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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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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21. 2020

짝짝이 양말

어느 새벽의 기록, 20191115





푸른빛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검은 새벽,

수유를 끝내고 트림을 시키는데 아가의 왼발이 맨발이다. 왼쪽 양말은 어쨌니, 물어봐도 작은 입만 오물오물 대답이 없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대신해 손을 더듬어 양말을 집었다. 어젯밤 신기려다가 사이즈가 너무 커 아무 곳에나 던져놓은 한 짝이다. 양말 속에 발을 쏙 집어넣고는 짧은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짝을 맞춰 갈아 신길 법도 한데 설렁설렁 태평스러운 엄마는 이대로 종일 내버려 뒀다.



오늘은 77일로 딱 11주가 되었다.

생후 11주부터는 제3의 도약기로 또 한 번 작은 성장이 이뤄진다고 한다. 10주까지는 '인형 같은 꼬마 인간'이었다면 11주부터는 '생각하는 꼬마 인간'이라는 거다. 책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모든 아기의 성장 속도는 다르지만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약기마다 성장과 혼란이 함께 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울고 보채며 날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은 탓이다. 럭키 세븐이 더블이니 엄청 좋은 하루겠구나, 생각했는데 그저 더블로 힘들기만 한 하루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흐읍, 입으로 내 쉬고 하.

다시 코로 흐읍, 입으로 하.

요가에서 배운 깊은숨이 이럴 때는 참 요긴하다. 온종일 심호흡을 크게 여러 번 했다. 터질듯한 감정을 흘려보내듯 듯 쓸어내린다.

성장하느라 너도 고단한 거겠지, 알면서도 괜히 힘이 빠졌다.



내일이면 78일.

그러고 보면 아직 태어난 지 세 달도 되지 않았다.

내 뱃속에서 열 달을 있다 막 세상에 나온 지 두 달 남짓 된 찰떡이.

다시 한번 큰 숨을 들이마신다. 원기옥을 모으듯 모든 밝은 에너지를 끌어모아본다. 그만 지친 어깨를 툴툴 털고 일어서야지. 주먹을 꼭 쥐고 울음을 터트리는 이 아가는 나만 믿고 세상에 나온 거야.



찰떡아, 오늘 하루 힘들었지?

물어보려는데 짝짝이 양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 어쩌면 오늘 찰떡이의 예민함은 성장통이나 도약기랑은 상관없을지도 몰라.

취향을 선택하기에 너무 어린 77일 차 아기라도 발의 감각이나 흐릿한 시야로 짝짝이 양말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취향보다 더 기본적인 양식의 문제다. 얼른 아기 옷장으로 가 짝이 맞는 새 양말을 찾아본다.

‘미안해, 아가. 예쁜 꼬까 양말로 갈아 신겨 줄게.’



이 시절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어 마음대로 아기의 기분을 엉터리로 지레짐작하고 이제 다시는 양말 짝짝이로 신기지 말아야지,

쓸데없는 다짐을 하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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