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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Jul 05. 2020

짧은, 여름의 에크리튀르 (1)

짧은 휴식을 끝내고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는 이러한 말을 적었다.

늘 시간과 돈과 날씨에 제약을 둬서 쉽게 떠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이다. 특히 작년 가을에 시간과 돈이 됐음에도 완벽한 날씨를 바라는 바람에 아깝게 때만 놓치고 말았다.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입밖에 나왔을 때는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서 나오듯 다녀오고 싶다. 그래서 이번 짧은 휴식을 계획했을 때는 장맛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릴 거라는 일기 예보를 보았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가고 싶은 날짜에 호텔을 예약했다. 어차피 호텔 방에서 집필하고 독서할 생각이었기에 비야 오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이었다.

쉬는 것은 아직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새로운 어떤 것이었다. 늘 집과 작업실만을 기계적으로 왕복하는데 어찌해서 글 쓸 '소재'가 생기겠느냐 이 말이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필요했고, 새로운 장소의 냄새와 분위기와 공기와 색깔과 생각을 육체와 마음에 담을 필요성이 있었다.


2박 3일의 휴식 시간 동안 작업실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더니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쉬든 말든, 어디를 가든 말든 누구도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그들의 반응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의외였다. 특히 나는 지인 A 씨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열변을 토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 말에 A 씨가 공감해준 것이 매우 고마웠다.


준비는, 캐리어에 노트북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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