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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n 24. 2021

[일상의 단상]-<고통의 순간들이 소멸될 때>

*고통의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었다.*

[일상의 단상]-<고통의 순간들이 소멸될 때>

*고통의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었다.*


[‘감사함’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제목 : 고통의 순간들이 소멸될 때 

부제 : 고통의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었다.     


나는 오랜 취미생활로 책모임을 하고 있다.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은 늘 의미롭다. 얼마전 북토크에서 만난 한 책친구님은 감사일기를 쓴다고 하셨다. 책이야기를 나누다 얼핏 스치듯 내어놓은 그 말씀을 듣는데, 아주 오래전 독서토론 모임에서 만났었던 한 분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분은 중년의 아주머니셨는데 늘 중간 자리쯤에 앉아 참석자들을 좌우로 살펴보며, 북토크 멤버님의 어떤 발언에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게다가 명랑한 하이톤으로 ‘그래 그래! 맞아 맞아!’ 맞짱구를 잘 쳐 주셔서 일명 ‘그래그래언니’로 통하던 분이셨다. 2시간의 북토크 시간이 누구에게는 참 지루하고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할 말을 못다 한 듯 다소 짧게도 느껴질 수 있을 만큼, 같은 상황에서도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책수다의 이런 재미에 보태어 평안함과 위로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책친구님들은 북토크가 끝난 후 뒷풀이 만남까지 이어가게 되기도 했는데, 그럴 땐 낯선 타인이라는 서로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풀게 되면서 사적인 대화까지도 편안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래그래언니’는 남편이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환자인 까닭에 살면서 우여곡절이 참 많았었는데, 외동아들이 군입대를 하면서 ‘빈둥지 증후군’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생각을 집중시킬 뭔가를 찾다가 다양한 강좌들에 참여해 보기도 했고 운동도 시작했으며 책모임에도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젊은 날에는 뭘 잘 몰라서 스스로 마음을 힘겹게 만들기도 하고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산 날들도 많았었는데, 어느 날 지역의 여성복지관에서 하는 교양수업에 참석했다가 삶에 대한 자세를 달리 갖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풀어놓으셨다. 그 단기 강좌는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는 방법론’에 대한 교양강좌였는데, 독서하고 명상하며 감사일기를 쓰면서 삶의 좋은 습관을 들이고 가슴이 뛰는 삶을 살아가라는 핵심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그때 체득한 것들 중 특히 유익했던 것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했었다.      


이번 북토크 멤버님이 스치듯 말씀하신 ‘감사일기’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은 연락이 끊겨버린 ‘그래그래언니’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그때 그 ‘감사’라는 말이 나에게는 꽤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보통의 일상도, 멀쩡한 두 다리로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심지어는 무더위에 지쳐가는 순간에 시원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는 푼돈이 있는 것조차도, 어느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던 그 언니의 수많은 예시들을 그때는 그냥 흘려듣는 수준으로 받아들였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육아와 직장과 결혼생활 전반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던 터라 일상이 거의 투덜이 수준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 긍정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분이시네. 저런 마인드라서 얼굴이 저렇게 편안하고 웃는 상인가보다.’하며 좋게 생각했고, 당시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았던 그 언니를 꽤나 좋아하고 따랐었지만 버거운 내 현실 속에서 휘청거리며 살아내느라 그 말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잠깐 스치듯 지나쳐 버렸던 짧은 만남이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감사’라는 한 단어를 매개로 다시 기억이 소환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의미롭기도 했다.


지금 나는 그 당시 ‘그래그래언니’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대단한 성취나 행운에 감사한다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알아챌 수 있는 소소하지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찾아 나서고 능동적으로 의미부여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낸 분이셨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생각해 보면 살면서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만신창이가 되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린 것이로구나!’ 하며 괴로워했던 순간들도 비일비재했었지만,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었다는 것을 지나고 보면 깨달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며 나는 지금도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걱정을 사서 하기도 하고, 수많은 내적갈등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고 가는 듯이 좌충우돌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내적갈등으로 인해 외적인 상황들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마음속 여유와 처신의 노련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좀 둔감해지고 이런저런 경험치가 쌓임에서 오는 감사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매일 저녁이면 남편과 함께 ‘동네한바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밤산책을 하는 길에서 동네 구석구석을 알게 되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차 타고 휙 지나칠 때에는 놓쳐 버릴 것들을 붙잡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 걷는 것의 큰 장점인 듯하다. 얼마 전 ‘동네한바퀴’ 시간에 한 까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때 매장 한켠에 진열되어 있는 굿즈 중 분홍색 만년필을 발견하여 구경하고 있는데 남편이 맘에 들면 구입하라고 권했다. 사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만년필이 있었고, 저가 만년필 라인 모델에 커피업체 로고만 박은 제품이라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참 예쁘지만 내돈내산 하기에는 좀 비싸다.”는 농담을 하며 그냥 구경만 하고 왔었다. 그런데 다음날 남편이 그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뜻밖의 선물이 주는 기쁨은 그 물건의 값어치나 소용에 비례하지는 않을뿐더러,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그 사람의 그 예쁜 마음에 방점을 찍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나는 20대 중반을 갓 넘어선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장남에 대한 큰 기대와 첫며느리를 당신들의 영향력 하에 놓고자 하는 바람을 투박하게 표현하셨던 시부모님으로 인해, 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은 신혼 초부터 녹록지가 않았었다. 누구나가 처음이 있듯이 남편도 아내도 시부모님도 그 역할에 경험이 전무한 채로 처음이었기에,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느라 아파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는 남편이나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그 외의 다른 주변인들로 인한 일들로 참 많이 힘들었던 상황이 마냥 억울하기만 했었다. 이런 무한반복되는 고통을 언제까지 겪어내고 감당하며 살아야 할까에 대해 지치는 마음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이라면 또다른 결단을 내려 각자의 갈 길을 가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닐까에 대해서까지 고민하며 수많은 번민의 나날들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내다 보니, 고통의 순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상황이 변해가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체념과 포기, 일정 부분의 타협과 순응, 그리고 포용과 아량을 배우면서 한층 성숙해가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순간들도 있었다. 어느덧 흰머리가 보이고 체력이 떨어짐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된 지금, 남편과 나는 일종의 연대감, 동지애 같은 것을 바탕으로 이해와 연민의 경지로까지 발을 들여놓게 된 듯하다. 혹자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며 인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물론 근본적인 천성이야 어쩔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리적 환경과 상황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인간은 정서적으로 서서히 변한다. 남편도 나도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하며 변해왔다.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좋게 변화하며 성숙하게 나이 먹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할 뿐, 나이듦과 늙어감이 서글프거나 안타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만년필 언박싱 시연을 기쁘게 하고 잉크카트리지를 장착한 후 첫필기를 해보았다. 심플한 디자인에 그립감도 좋고 필기감이 매끄러워서 글쓰는 시간에 만만하게 자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행복한 삶이란 대단히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중하게 느끼고 감사할 일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소확행’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라는데 그것에 더불어 ‘감사’를 잊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해 본다.


문득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며 ‘감사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예전 ‘그래그래언니’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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