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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Jun 09. 2019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를 수십 번 봤지만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와 닿기는 처음이다중학생이었던 소녀 후지이 이츠키는 새해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그로 인해 어머니가 몸져누워 학교에 가지 못한다때마침두두룩하게 눈 쌓인 후지이 이츠키 집으로 누군가 찾아오는데…… 바로 이름이 같은 소년 후지이 이츠키다소년 후지이 이츠키는 이사를 하기 전도서관에서 빌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소녀에게 들이밀며대신 반납해주기를 부탁(강요)한다여기서 내 호기심은어째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을까하는 것이었다혹시 감독의 맥거핀이라면 나는 보기 좋게 걸렸다소설책이나 영화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 또는 장면이 나오면호기심이 생겨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무튼소녀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소년 후지이 이츠키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지만소녀 후지이 이츠키는 어째서인지 황당한 듯 실소를 터트린다그리고 여기가 명장면이다눈을 돌리고 웃는 소녀 후지이 이츠키를지그시 바라보는 소년 후지이 이츠키의 눈동자. 3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 세상 모든 짝사랑을 호소하는 노래와 소설과 시가 담긴 소년의 눈동자가 아른거리며스크린 너머로 우리를 바라본다물론 정확하게는 소녀 이츠키를 바라보는 것이겠지만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건네는 장면과 소년의 눈동자에서 그만와장창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세상에는 그렇게사랑이 사랑이었는지 모르는 관계와 끝이 끝이었는지 모르고 끝나는 관계가 있다성인이 된 후지이 이츠키와 연인 관계였지만시간이 지났어도 잊지 못하고설원의 한복판에서 안녕히 잘 있냐고잘 지내고 있냐고 절규의 가까운 외침을 하는 와나타베 히로코가 이해됐다.
  
우리의 시작은 영화 4월의 이야기》 같았다각자의 생활에서 심란했던 겨울을 보내고겨우 희망에 찬 봄을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서로의 생각에 서툴렀고일방적인 감정은 상대방에게 쉽게 물들었지만다른 쪽은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정이 드는 것이 무서워 경계선 앞에 서서 선 앞으로 다가가기를 오래도록 망설였다작별할 때는 잔인했다부둥켜안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지만사실 끝이라고 했지만우린 끝이 아니기를……그 잔인한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나는 떠올려야 한다아침의 고요한 응달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던 그 사람의 눈빛을 나는 매일 떠올리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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