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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l 01. 2021

[일상의 단상]-<어느덧 친구>

*친구가 되는 것의 척도는 만남의 빈도보다 공감의 정도이다.*

[일상의 단상]-<어느덧 친구>

*친구가 되는 것의 척도는 만남의 빈도보다 공감의 정도이다.*


[유수지작가 미술전시회 '식물성 세계' 관람리뷰]


제목 : 어느덧 친구

부제 : 친구가 되는 것의 척도는 만남의 빈도보다 공감의 정도이다.     


나는 오늘 오래전에 가입했었던 한 걷기모임에 오랜만에 참여하였다. 오늘 만남의 목적은 걷기가 아니라 특별히 기획된 미술관 관람이었다. 참여 신청이 언제나 한 박자 늦는 편인데 혹시나 결원이 생길까 하는 마음으로 클릭해 놓았던 대기신청이 어느 날 참여자 명단으로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아마 참여 신청을 해놓았다가 사정이 생겨 중간에 빠진 회원이 있어서 대기자도 참여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행운처럼, 선물처럼 나에게 온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 못가고 있던 미술 전시회에 오래간만에 가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코로나 이후 2년째 못만났던 이 모임의 리더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살짝 설레이기도 했다.


집결 장소인 지하철역에서 오늘의 미술관 관람 동행님들을 반갑게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재회한 이 모임의 리더님을 본 그 순간,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너무 반가워서 울컥 감동스러운 마음이 살짝 올라오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이었던 2019년의 어느 봄날에 이 걷기모임의 리더님을 처음 만났던 그 날 이후로 어느덧 1년, 2년... 해를 반복해 넘겼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금 만나는 상황이다 보니, 오랜 시간을 거슬러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을 공유한 옛친구와 재회하는 것과 비슷한 아련함이 올라왔다.      


2년 만에 만난 그녀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였다. 짧아진 헤어 스타일이 낯설게도 느껴졌고,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는 여전히 초롱초롱했지만 뭔가 더 차분해졌고 깊어져 있었다. 우리는 학연도 지연도 직장동료로 만난 사이도 아니었고 사이버 기반인 취미모임을 통해 만났다. 그랬어도 그 인연이 오래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지인이자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속으로 들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근황을 물어볼 틈도 없게 오늘의 또 다른 동행이었던 두 분까지 도착하여 미술관 관람 멤버 4인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처음 만난 어색함 같은 것은 전혀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먼저 브런치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마치 일본 교토 어디쯤에 있는 작은 음식점과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는데, 아보카도와 카레가 유명한 맛집이라고 했다.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와 하얀 라이스 위에 아보카도와 카레를 얹어 먹으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점심시간이 되니 식당 창밖으로 대기하는 분들이 줄을 서는  광경을 연출하는 맛집답게 데코도 예쁘고 맛도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되도록 말수를 줄이고 눈웃음으로 서로에게 호응하면서 조심해야 했는데, 반갑고 즐거운 마음은 예전 그대로였으나 뜻밖의 코로나19라는 펜데믹 현실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리더님은 어찌 이렇듯 특별한 장소를 잘 찾아내냐고 신기한듯 물어봤더니,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각종 매체의 리뷰도 눈여겨보며 선택한다고 했다. 또 이 모임의 다른 멤버님들로부터 각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유명한 장소나 맛집을 안내받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모임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양질의 모임을 위해 애쓰는 누군가의 숨은 노고와 봉사 덕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고 곧바로 미술전시장으로 이동했다. 식사 후 곧바로 움직이다 보니 전시회장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에 걸쳐져 있었는데, 갤러리 관계자의 배려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식물과 하늘과 바다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한 그림들이 평화롭고 잔잔하면서도 뭔가 생동감이 느껴지고 다이내믹하게도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초록초록하고 파랑파랑한 그림들이 청량하고 아름다워서 그림 앞에 서서 멍하니 무상무념 상태가 되어 바라보고 있자니 숨겨둔 감수성을 불러와 잔잔하게 스며들 듯 힐링이 되었다. 특히 그날의 감성을 솔직하게 써놓은 일기 같기도 하고, 마치 낙서 같기도 한, 화가님이 그림 작업을 하면서 그때그때 일어나는 감정들을 끄적여 놓았다고 하는 메모 같은 단상들이 중간중간 첨부되어 있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작가의 마음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뭘 끄적거리는 걸 즐기는 나는 작가의 친필 메모들이 그림을 보는 것 이상으로 좋았기에, 방명록에도 그 조각조각의 글들에서 느낀 호감에 대해 감상평을 정성스레 남겼다. 그림들이 크기도 아기자기하고 그림 속 풍경도 다양했는데, 이미 판매 완료되었거나 현재 판매 중인 작품들이 섞여 있었다. 젊은 화가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배고픈 예술가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림들이 좋은 가격에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입장할 때에는 해가 쨍하던 하늘이 먹구름이 가득해진 가운데 꽤 많은 양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나라 기후가 변해가는 듯, 마치 동남아 열대성 스콜과 같이 갑자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많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건물 1층 입구의 안쪽에 서서 내리는 비에 취하듯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두 분의 동행님이 전시회 굿즈를 구입하러 윗층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리더님과 둘이 남아 나란히 서서 그간의 근황을 자세히 나눌 수 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이니만큼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생각했었지만 예상 외로 비는 금방 그치질 않았고, 대화는 자연스레 깊어지고 있었다. 

리더님은 그간 유방암 발견과 수술, 치료과정 등 건강문제를 비롯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원래는 길고 탐스러웠던 헤어스타일이 지금과 같이 짧게 변했다는 사연을 듣는데, 지하철역에서 재회했던 순간에 뭔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그간 서로의 소식을 통 몰랐었기에 다소 놀라기도 했고, 다행히 이제는 회복국면이라는 말에 참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과 감사함이 저절로 올라왔다. 리더님은 나보다 두 살이 아래이니 동생뻘인 데다가 평소 산과 둘레길 걷기를 좋아해 걷기모임까지 개설해 활발하게 리드할 정도로 건강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 그토록 힘겹게 투병 생활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금시초문이었으니 많이 놀랐고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2년의 기간 동안에 그토록 많은 시련들을 씩씩하게 겪어낸 그녀가 앞으로는 반드시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올라왔다. 또한 삶이란 누구에게나 녹록지가 않다는 생각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뜻밖의 코로나 상황에서 일상이 제약받고 무너지는 위협에 봉착해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서글픈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고, 특히 건강을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만큼, ‘지금! 오늘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현재! 여기!’에서 즐기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정말 오랜만에, 미술전시회 모임에 함께해 즐거운 시간을 즐기며 제대로 힐링하고 왔다. 온통 초록, 파랑의 밝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화가님의 개인전시회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뜻밖의 코로나 장기화로 지친 마음을 휴식할 수 있는 한때를 보냈다. 또한 같은 취미를 갖고 있기에 대화가 잘 통하는 취미 친구님들을 만나 서로의 감성을 공유하며 공감대를 나누는 참 좋은 시간을 덤으로 누릴 수 있어서 한층 더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말도 많이 하게 되고 시종일관 계속 웃었다. 무엇보다도 몇 년 만에 만난 리더님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와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우리는 몇 번 만나지 못한 사이지만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렇듯 ‘친구가 되는 것의 척도는 만남의 빈도보다 공감의 정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소중한 하루였기에 오늘의 만남이 의미롭게 남을 듯하다. 어두운 비구름과 세찬 비바람이 거치고 밝고 따뜻한 햇살과 흰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듯, 앞으로 그녀의 삶에도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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