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를 수십 번 봤지만, 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와 닿기는 처음이다. 중학생이었던 소녀 후지이 이츠키는 새해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몸져누워 학교에 가지 못한다. 때마침, 두두룩하게 눈 쌓인 후지이 이츠키 집으로 누군가 찾아오는데…… 바로 이름이 같은 소년 후지이 이츠키다. 소년 후지이 이츠키는 이사를 하기 전, 도서관에서 빌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소녀에게 들이밀며, 대신 반납해주기를 부탁(강요)한다. 여기서 내 호기심은, 어째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감독의 맥거핀이라면 나는 보기 좋게 걸렸다. 소설책이나 영화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 또는 장면이 나오면, 호기심이 생겨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무튼, 소녀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소년 후지이 이츠키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지만, 소녀 후지이 이츠키는 어째서인지 황당한 듯 실소를 터트린다. 그리고 여기가 명장면이다. 눈을 돌리고 웃는 소녀 후지이 이츠키를, 지그시 바라보는 소년 후지이 이츠키의 눈동자. 3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이 세상 모든 짝사랑을 호소하는 노래와 소설과 시가 담긴 소년의 눈동자가 아른거리며, 스크린 너머로 우리를 바라본다. 물론 정확하게는 소녀 이츠키를 바라보는 것이겠지만, 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건네는 장면과 소년의 눈동자에서 그만, 와장창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세상에는 그렇게, 사랑이 사랑이었는지 모르는 관계와 끝이 끝이었는지 모르고 끝나는 관계가 있다. 성인이 된 후지이 이츠키와 연인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잊지 못하고, 설원의 한복판에서 안녕히 잘 있냐고, 잘 지내고 있냐고 절규의 가까운 외침을 하는 와나타베 히로코가 이해됐다.
우리의 시작은 영화 《4월의 이야기》 같았다. 각자의 생활에서 심란했던 겨울을 보내고, 겨우 희망에 찬 봄을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서로의 생각에 서툴렀고, 일방적인 감정은 상대방에게 쉽게 물들었지만, 다른 쪽은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정이 드는 것이 무서워 경계선 앞에 서서 선 앞으로 다가가기를 오래도록 망설였다. 작별할 때는 잔인했다. 부둥켜안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지만, 사실 끝이라고 했지만, 우린 끝이 아니기를……. 그 잔인한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나는 떠올려야 한다. 아침의 고요한 응달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던 그 사람의 눈빛을 나는 매일 떠올리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