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몸

*요가 수련기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by 윤신



노트를 펼쳐 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 안쪽에 <요가>라고 쓰고 왼쪽에는 이로 인해 얻을 부분을, 오른쪽에는 각오하고 감당해야 할 일을 적는다. 여기서 <요가>는 ‘요가 지도자 자격증’. 나는 이 단어를 십몇 년째 붙잡고 있다.


'할까 말까 할지 말지 할락 말락*'이라는 가사가 자동 배경음으로 깔리는 그 시작은 앤초비 샌드위치가 맛있던 시드니의 피시마켓 근처에 있던 요가원이다. 일하면서 가끔 보타닉 가든이나 달리던, 생각 없이 철새처럼 머물던 무렵 이제는 좋아하는 무수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내 것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 욕망이라는 단어는 무겁지만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 어떤 것이 욕망을 대체할 수 있을까. 때마침 원데이로 수업을 듣던 곳에서 티칭을 위한 요가 수업이 열린다기에 구체적인 금액과 일정을 상담했지만 한동안 고민하다 결국 등록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놓쳤다기보다는 놓았다. 언어와 시간을 핑계 삼으며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시작도 전에 마음이 쉽게 허무해졌다. 거기에 그때의 난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누구보다 잘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래서 편한 선택을 했다. 지금의 생활에 변동이 없고, 그래서 앞으로의 생활에도 변동이 없을 안락한 선택. 어떤 것도 버리지 않음으로써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 무미의 선택.


두 번째 할까 말까는 칠 년 전 이곳으로 이사하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여전히 요가가 궁금했고 더 깊이 배우고 싶은 갈망 같은 것이 일었지만 (이번에는 갈망이다) 역시 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가야 하는 거리와 금액이 부담스러웠다. 매번 그렇듯 변명은 늘 조금씩 달라지지만, 결론은 같다. 이 시간과 돈을 써서 무엇을 얻을까, 다시 의심스러워졌다. 나는 여기까지 쓰고 가만히 '의심'이라는 단어를 본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따지기 위해 마음을 쓴 것인지, 아니면 변해야 하는 일상을 감당하고 그 일에 바쳐야 할 시간과 돈을 번거롭게 생각한 건지. 지속하던 일상을 깨트리는 일은 50m 풀에서 첫 다이빙을 하는 일만큼이나 두렵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작년부터 지금까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의 시간도 길어졌지만 더 깊게, 더 넓게 요가를 대하고 싶은 마음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작년 여름, 평생 하고 싶은 직업에 대해 골몰할 즈음 '요가'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도사를 위한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미뤄온 시간보다 두려움의 몸집이 더 커졌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더 시간을 써야 하는 시점에 이게 옳은 선택일까. 이제 나의 시간은 나의 것만이 아니다. 내가 요가원에 있는 동안, 누군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고 그 사실은 나를 작게 만든다. 내가 선택하는 시간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시간이 된다. 돈 역시도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는 수업비를 계산하며 명품백을 질렀다고 호쾌히 웃었다지만 나는 작은 파우치 하나에도 오래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두 달을 혼자 고민하다 조심스레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더니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 있을 때 하렴, 하고 싶은 건 해야지요. 더 이상 미루지 않으려 요가원을 찾아갔다. '할 수 있을까요' 작은 물음에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생각보다 단호한 의지가 돌아왔다. 단단한 그녀의 눈을 보니 어쩐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토록 날 좌절시키던 핀차마유라사나도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깊게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이 주를 더 고민했다. 일곱 사람 및 챗 gpt에게도 의견을 물었으며, 여전히 요가와 시간과 재정 상태를 저울질한다. '것 같다'가 '것이다'로 가는 길은 한참이나 먼 모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xciSoXLk98



*23년 나온 싱글 앨범의 장기하 노래 <해>의 가사. 이 노래에는 '해'라는 말이 스물여섯 번 나오고 그다음 곡의 제목은 <할 건지 말건지>이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