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 갗

by 윤신



죽은 것으로부터 피부 한 점을 떼어내 외부를 만들고 속을 채운다. 미세한 기억 하나에 살을 붙여 기다리노라면, 잠들던 속삭임이 깨어나 말을 건다. 나는 듣는다. 새로 태어난 몸에 시제를 바꾸어 현재의 몸을 입힌다. 바람과 상상을 더해 준다. 부활에 색채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것들은 무한히 늘어,


여름날 맨몸으로 들어간 차가운 계곡은 이미 말라 뛰어들지 못하지.

젊은 엄마의 긴 생머리는 사각사각 잘리더니 허옇게 눈이 내렸고,

갓 태어나 벌건 아이의 몸은 벌써 햇볕에 검게 그을렸다.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이름 붙이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 것들.


희고 흰 숨을 토해내고 죽어가는 생활들.


거스러미처럼 일어나는 단어들을 잡고 당기면

찢어지는 살갗처럼 상처가 남고

뜯어낸 상처 위로는 새살이 돋아.


기약도 없이


까마득히 죽어버린 날들 사이에서 나를 살게 하던 말을 찾아낸 적도 있지. 죽어가는 것 사이에서 헤매는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에 의하고 나를 바라고 기다리는 말들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어서,


새 몸의 말들로 태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끔은 죽음을 들추는 일이 불가피하지 않겠어,

누구를 위한 일이든 아니든 붙들고 있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겠어.


이것 봐,

오늘 꺼낸 말들에선 물크러진 사과향이 나네.


조금은 달고 조금은 지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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