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쓸 때는 요리하듯 쓰면 된다고 하였다. 요리하듯 쓴다는 건 무얼까? 곰곰이 곱씹어 보아도 쉽게 와닿지 않는 글귀였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쓰다가 막막해지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이 글귀를 떠올리곤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이 글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엉조림 때문이었다. 우엉조림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드는 요리였다. 일단 칼등으로 우엉의 겉껍질을 손질한다. 손질한 우엉 뿌리를 깨끗한 물로 씻은 다음 어슷썰기를 하고, 그 어슷썰기를 한 우엉 뿌리를 다시 채썰기로 썬다. 채 썬 우엉은 식초 물에 20분간 담가서 섬유질이 연해지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짜로 나무뿌리를 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분 동안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오이무침을 만든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이때 휴대폰을 살짝 만지작거려도 좋다. 그러고 있노라면, 드디어 20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휴대폰 타이머의 알람이 유난스럽게 울린다.
체에 밭쳐 물기를 뺀 우엉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한다. 기름에 살살 볶다가 간장과 설탕, 미림으로 간을 맞추고, 물을 넣어 큰불에 조린다. 또다시 시간과의 싸움(?)이다. 물이 적당하게 졸아들었으면 물엿을 넣고 휘휘 저어준다. 그렇게 약한 불에 졸인 우엉이 진한 카라멜 색을 띠면, 쫀득한 식감과 쌉싸름한 향이 매력인 우엉조림 완성이다.
처음에 만들었던 우엉조림은 물을 너무 많이 넣어 실패했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잘 먹었다. 두 번째 우엉조림은 덜 달았지만, 짜지 않아 또 어떻게든 잘 먹고 있다.
이리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요리하듯'이 이해됐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아주아주 오래 걸리는 글도 있었고, 또 그렇지 않은 글도 있었다. 어떤 건 잘 못쓰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고쳐서 좋아 보이는 글로 만들기도 했다.
마트에서 우엉을 사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하나로 이어지는 많은 과정이, 밥상에 올라 내 입속으로 그리고 배속으로 들어오기까지. 하나도 허투루 되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