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을살아가는힘 Aug 22. 2020

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자기감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생생하게 살아있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자기감의 일치를 향해 있거나 일치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문뜩 내 의지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삶이 어디론가 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그저 처음에는 부모의 기대를 시작으로 내가 하는 역할(딸, 학생, 아내, 며느리, 엄마..)에 따라 "어떠어떠해야만 한다"는 학습으로 외부와 내부적 동기로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공동체 문화와 어울려 지내는 것이 덕목인 한국사회에서 사회성이 좋다는 것은 생존본능처럼 느껴진다. 어떤 집단이나 모임에 속하기 위해 아이부터 어른까지 노력하는 모습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 자신으로 사는 것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음은 확실하다.      


출신, 학교, 회사, 주거지역 및 형태, 소유한 물건(차, 옷, 신발, 시계, 가방, 심지어 아이들 유아 차(유모차)까지)에 따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소유"하지 않으면 nothing or someone 이 될 것 같은 불안을 마주하지 않으려 소유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해왔던 건 은 아닐까?     


과연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유일까? 행동일까?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 자기 자신을 사는 것은 무언인지에 대한 성찰들, 다양한 직업 혹은 취미, 요즘의 부캐릭터, 혹은 이중 직업이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     

 

이전의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왔다. 그것이 직업이든 역할이든 그 역할에 대한 고수와 되려고 하려는 노력들은 숭고한 가치와 신념을 유지시켜주는 긍정적 기능을 해왔다.   예를 들어 ‘엄마’라는 역할을 대입시켜봤을 때, 아이를 일단 낳으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삶보다는(자신의 삶이 있다는 것에 아무런 인지나 감각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그 아이를 기르고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여 사회에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아이를 양산해 내는 것이 덕목이었다. ‘아버지(가족으로부터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 느낌이라 아빠라는 단어보다는 아버지가 더 어울린다.)’라는 역할을 생각해보면, 수많은 경쟁을 이겨내고 자존심을 대가로 치루든지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여 경제적인 자원인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큰 덕목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역할이 주어지며 그동안의 일반적인 믿음은 역할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이뤄내는 것에 ‘열심히 사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믿음이 깨지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이 결코 우리가 원하는 역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된다.


엄마, 아빠, 혹은 어떤 직업 등의 역할이 자신에게 정체성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에서 구성되어온 정체성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체성은 “자기 자신이 된 느낌”을 보장하진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먹이고 기르고 가르치고 돌보고 아이가 성장하고 난 다음 많은 어머니들은 공허함과 우울감을 가지게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된 느낌”은 어떤 감각이자 행복함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즉, 내 안의 욕구들 간의 일치감으로 내가 내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오늘을 사는데 큰 힘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양한 정체성들은 사람들의 적응 기제 혹은 삶의 본능이 발동되면서 생겨난 것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서 산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연결된 역할들 안에서 행복감을 어느 정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엄마 역할하기가 힘들다고 이 역할을 저버리기엔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이 엄청나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만 살기에는 내가 나로 사는 느낌은 점차 무뎌지고, 가족이라는 보물을 내가 강제로 좌지우지하거나 나를 가두는 족쇄 정도로만 여기게 되는 큰 실수를 하게 될 것만 같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생생하게 살아있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