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종종, 아무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거나 잠적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과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뚜렷한 존재감이 없는 나를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찾아 헤맬까. 찾아 주기는 할까? 하면서 나를 향한 사랑과 우정을 시험해 보고 싶어 했고, 그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지금은 굳이 누군가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험해 본다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고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마음에 대한 증명을 원하는 마음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모든 건 한 인간이 가졌던 '불안'이라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번 짧은 휴식에 관해서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것은, 그러니까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예전처럼 불안했던 마음으로 사랑을 시험해 보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말하지 못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만 말하고 싶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었다. 딱 49페이지, 6장 전까지 읽었다. 문득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져 제일 뒤에 있는 그의 연보를 찾아보았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장차 자신을 평생 먹여 살릴 수 있는 책 한 권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말은 전설이 되었고, 나는 경이로움과 복잡한 마음으로 그가 천재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평생 먹여 살려 줄 소설이 이 세상에 탄생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을 작가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켰다는 것, 만들어 냈다는 것, 썼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부러운 일이다. 그는 그 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온전히 그의 실력이고 능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글을 써왔던 과정에는 우리가 모르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겠지. 그 험난한 과정에서 태어난 것.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