 게 아닐까. 지금처럼 손만 꼭 잡으면 어디든 따라갈 수 있다고, 고 작은 머리로 궁리한 게 아닐까. 아이의 보드라운 손을 바라본다. 솜털이 가지런히 난, 부푼 살로 마디가 옴폭 들어간 희고 작은 손. 하늘이든 인어 공주의 세계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는 저 조그만 손. 그리고 그 손을 가볍게 쥐는 내 손도.
살면서 가장 많이 보는 자신의 신체 부위는 손이다. 물건을 쥐고 고르고 들고 깍지를 끼고 펜을 쥐고 누군가의 볼을 쓸고, 때로는 바닥을 붙여 기도하는. 매일 보는 손인데도 문득 내 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껏 이 손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물을 스쳐왔을까. 끝에 달린 이 투명한 손톱은 또 얼마나 잘리고 잘려왔을까. 순간, 아이가 불쑥 내 손을 잡는다. 알겠지? 응, 응. 나는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아이를 와락 끌어안는다. 이 예쁜 게 어디에서 왔나 요 귀여운 게 어디에서 왔나, 볼을 부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면 분명 아이는 나의 손을 잡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우리를 미래로 이어주지는 않겠지만 지나온 과거를 더 단단하게는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나는 아이를 다시 끌어안는다.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늦은 오후. 둘이서 침대를 뒹굴거릴 때였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면 나도 따라갈 거야. 아이는 그 생각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죽음에서도 죽음이란 생각에서도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엄마의 공백에 대한 불안이 일었을까. 엄마는 늘 아이의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자신의 과오로 여기는 재주가 있다. 내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 건 아닐까, 언니. 가까운 동네 친구에게 묻자 그녀는 의외로 간단하게 말했다. 사람은 점점 자라면서 뭔가를 알게 되잖아. 이제 아이에게 소중하다는 개념이 생긴 거야. 그래서 소중한 만큼 잃기 싫어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표현하는 거지.
'아이는 지금 자라는 거야.'
한참을 간지럽히며 침대에서 놀다 아이의 손을 잡았다. 딸, 사람은 모두 시간을 먹고 나이가 들어. 그건 무서운 게 아니야. 당연한 거지. 사실 엄마는 멋진 할머니가 꿈인걸? 아이는 깊고 까만 눈으로 나를 본다. 모든 걸 다 알아차릴듯한 눈, 사실 엄마도 제 엄마의 죽음이 무섭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눈. 그러면 엄마, 엄마는 힘센 할머니가 되어야 해. 힘센 할머니? 그건 또 어디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겠다고, 힘이 엄청 세고 튼튼한 할머니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힘세고 멋진 할머니. 또 하나의 꿈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자 아이와 내가 조금씩 자라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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