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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Jul 15. 2019

고문

확실히 사람은 극심한 곤경에 빠져 근심과 걱정이 계속되면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래도 어째선지 가지고 온 김밥을 꺼내 먹기로 했다. 한 달 전에 먹고 남은 라면 스프로 국물을 만들고, 어젯밤의 김밥을 꺼내 펼쳤는데, 냄새가 수상했다. 김밥 한 개를 들고 이리저리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본들. 일단 입에 넣었다. 역시. 쿰쿰한 냄새가 난다. 상한 것이다. 심하지도 않고, 이 정도 상했다고 죽거나 탈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아 계속 먹었다. 그래도 역시. 냄새가 살짝 못 견디게 역겨운 건… 라면 국물로 눌러서 삼켰다.


집에 가면 멀쩡한 밥과 반찬은 있다. 하지만, 나의 현재 상황이 이 정도라는 걸 기록해 두고 싶었다. 냄새가 난다면 먹는 걸 그만두고,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 하나 사 오면 될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편의점에 갈 수 없는 형편이니까. 언젠가 쓰레기통이라도 뒤질지 모르는 상황이 올 것만 같기도 하고. 노트북과 아이폰을 쓰고, 인터넷을 쓰는데,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다만. 벌을.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쉰내 나는 김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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