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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n 29. 2021

[일상의 단상]-<비오는 날의 감수성>

*나는 쨍하게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좋다.*

[일상의 단상]-<비오는 날의 감수성>

* 나는 쨍하게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좋다. *


#서울숲 & 중랑천 산책


[‘비 오는 날’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요즘 나는 틈만 나면 걷고 또 걷는다. 어느덧 반백살 코앞에 이른 나이 탓인지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운동의 필요성을 깨닫기도 하였고, 그나마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중에서 아무 때나 특별한 준비 없이 운동화 끈만 질끈 묶고 나가면 언제든 가능한 걷기라도 필사적으로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에는 하루를 온전히 비울 수 있는 날이 아니라면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 풀타임의 자유가 아닌 조각난 시간일지라도 열심히 움직이려고 애쓴다.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나 역시 코로나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나는 책 읽고 영화 보고 글쓰고 음악 듣는 취미가 있으니 워낙 혼자서도 잘 놀았기에 원래부터 집순이 생활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이어가는 시간에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교감이 따스했고, 친구와 지인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와 ‘함께’의 양쪽을 넘나들며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가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혼자로서의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에는 혼자일 때는 채울 수 없었던 다양성과 활동성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뭔가 충만해지고 즐거웠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선에서 만남과 모임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오고 갔었다. 그러나 뜻밖의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현실적인 제약이 하나씩 추가되어 갔고 생활 곳곳에서 조심해야 하고 덧붙여야 하는 일들이 성가시고 불편해지면서 조금씩 지쳐가기도 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들이 지금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 불편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한편 사람은 유전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현실에 적응하고 살게끔 구조화되어 있는 존재인가보다. 사람들은 마스크 필수의 불편함에 차츰 익숙해져 갔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어떤 것이라도 찾아 즐기려 애쓰며 살아가게 되었다.

나 역시 그렇게 변화한 현실에 잘 적응해 가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요즘은 더불어 함께 할 기회가 있거나 불러주는 이가 있으면 웬만하면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만나러 나가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야외로 나가 살짝살짝 마스크를 들썩거리면서 신선한 바깥공기를 흡입하며 걷고 또 걷는 걸 즐긴다.


오늘 역시 그러한 날이었다.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걸었다. 서울숲 곳곳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해서 중랑천 산책길로 발걸음을 옮겨 걷기를 계속 이어갔다. 처음에 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서울숲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탈 때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었는데, 서울숲에 도착할 때쯤에는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서울숲 초입의 G*25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구입했다. 가격은 만천원! 디자인이나 컬러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비를 막아줄 우산의 기능으로써만 만족하는 구매를 했다.

걷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중간중간 햇빛도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그래서 마음에 안들었던 억지구매물은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고 양산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만천원! 이상의 효용을 발휘해 주었으니 디자인과 가격을 차치하고라도 충분히 훌륭했다.


서울숲의 싱그러운 나무들과 어여쁜 꽃들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 흔들거리며 방황하던 ‘평안한 정서’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에게는 일상을 유유히 향유하는 ‘평안한 정서’가 분명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꾸만 불안정하게 흔들흔들 방황하며 ‘불안한 정서’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었다. 주어진 일상의 현실을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내 마음을 잘 살펴보지 못할 때가 많다. 뭔가 편안하지 못하거나 살짝 불편해지는 마음들이 느껴질 때면 자연을 둘러보며 걷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걷기를 실천한 이후의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중랑천 산책 길가에서는 각종 장미꽃들이 만개해 시선을 끌었다. 각양각색의 장미꽃들은 나도 모르게 ‘예쁘다!’를 연발하게 만들어 주었다.

길동무들과 함께 걸으며 나누는 담소가 즐거웠고 오락가락하는 비마저도 맑은 공기와 짙은 꽃향기, 풀내음을 촉진시켜 주어서 모든 상황이 행복했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이 감사했다.


나는 쨍하게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좋다.

돌이켜보면 어린 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초등 고학년이던 어느 여름날에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텅 빈 집에 어쩌다 혼자 남아 있었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날은 여름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는데, 베란다 끄트머리에 놓여 있던 아버지의 낚시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집 앞 개천가에 핀 키가 큰 들꽃들과 아름드리 나뭇잎들이 비바람에 휘청휘청거리고, 개천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징검다리 돌덩어리를 넘어서려 했던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난다. 나는 그때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이른바 ‘물멍’을 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잠시의 짧은 시간 동안 멍하게 무상무념으로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지고 가족들이 귀가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내가 낮부터 저녁이 되기까지의 꽤 긴 시간을 그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고, 나도 모르게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어렴풋이 시간과 공간이 모호하게 엉켜버리는 4차원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 무렵 비행기와 배가 사라졌는데, 잔해도 탑승객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에서는 눈으로 보고 확인할 방법이 없는 또 다른 차원으로, 즉 시공간을 초월한 4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라는 신박한 주장을 펼친 공상과학 같은 내용의 책도 찾아 읽었었다.


이렇듯 내 어린날에 경험한 비에 얽힌 강렬한 기억 탓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아무튼지 나는 비 오는 날에는 우울감 비슷한 느낌이 살짝 올라오면서 뭔가 더 차분해지고 집중력도 좋아지는 듯한 그 느낌이 싫지 않고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곡들을 들으며 글을 쓰기도 하고, 읽기를 미뤄 놓았던 책에 빠져 나만의 소확행을 누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어느날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 친구도 비를 좋아한다고 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 한참을 빠져들었다. 그때 나는 ‘비가 오는 날은 뭔가 우울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감수성이 최고조로 올라와 글도 잘 써지고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친구는 ‘비 하면 로맨틱이지.’라며 응답했다. 또다른 친구는 ‘비가 오면 우중충한 데다가 질척거리고 불편해서 싫다’고 투덜거렸다.

같은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 결이 같은 듯 하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살짝 다른 느낌을 갖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180도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아마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서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 주고 그렇게 생각하는 된  각각의 마음들을 이해해 보려는 열린 사고가 중요한 듯하다. 때로는 나와는 너무 다른 견해에  당황하기도 하며 동의하거나 동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표현하는 느낌과 생각을 존중해 주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같아서 편안하고 달라서 흥미로운 게 삶의 묘미이니까.

 

오늘 오락가락하는 비를 벗삼아 참 좋은 걸음을 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비오는 날에 대해 얼마나 호감을 갖고 있는지 다시금 자각할 수 있었다.


나는 맑고 햇빛 쨍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을 더 좋아하고 그 최고조의 감수성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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