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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살아가는힘 Aug 04. 2020

생생하게 살아있기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내가 돈 벌어다 주는 기계야?”

 라는 남편의 가볍지만 뼈 있는 말에 나는 “그렇게 살지마.”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내 머릿속에 맴도는 이야기는 “그럼 나는 노예야?”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고 난 뒤 아이들이 남긴 음식에 간단히 인스턴트커피에 우유를 붓고 모닝 라테를 즐기는 것도 잠시 아이들의 요구들이 나를 기다린다.

“엄마, 이거 안되잖아. 이거 해줘.”

아이들끼리 싸우지만 않아도 나의 아침은 정신없지만 꽤 상쾌하다.      


그러나 오늘은 괜스레 집에 있는 공기청정기며, 선풍기를 다 내놓고 닦으면서 생각을 곱씹게 된다.

“그럼 나는 노예야?”


해도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이것도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이 어리고 한시도 떨어지지 못할 때 내 하루를 바쳤지만 성과급도 진급도 월급도 하다못해 감사해주는 사람도 없이 이제는 사회생활을 해도 써주는 곳도 없고 남편보다도 돈을 못 버는 현실,  그리고 엄마 혹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나 아닌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왔던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하였다. 내가 노예라고 느낀 가장  현타가 오는 지점은 내 통장에 100만 원도 없다는 현실이다. 지난 10년간의 가정에서 나의 노동이 두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범한 가정과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걱정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하여 가정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데 큰 기여 했지만 한 개인으로 볼 때에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남편에게는 “그렇게 살지마!”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나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만 드는 건 왜 일까? 나에게도 “노예로 살지 말고 너 자신으로 살아”라고 말하지 못하는 건 또 왜 일까?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일까?      

  


    대상관계 심리학자인 도널드 위니캇은 심리적인 건강에 대한 목표에 대해 ‘생생하게 살아있음,’ ‘행복한 상태의 유지,’ ‘깨어있음’을 목표로 삼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행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참자기’로 사는 것이며, 이러한 참자기의 특징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사회적 권위나 인정을 추구하며 참자기는 저 깊이 숨겨두고 비즈니스 미소를 머금고 살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내 표정은 어떠한가? 나 자신의 모습은 내가 거울을 보지 않는 이상 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 없이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참자기의 특징과 반대에 있는 거짓 자기처럼 환경에 순응하고 다른 사람들 사는 것에 맞추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의 이면에는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불안과 공포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에 이득이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요구에 내 요구를 돌볼 수 없는 순간이 많은 엄마로서의 삶은 나에게 피로와 우울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나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느끼고 그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공감을 얻을 때 나의 정체감(Sence of I)은 안정감을 얻는다. 육아에 있어서 백전백패하는 나의 헝클어지고 무너진 엄마상은 나를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만들기에 방어를 위해 들고 있었던 만신창이가 된 거짓 자기를 내려놓고 무장해제의 상태를 만든다.      


“그래. 내가 다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없는 순간도 있어.”

“그래 지금 내가 힘들구나.. 힘들다고 해도 되는 거구나..”      


생생하게 살아있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마주 보며 내 감정과 욕구를 일치시키는 감각을 살려야 한다.    

  

‘내가 노예야’라고 생각하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삶의 생생함이 있는가?’ 혹은 ‘생생함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는가?’에 대한 마주함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점을 주는 큰 모멘텀이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초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용기 있게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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