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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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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24. 2020

아기와 고양이

육아 육묘, 20191118 




아기를 기르다 보면 오히려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는다. 

알지 못하던 내 모습이 튀어나오고, 불거지고 중심에 선다. 나를 닮은 아기를 키우며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게 육아인가 보다. 


아기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며 느끼는 것도 많다. 고양이만 키웠을 땐 미처 몰랐고 아마도 아기만 키웠다면 절대 몰랐을 감정이다. 그중 가장 큰 깨우침(?)은 이것이다. 

'내 사랑은 한정된 양이 있구나.’ 

엄밀히 말하자면 사랑의 양이 한정되었다기보다 줄 수 있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두 고양이에게 쏟던 애정과 관심이 이젠 오롯이 찰떡이에게 향하는 탓에 고양이들은 투명 냥이라도 된 듯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가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갈까, 고양이의 몸짓과 굴러다니는 털 뭉치를 예의 주시한다. 

이전의 사랑스런 눈빛이 아닌 날카로운 경계의 눈빛으로. 

이게 일종의 어미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지만 둘째 고양이, 후추를 대하는 내 모습에는 스스로 흠칫하며 좀 씁쓸하기까지 했다. 나의 '작은 아가 후추'(남들 눈엔 그저 커다란 고양이입니다만)를 이런 눈빛으로 보다니..... 그것도 내가!



그래서 더욱 찹쌀떡 군의 행동에 안도했다.

고양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던 거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지.' 

태어날 때 정해진 천성 natural born인지, 어렸을 적 받아온 사랑의 차이인지, 아빠와 엄마라는 역할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아가가 생기고 고양이를 대하는 우리 둘은 참 다르다. 

그리고 그게 참 안심이다. 

혹시 모를 고양이와 아기 사이의 사고를 경계할 사람과 고양이에게 변함없는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는 건 모두에게 다행인 일이니까. 



물론 내가 두 고양이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갈 내 에너지가 모두 작은 인간 아기에게 쏟아졌을 뿐이다. 



정말 내 안의 사랑은 한정되어 있는 걸까. 

엄마의 이름으로 예민해진 건지도 모른다.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작고 약한 찰떡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아기를 키우는 일엔 온 힘과 신경이 필요하다. 그러니 어쩌면 예민해졌다는 말보다는 지쳤단 말이 더 맞겠다. 아기의 분유를 타기 위해 부엌으로 걸어가는 새벽, '냐냐'거리며 따라붙는 후추를, 매번 말려도 젖병과 식기가 있는 싱크대로 뛰어오르는 토비를, 쉴 새 없이 쓸어도 뭉쳐 다니는 털을 끌어안을 힘이 없다. 쓰다듬을 여유가 내겐 없다. 



그래서 다행이다. 

에너지와 사랑이 충만한 찹쌀떡 군이 있어서. 

그는 고양이들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든든한 '내 편'이다. 



한정 없는 사랑을 지닌 그와 그의 딸, 

두 고양이. 

그리고 

나.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하루들을 함께하며 살아갈 거다. 

그 속에 변함없는 사랑이 스며들도록 사랑을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야겠다. 

혹, 잠시 잠깐 동이 나더라도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우물처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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