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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Dec 28. 2024

퇴원 후의 생활

다시는 직업을 갖지 못할 거 같아

 나는 퇴원을 했다. 아직도 수술한 다리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영원히 이렇게 다리를 절며 살 거 같았다. 너무 슬프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해졌었다. 집에서 엄마한테 따져 물었다. 내 다리가 왜 이렇냐고 그러나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안 만났던 사람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살던 연립의 옆집에 살았던 여동생을 만났다 그 애는 간호사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내가 다리 절면서 걸으니 고관절이라고 얘기해 줬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고관절 수술을 한 지 알았다. 목발을 짚지 않고 생활했다. 계속해서 다리를 절었다.


 옥탑방에 돌아왔을 때 바깥으로 난 창문에 서있으면 고소공포증이 느껴졌다. 나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 뛰어내린 뒤로 이렇게 된 거 같다. 나는 저는 다리를 빨리 되돌리려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수술한 다리는 아프기만 했다.

 

그러고 그 재수 없는 옥탑방을 벗어났다. 그 동네에는 우리가 이사할 만한 집이 없어 이모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고 이모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이사한 집은 여름이었는데 굉장히 시원했다. 나는 방 3개 중에 제일 작은 서늘한 방에 누웠다. '우와 내 방이 생긴다.' 할머니는 이사한 집에 귀신을 쫓는다고 팥이며 소금을 방 모서리에 놓아두었다. 나는 아픈 다리 때문인지 시원해서 인지 잠이 들었다.


 옥탑방에서 뛰어내려 다친 다리에 대해 일부러 얘기할 때면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한다. 뛰어내렸다고 하면 날 이상하게 보니까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서 다쳤다고 둘러댄다. 가족 외에는 내 다친 다리의 원인을 아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친해져도 난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시에서 주관하는 세무법무사무원 행정인력양성과정에 합격했다. 처음 연락 왔을 때는 안타깝게 떨어졌다고 해놓고서는 재차 온 연락에서는 공부하러 오란다. 나는 추가모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공부할 때 나는 항상 일찍 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배웠다. 나는 원래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장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시간을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또 퇴사하고 할 일도 없고 다리가 아프니 급하게 서두르기 힘들었다. 앞자리에 앉은 것은 내가 눈이 나쁘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도 있어서 인 거 같다.


 수업 초반에 자기소개를 하고 반장을 뽑았다. 나는 후보에 올랐었는데 어떤 나이가 제일 많은 남자가 내가 자기소개하는 것을 보고 후보로 추천해 줬다. 하지만 우스갯거리가 되었었다. 표가 단 2표가 나왔는데 선생님이 짝지랑 본인이 뽑았나 보네 하며 놀렸었다. 나는 사실 다른 사람을 뽑았고 진짜 1표는 짝지 언니가 날 뽑아준 것이었다. 그 인간은 날 후보로 세우고는 표를 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매일 짝지를 바꿔앉으니 다음날 동갑 남학생과 같이 앉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반장투표할 때 나에게 표를 줬었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면서 자기는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한다면서 연예인 중에 스칼렛 요한슨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첫 시작부터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수업을 열심히 다녔다.


 내가 공부하는 세무법무사무원 양성과정 기수에 나랑 동갑인 친구들이 많았다. 나 포함해서 7-8명이 동갑이었다. 우리는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내가 다녀보니 취직을 하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대졸이었다. 나는 고졸이었는데 행운으로 그 과정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거 같았다. 수업을 하는 장소는 2년제 전문대였는데 그 양성과정이 학벌 위주가 아닌 이유가 그 대학의 학생이 같이 공부해서 인 거 같았다. 짝지도 바꿔가며 앉았었는데 내 옆에 앉은 남학생이 그 대학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최종학력에 고졸 검정고시라고 적은 걸 보았다. 나는 고졸이라 썼는데 우린 그렇게 서로의 최종학력을 알게 되었다. 그 애의 나이는 17-18살이었는데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그리고 조금 친해졌었다. 내가 고졸 학벌에도 취직할 수 있었던 건 그 남학생 덕분인거 같다.


 그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던 친구가 내게 관심을 보이자 나랑 법원에 실습을 같이 다녔던 여자친구가 말했다. "저기 여자친구랑 사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누가 초콜렛을 줘서 나눠먹었는데 그 친구는 기분이 나빴는지 손에 받은 초콜렛을 구겼다. 그 때의 그 여자친구한테 굉장히 고맙다. 하지만 지금은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앉는다. 사실 내가 속좁게 굴어서 그렇게 됐다. 그 애가 날 도와준 거 같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친구들과 동기들은 이제 만나지 않는다. 사람의 인연은 다 때가 있나 보다. 그러니 잘 지내야 할 거 같다.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인연들이었는데 나는 잘 지키지 못한 거 같다. 이론 수업, 실습, 수료하고 취직을 했지만 난 거의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해서 법무사무원 취직 자리를 놓쳤다. 나는 직장을 얻어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연말에 모임이 있어 찾아갔는데 나는 그곳에 가서 말 한마디로 연말모임 분위기를 망쳤다. 담당 교수님이 이제 법무사무원 위치가 올라갔다고 했는데 나는 뭐가 불만이었는지 초대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법무사라도 나왔나요."라고 말했다. 그 뒤 나는 그들의 모임에 초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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