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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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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23. 2020

내 어머니와 내 딸

사랑합니다 , 20191118





찰떡이는 제 아빠를 많이 닮았고 내 얼굴도 제법 있다.

당연한 얘기다. 

우린 그녀에게 유전자를 공평히 반씩 나눠줬으니까. 



그런데 이제 조금 크고 나서는 외할머니, 즉 나의 엄마를 닮았다는 얘기를 꽤 듣는다. 

가만 보면 호탕하게 웃는 얼굴의 어딘가가 조금, 가만히 입을 앙다물었을 때의 눈빛이 조금, 엄마의 것과 비슷하다. 딱히 어딘가가 닮았어,라고 이목구비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그렇다. 

임신했을 때 미워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선가... 찔리는 데가 있다. 

아기를 갖게 되면 친정엄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솟는다던데 난 외려 과거에 쌓인 엄마에 대한 미움이 그렇게도 솟았었다. 임신한 딸을 곁에 두고 담배피는 것도 꿍하게 마음에 쌓아두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이영애를 미워하는 건데 싶지만 뭐 이미 늦은 일이다. 



엄마는 그녀 나이 스물에 나를 임신했다. 

그녀가 만나던 남자, 즉 나의 아버지는 그녀보다 20살이 많았다. 

반대하는 외할머니를 피해 도망가다시피 살림을 차렸는데 그러고선 얼마 후, 남자는 '자기 딸'이라며 열 살 즈음의 여자애를 데려왔단다. 그녀 나이의 반만 한 아이였다. 

하루는 내게 고백하듯 말한 적이 있다. 



"계모도 얼마나 힘든지 아나. 가가 학교에다 내 땜에 집에 가기 싫다 캤다 카더라. 계모가 괴롭힌다고. 나는 그런 적도 없는데."



참 억울했나 보다. 거의 사십 년 전 일이다. 

자신의 딸이 아닌 여자애와 자신의 딸을 키우는 그녀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그녀의 남편이다. 



"하이고, 하루는 초빼이가 돼가꼬 집에 택시 타고 왔는데 그 택시 기사를 또 집에 데꼬 와서 술상을 차리라 카더라."



술이면 술, 폭력이면 폭력, 의심이면 의심, 뭐 하나 나쁜 것에서는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 장식하던 돌, 나무를 비롯해 집안 살림들을 집어던지던 그가 기억이 난다. 

왜 그런 사람을 사랑한 걸까. 

그 사람과 도망치기 전에 술은 한 번 마셔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술만 아니면 그렇게 자상한 사람이 없었다지만 매일 술을 마시면 그 자상함이 무슨 소용인가. 

뭐, 그 덕에 나와 동생은 태어났지만 그녀가 겪어야 했을 괴로움과 고통에 마음이 아리다. 



그 후, 그녀는 남자를 등지고 28에 자식 둘을 홀로 키웠다. 

쉬이 상상할 수는 없지만 거의 20년 전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대우는 말도 못 하게 힘들었을 거다. 

우리에게 그녀는 다정다감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는 누구보다 성실한 가장이었고 말투도 거칠고 따뜻한 말 한번 한적 없는 엄마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벽이 돼준 엄마다. 거친 세상은 그녀의 손과 살결뿐만 아니라 말투, 신경을 거칠게도 만들었지만 그녀의 천성은 철벽처럼 그녀를 지켰다. 그녀의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긍정적인 성격은 하늘이 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결코 부술 수 없었던 거다. 



어렸을 적 언젠가 학교에서 나눠준 종이에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넣어야 하는 칸이 있었다. 그곳에 엄마 이름 세 글자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진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엄마였다면 남자가 버린 남매를 그 어린 나이에 단단히 지킬 수 있었을까. 



"죽을라고도 캤지. 니랑 웅이랑 고마 셋이서 죽을라고도 캤지." 



그때도 그녀의 천성은 말렸을 거다.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쓰다듬으며 안아줬을 거다. 난 진심으로 그녀를 존경한다. 

미워하기도 참 많이 미워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가진 가장 큰 감정은 사랑이고 존경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임신했을 때 미워했던 감정이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감사한 마음은 어디 가고 차별 때문에 뒤틀린 감정, 무관심에 의한 슬픔이 잠 못 드는 새벽 내 방문에 그렇게 쳐들어왔다. 그 감정들이 돌고 돌아 엄마의 얼굴을 내 아가에게 톡, 물결 지듯 떨어트린 걸까. 

그 물결의 자락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일렁이고 있을까. 

그래서 내가 아가에게 사랑을 주면 엄마에게도 닿을까. 

그러면 좋을 텐데. 참 좋을 텐데. 



아기를 낳은 내게 엄마는 말했다. 



"니 딸 이쁘제. 이 봐라. 니는 내한테 첫 딸인데 내가 니를 우얘 안 이뻐했겠노. 얼마나 소중했겠노."



'몰라.'라고 대답했지만 침잠해 있던 서러움이 녹았다. 

평생을 무뚝뚝했던 엄마가 내민 최선의 애정 표현이자 화해의 말이었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너무나 어렵다. 

엄마와 나, 나와 찰떡이.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놓인 상황과 세상에서 나의 엄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은 게 아닐까 싶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귀여운 정여사. 

나와는 너무 다른 성향과 기운의 정여사. 


정여사를 닮은 내 딸을 아끼면 그 사랑이 그녀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받지 못한 모든 어린 시절의 사랑이 이렇게라도 채워졌으면 좋겠다. 

내 어머니와 내 딸.

그녀들 앞에 놓인 삶이 따뜻함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길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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