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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May 25. 2019

오카사 미스터리

23살 희와 함께 2주 동안 도쿄와 오사카를 여행했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넘어갈 때는 심야버스를 타고 갔더랬다.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 넘었었는데, 매표소 직원에게는 우리가 어리게 보였는지 일반용 푯값보다 조금 저렴한 청춘 요금(우리나라 ‘내일로 티켓’과 비슷하다)을 내고 버스를 타서 희미하게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같은 낭만이 넘칠 것 같았던 심야버스는 생각과 달리 몹시 불편했다. 피곤한 듯 곯아떨어진 젊은이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는 기본, 의자를 뒤로 젖혀도 목과 허리와 엉덩이, 어디 하나 편한 곳이 없어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더랬다. 버스 안에서 1박을 한다는 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전혀 낭비할 것이 없지만, 정말이지 새파랗게 젊은 청춘이니까 가능했던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따금 <꽃보다 할배>의 할아버지들처럼 버스 안에서 1박을 하거나(그런 적 있으시던가?) 비슷한 또래들이 1박 하는 장면을 영상 매체를 통해 보게 되면 함께 고생한 것 같은 묘한 공감을 느꼈다.


오사카의 마츠야마치 전철역 근처의 한인 민박집에서 보내는 둘째 날 저녁이었을 것이다. 희와 나는 날씨 좋은 5월에 여행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와 일본으로 여행 오면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해 두었던 멜론빵을 희와 함께 나눠 먹으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있을 때까지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리도록 허무한 고독함이 엄습해 오리라고는 말이다.


담배를 피우러 혼자 방 밖으로 나갔다. 직사각형의 좁은 창문 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것을 보고 있었다. 어둡고 컴컴한 풍경에 머뭇거리던 몇 개의 불빛이 반짝이던 것을 기억한다. 그 불빛들을 하나 둘 세어보다가 강렬한 고독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가 무작정 보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가슴을 저미는 엄청난 그리움에 사무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체 내가 그리워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아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데, 난 지금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먼 이국의 땅, 이곳에서 너를 그리워하고 있어. 라고 거의 울 지경으로 허무한 독백을 했다.

대상조차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외롭고 아팠다. 그리워할 명확한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뜨거운 불꽃처럼 마구 피어올랐다. 어떤 나쁜 놈이라도, 어떤 꼴 보기 싫어 죽겠는 놈이라도, 공항에서 받은 무료 해외 전화 카드를 가지고 당장 전화를 해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열렬하게 고백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게 비참할 뿐이었다.

차라리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향수병이라고 하면 훨씬 나았을 테다. 일주일 뒤에 돌아갈 한국 땅을 막연하게 그리워한 감정이었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렇게 초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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