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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n 25. 2021

[일상의 단상]-<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일상의 단상]-<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온 지 일년이 다 되어간다.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던 작년 이맘때 쯤, 막 입주를 시작하던 당시의 일이 다시금 생각난다. 입주 박람회와 구경하는 집을 보고 혹해서 집 내부의 내장재와 인테리어를 원하는 기능과  선호하는 기호에 맞게 고치면서 업자들의 무성의한 일처리에 실망을 하기도 했었고, 비포 에프터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을 때 ’역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그 말이 일리 있구나 깨닫기도 했었다.

또한 가구와 가전, 커튼과 블라인드 등 이것저것 계약하고 사들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했는데, 다양한 선택지의 홍수 속에서 결정장애가 발동하여 ‘돈 벌기도 힘들지만 돈 쓰기도 참 피곤한 일이구나.’라고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련의 과정들이 마무리가 되었고 무사히 입주를 하게 되었다. 베란다에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의 변화들을 관찰하며 내가 즐겨라 하는 ‘멍때림’의 시간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거실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면 길 건너 저 편에 위치해 한눈에 들어오는 성당의 고즈넉한 정경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구옥이 아닌 신축 분양 아파트답게 각지에서 이사를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듯했다. 그런 짐작을 하게 된 것은 아파트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면서 입주민들이 올리는 여러 게시글들을 통해 동네 사람들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그곳에서는 여러가지 정보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슈는 우리 아파트 남동쪽에 학교부지 용도로 비워 놓은 넓은 공터에 초등학교가 설립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분양 당시에 아파트 분양 시행사에서는 초등학교를 지어주는 조건으로 하여 초등학교를 품은 이른바 ‘초품아 아파트’로서의 완성도를 보장하겠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그런데 입주를 한 후 1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초등학교는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교육부의 승인이 아직 안 나고 있어서라고 하는데, 출산율의 하락으로 인해 학령기 아이들도 그 숫자가 줄게 되다 보니 현재 있는 학교들도 빈 교실이 남아돌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학교 설립을 승인해 줄 수 없다는 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분양 시행사에서는 입주 후 일정 기간 내에 초등학교를 건축해 준다는 것이 분양조건이었는데, 학교 설립 타당성 검토에서 반복해서 반려되는 과정 속에서 교육부 승인 지체로 시행사가 약속한 건축 기한이 도래하고 있고, 이후로도 진척이 없을 시에는 그 학교부지를 지자체에 기부 채납하고 시공사는 학교 건축을 해 주지 않은 채로 이른바 ‘먹튀’를 할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복잡한 비하인드 사연 또한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얻었으니, 인터넷 카페가 참 유용한 정보교류의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집에는 학령기 아이가 없는 까닭이라고 변명을 하기에도 다소 궁색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 수준으로 그저 상황이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 나 같은 눈팅족들에 비해, 초등학생자녀를 둔 세대와 아파트 값의 상승에 민감한 열정 입주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회의를 하고 교육청과 지자체, 심지어는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까지 방문하여 시위성 어필도 하는 등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눈치다.

멀리 육교를 건너 학교를 다녀야 하는 어린 초등학생들을 생각하면 건축부지와 건축 주체, 그리고 시공 의무를 지닌 책임자 등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당초 계획대로 초등학교가 건립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 역시도 크지만, 학교 하나를 유지하려면 교원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등의 기본 비용을 예산으로 감당해 내야만 하는 교육부의 고심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입주민들의 간절함이 모여진 커뮤니티의 여러 활동들을 지켜보면서 이런 현상을 단순히 ‘지역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이건 뭐 내가 ‘너도 옳다, 그도 옳다.’ 하는 황희 정승의 심정이 아니라도, 이 입장 저 입장이 모두 타당하게 다가와서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 사안이었다.

 

이렇듯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여러 이슈들과 이웃들의 동정을 살펴볼 수 있어서, 아파트라는 공간의 특성으로 각자가 고립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커뮤니티의 기능은 충분히 훌륭하다. 이 뿐만 아니라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동네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에는 ‘소래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다. 산허리쯤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처님 형상의 부조가 암반 벽화로 웅장하게 그려져 있고 등반을 위해서 멀리서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 꽤 유명한 산이라고 한다. 정상까지 해발고도 299.4M로 그다지 높지만는 않은 편이나 돌산이라서 그런지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이 많은 산이다. 나도 이 곳에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소래산 등산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혼자서 생수 한 병 달랑 들고 살방살방 시작한 첫 등산이었다. 초행길이라 산길을 잘 모르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 온 것인지 얼마나 남은 것인지 알지 못하니 마치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되어 더 힘들었던 멘붕 상황이 첫 등산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역시 등산은 버겁구나. 동네 공원의 평지길이나 유유자적 산책하자’고 깨닫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공원이나 둘레길 정도를 걷고 있던 차에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래산 등산 함께 가요.’하는 이웃들의 소모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일단 가입을 했다. 첫 모임에 나갔고 동네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남자들은 제외된 동네 여인들만이 가입이 가능한 소모임이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등산을 할만한 좋은 곳이 있으니 시간 날 때마다 합류 가능한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등산을 가고 건강을 증진해 보자는 아줌마들의 ‘건강 프로젝트’로써의 모임이 차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동네 친구의 최대 장점은 시간이 날 때면 누구나 급벙을 쳐도 되고, 사람이 살다 보면 사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벙을 펑! 하기도 쉬운 것이, 뭔가를 즉흥적으로 작당하기에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한 동네 친구님의 급벙이 있었고, 나는 마음이 동하여 꼬인 스케줄을 풀어헤쳐서 즉흥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간 뭔가가 자꾸 바빠지기도 했었고 시간이 안맞아서 몇 달 만에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날이었는데 하필 오늘 날씨가 꾸물꾸물한 것이 비예보가 있었다. 오랜만에 함께 만나게 된 동네 친구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만나자 하였고 나는 접이식 우산을 챙겨 나갔다. 일단 만나기는 만났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고 아무래도 산에 오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동네 공원으로 행선지를 급선회하게 되었다. 공원에 조성된 둘레길을 정해진 걷기 방향으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덕분에 촉촉해진 길가의 장미꽃이 예뻤고 습기를 머금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이름모를 들꽃과 들풀에서 느껴지는 풋풋함이 신선했다.


걷다 보니 목도 마르고 땀방울도 송골송골 맺히다가 갑자기 향긋한 모닝커피가 간절해진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급제안을 하였고, 오늘 함께 걷기에 참여한 한 동네 친구님의 안내로 내가 평소 가보지 못했던 그 어떤 곳으로 이끌려 가게 되었다.  그 카페는 거리가 좀 되는 편이어서 걷기를 목적으로 모인 기본 취지에도 충실할 수 있었고, 향기로운 커피를 함께 나누며 즐거운 담소의 시간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게다가 외관이나 분위기는 또 얼마나 멋진 카페였던지, 마치 인사동의 유명한 한옥 카페 어디와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그러한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다.


평소에 차를 타고 다니는 나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집에 쏙 들어갔다 쏙 나오고 낮에 주로 생활하는 일터는  주거지와 다른 도시이다 보니, 우리 동네를 본의 아니게 베드타운과 같이 기능하게 하는 개인적인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 집 가까운 곳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분위기 좋은 카페는 어디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는 오늘처럼 동네 친구들을 만나 내가 평소 알지 못했던 우리 동네의 어떤 장소에 안내되어 가게 되는 일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면 하나만 가지고서라도 동네 친구들을 사귀고 친교를 나누며 지내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여자들의 수다가 늘 그렇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이 그야말로 순삭 하듯 지난 후 함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였고,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쿨하게 ‘쎄이 굿바이’를 하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오늘 걷기, 수다, 티타임, 갖가지 유용한 동네 정보 교류, 그리고 힐링!으로 오전의 3시간을 참 알차게 썼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회자되어 유명한 말이 되기도 했는데 사르트르가 쓴 희곡 ‘닫힌 방’ 중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사람은 타인과 함께 할 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지다가 차차 괴로워지다가 종국에는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타인과 함께 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아져서 차라리 외로움에 치를 떨 망정 혼자인 고독을 선택하게 되기도 한다. 더욱이 뜻밖의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반강제적 혼자가 되어야 하게 된 것도 참 슬픈 현실이다.


오늘 나는 동네 친구님들과 뜻밖의 작은 여행과도 같이 동네의 길을 걷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했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수다 삼매경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함께의 시간이 끝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들 갔다.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알고, 고유한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 주고 결코 일정한 선을 침범하지 않고, 헤어질 적절한 때를 알면 된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의 균형점을 잘 찾으며 살아간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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