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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l 09. 2021

[일상의 단상]-<사람은 우유가 아니다>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자*

[일상의 단상]-<사람은 우유가 아니다>

*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자. *


[‘인간관계’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책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모임을 시작하던 그해 여름은  더운 날이었는데, 여러 명의 책친구님들이  카페에서 만나 통성명을 하고 앞으로 함께 진행해 나갈 독서 토론 모임의 방향성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였다. 여러 멤버님들은 연령대가 40 중후반 어디쯤인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한두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중년의 동년배들이었다.  가운데에서 그녀가 제일 어린 나이였는데 차분하고 얌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면이 엿보이던 첫인상이 인상적인 느낌으로 남았다.

나는 그날 책모임을 마치면 곧바로 지인 아들의 그림 전시회에 가기로 계획되어 있던 터라, 모임이 끝나자마자 인사를 나누고 발걸음을 재촉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어폰을 꽂은 채로  시사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언니!”하고 부르며  오른쪽 어깨를 살짝 터치했다.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 내가 숫자상 나이로는  위이긴 했지만 처음 만난 날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친근하게 불러주며 활짝 웃던 그녀는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미술전시회에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자기도 따라가면 안되겠느냐는 돌발제안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난 날에 어쩌다 보니 꽤나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날 우리가 찾아간 미술전시회의 주인공은 경미한 자폐성향을 갖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내 팝아티스트로 훌륭하게 성장한 작가로, 그를 그토록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가 바로 나의 지인이었다. 전시장으로 가는 길에 잠시 베이커리 가게에 들러 작가님에게 선물로  쿠키세트를 구입하는 순간에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그녀와 의논하기도 했고, 지하철역에 내려서 미술전시장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할 만큼 꽤 먼 위치의 전시장 덕분에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코 의도치는 않았으나 우연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그녀와 내가 밀도 있는  시간을 공유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책모임 첫만남 자리에서는 말수가 적으면서 조용히 미소짓기만 하며 구석진 자리에 존재감 없이 얌전히 앉아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성적인 친구인가보다 느꼈었던 첫인상과는 달리, 우연히 동행하게  미술전시회 방문길에서는 명랑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붙임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날 첫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밀도가 깊어진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와 1:1 만날 때와의 차이가 이렇게  사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던  같다.


전시회장에 도착해 그림을 둘러보며 감상한  방명록에 메모를 남기고 돌아서 나올 때쯤은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 되었고, 살짝 시장기가 느껴지기도 다. 주변에 적당한 식당이 있는지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로 이동하기에는 살짝 부담스러워져서 가까이 보이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거세트로 간단히 요기를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미술전시회까지 따라온 것은 그녀의 돌발적인 제안 덕이었지만, 어쨌든  지인의 전시회에 동행한 손님이라는 생각에서 그날 햄버거값은 흔쾌히 내가 계산을 하였다.

햄버거를 입에 물고도 연신 쉬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던 그녀의 수다가 무색해지지 않을 만큼의 응대를  주면서 ‘말을 조곤조곤 잘 하는 아가씨로구나.’ 생각했다. 햄버거집을 나와 그녀와 헤어진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야 비로소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오늘 처음 만난 그녀와 너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뭔가 정신없고 분주해지느라 살짝 피로한 마음이 올라왔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얼른 귀가하여 쉬어야겠다 싶었다.


그날 그녀와 스치듯 나눈 대화 속에서 그녀가 쏟아냈던 많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40 중반의 미혼여성이었고 직장생활을 하는 중인데,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정립한 철학 갖고 는듯 했다.

언니! 인간관계에도 유통기간이 있는  같더라고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면 반드시 헤어질 때가 오게 되는데, 그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관계에도 유통기간이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꼬이고 변질되고 어긋나게 되면서 헤어지게 되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러면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다른 관계를 으며 살아가면 되는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어가다가 뭔가가 안맞거나 갈등이 생겨서 관계가 틀어져 버리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유통기한이   것이기 때문인 거죠. 그럴땐 연연할  없이 그만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자리를 채우며 사는  우리 인생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저런 모임에 발을 걸치고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어요.”


언젠가 어느 작가가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을 썼었다는 말을 운전 중에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 스치듯 들었던 기억이 올라왔다. 그때 나는  라디오 디제이의 말을 들으면서 이미 떠난 사람이나 돌이킬  없는 인연에 연연하며 뒤돌아보지 말고, 잊어야 마음 편해지는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을   있는 용기를 내라는 취지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아가씨의 말은 그것과 의미가 살짝 다른 관점인 듯했고,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논리를 들어보자니 사람을 만나 깊은 관계를 맺기까지 희로애락을 겪어 가며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 단계로는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다 보면 뜻하지 않게 뭔가 어그러져서 어려워질 때가 반드시 오는데, 그럴 때마다 가볍게 ‘안녕!’ 해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빈자리를 채우고  반복하고 그러는건,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진정성을 갖고 성의를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동조하기에 어려운 논리였다. 하지만 처음 만난 날에 어쩌다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게  상황에서 ‘ 생각은 그대와  다르다.’라며 덧붙이는 말을 이어가기에는 적절치 듯하여, 나도 모르게 많이 들어주고 조금만 말하는 다소 수동적인 입장으로  대화에 응함으로써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않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  아가씨는 나와 가치관이 다소 다른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면서도 앞으로 책모임을 계속해 나가게 되면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게  테니 자연스럽게 그녀를 알아가게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고 계절이 바뀌었고, 정기적인 책모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비록  달에  번의 만남이기는 했지만, 책친구님들과 같은 책을 읽고 만나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보면 하는 일이나 가족관계 등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평소의 가치관 등이 불쑥 튀어나오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한결같고 여전했다. 나와 1:1 만났을 때와는 달리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나 구석자리에 앉아 예의바른 미소를 띠며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나 지켜보는 ‘관람객자세로 수동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였다. 그렇게 책모임은 간혹 위태롭게 삐거덕 거리면서도 대부분은 그런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책모임 멤버들 간에 조그마한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모임 멤버의 절반은 나처럼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바쁘게 생활하는 주부의 입장이었고  절반은 그녀처럼 미혼의 직장인 여성이었다. 매달 책모임을 통해 만남을 갖다 보니 서로 친해지게 되면서, 나처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주부로서 가정으로 또다른 출근을 해야 하는 아줌마들이 아닌 미혼 멤버들끼리 의기투합하게 었다고 했다. 그녀들은 퇴근  저녁에 만나 친교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게  모양이었다. 책친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남을 갖고 우정을 쌓아가며 좋은 시간들을 나누게 되었으니 분명 의미로운 이었다. 그러나 마냥 좋기만  수는 없는  사람들 간의 일인가 보다. 어쩌다 그녀들 간에 트러블이 생겼고, 아니,  정확히 말을 하자면 ‘그녀 나머지 멤버들 간에 문제가 생겨서 갈등의 시간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책모임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흔들거렸다..


제3자의 입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잘 몰랐던 나는 나중에야 다른 책친구님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들 미혼여성들퇴근  모임이 반복되면서 서로 친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개인적인 근황 등에 대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녀들 중 ‘그녀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들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노출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뭐라고 말을 해서 대답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도  산을 바라본다든지 하며 딴청을 피우는 태도를 보여서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같은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이해를 하며 넘어갔다가 만남이 반복될수록 묵묵부답인 그녀에 대해 나머지 친구들의 답답함이 커지면서 때로는 무시를 당하는 듯이 이상한 상황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책모임에서 활동하던 전체 인원  절반을 차지했던 미혼여성들의 소모임이 뜻하지 않게 와해되어 가던 , 코로나19 상황이 발발하고  펜데믹의 정도가 심각해져 가면서 어쩌다 보니 책모임 자체가 전체적으로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 소식끊기게 되었다.


이후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되도록 자제하고 지내던 나는 언택트 ‘zoom’ 방식으로 책모임에 참여하기도 였다. 그러다가 확진자가 조금 줄기 시작하면서 집합금지 규정이 유연성 있게 조정될 기미가 보일  즈음에 새로운 책모임을 재개하게 되었다. 물론 정부의 집합제한 4인의 범주 안에서 조심스럽게 리스타트하게  것이었다.

한편  무렵과 동시에 친구의 권유로  걷기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뜻밖의 팬데믹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신체활동도 줄어들게 되고 갱년기에 즈음한 나이대가 되어서인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에 때마침 ‘걷기 모임이라는  좋은 기회를 만난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모임에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날은 어쩌다 보니 시간이 맞는 멤버가  모임의 리더와 , 이렇게   뿐인 날이었다.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상관없이 자연을 벗삼아 걷는 시간은 마음의 휴식을 주니 힐링이 되었다. 혼자라면 생각을 정리할  있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되어서 좋았고, 누군가 함께라면 함께 걸으며 의미 없이 툭툭 내어놓는 수다를 나눌  있어서 뭔가 속시원해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둘이 2시간 이상을 열심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걷기 모임 리더님의 유쾌한 매력에 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걷기를 마치고 커피타임도 가졌다. 걷기리더님은 나와 단둘이 걷게  것처럼 어떤 멤버와도 단둘이 걸었던 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 함께 걸었던  친구님과 나눈 대화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내용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유통기한 대한 것이었는데,  들어보니 예전에 내가 책모임에서 만났었던 ‘그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라  뜻밖이기도 하면서 불현듯 예전 ‘그녀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걷기리더님이 만났었다던  이야기속 주인공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기에, ‘요즘 저렇게 인간관계에 대해 유통기한 운운하는게 유행일?’, ‘걷기모임에 나왔었다던 이야기속 그녀가 혹시 내가 아는 00씨가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흘려보내 버렸다.


그날 저녁에  걷기모임의 리더님으로부터 단톡방에 초대되어 입장하게 되었는데,  걷기모임의 멤버님들을 살펴보다 보니 그중 낯익은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예전 책모임에서 만났었던 바로 ‘그녀 프로필과 같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00 맞느냐고 나는 물었고, 그녀는 맞다고 바로 대답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다고 말했다. , 역시 걷기리더님이 말하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세상  넓고도 좁구나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녀를 처음 만났던    어느  여름날 처음 들었던 ‘인간관계의 유통기한 대한 그녀의 가치관에 대해 전적으로 동조할 만은 없었던  생각들을 말해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절 인연이라든지 ‘회자정리라든지의 의미와는 조금은 색깔이 다르게 느껴졌던 그녀의 ‘인간관계 대한 가치관은 사람을 만나서 깊은 관계를 맺기를 꺼리고, 겉도는 관계만 갖다가 조금 깊어지거나 복잡해질  같으면 피해 버리고 마는,  ‘회피 가까운 것은 아닐까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보기를 바랐던 마음이 내게는 있었던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그런 가치관을 갖게  것도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나쁜 경험이 있어서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을 겹겹으로 둘러쳐 단단히 무장하고 사람을 만나게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없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함으로써 얻을  있는 정서적 충만감은  어떤 것보다도 따뜻한 행복감을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돈으로도   매우 힘든 일이고, 그런 만큼 가치 있고 귀한 일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을  있게 되기까지는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의 시간조차 투자하지 않은  관계의 역경이  때마다 쉽게 돌아서 버리면서 ‘유통기한  되었다며 이제 그만 떠나보내고  빈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은,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등장하는 ‘여우 나약한 구실에 불과한 심리는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  만한 주제인듯 하다.

걷기모임의 단톡방에서 뜻하지 않게 재회한 ‘그녀 나에게 다시 만나 반갑다고 하였다.  또한 재회의 기쁨을 표시하며 ‘걷기 모임에서 만나 즐겁게 걸으며 함께 건강을 증진해 보자.’ 간단한 응답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마음속 한켠에는 뭔지 모를 안타까움의 마음인 ,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못다한 말들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지 노트북에 앉아 그녀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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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씨! 안녕?

나 책모임에서 만났던 00언니야!

그간 내가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서 정신줄 놓고 사느라 책모임이고 뭐고 신경  못쓰고 살다가 ㅇㅇ씨가 모임에서 탈퇴했는지도 몰랐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늦게야 여러 상횡을 알게 되었어. 뜻밖의 코로나19 인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게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펜데믹의 슬픈 현실을 살아가게 되었네.

얼마 전 나는 걷기모임에 초대되어 갔었어. 그 모임 단톡방 멤버 중 내 폰에 저장된 낯익은 프로필이 한 분 눈에 띄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아는 그 ㅇㅇ씨 맞냐고 내가 물었고 ㅇㅇ씨는 맞다고 답했어.


코로나 이전에 활동했던 **책모임도 책영화모임도 잔잔한 파동이 일면서 뭔가 매너리즘에 빠져들 즈음에 뜻밖의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었고,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국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다 보니 여러가지가 본의 아니게 흐지부지 되었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본 ㅇㅇ씨는 심성이 착하고 결이 고운 사람이었다.


내 기억 속에 ㅇㅇ씨가 평소 한 말들 중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말이 있었어.

사람도 유효기간이 있더라. 그러니 때가 되면 떠나보내고  빈자리를 계속해서 또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채우며 사는  인간관계 같다.’

ㅇㅇ씨의 그 말이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은 ‘아… 나와 가치관이 좀 다른 사람이네. 이 아가씨는 사람에게서 상처 받는걸 두려워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사람 간의 관계는 산전수전 겪으며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인간적으로 서로 깊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에 있어서 공을 들여야 하고, 오랜 기간 인내하며 정성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또한 그런 관계를 맺는다는 건 너무 귀하고 황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고 난 생각해. 오죽하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 부부의 인연을 맺고도 이혼을 하겠어? 그만큼 남남이 인연을 맺는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방증이지.

나도 지금껏 삶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생각해보니, 어려움이 생기면 도망가기보다는 비록 좌충우돌하더라도 어떻게든 상황을 풀어가 보려고 용감하게 맞서는  나중에 후회가 덜한  같더라. 어쨌든 최대한  만큼 했으니까  결과가 어떻든 여한은 없는 거지.


내가 어느  호기심에서 충동적으로 책영화모임을 만들고, 이건  ‘어쩌다 사장 아니고 ‘어쩌다 리더 되었지.

리더는   사람이고 멤버님은 다수이니, 나같이 어떤 부분은 너무 넘치고 어떤 부분은 너무 부실투성이인 사람이 멤버님 한분 한분모두 신경 써서 응대할 수는 없었어.

내 한계를 깨달으면 아몰랑~ 모드 전환이 내 ‘필살기’인가 봐. 사람 죽고 사는 심각한 일 아닌 이상 나 먼저 살고 봐야 주변도 있는 거니까. 내가 사회적 가면을 활용해서 잘 쓰는 것인지, 사람들이 나를 본래의 나보다 좀 더 좋게 봐줘서 감사할 때도 많은데, 난 보기보다 때로는 단순하고 단호해서 이건 정말 아니다 판단하면 맺고 끊고도 정확히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하지만 그전에 할 수 있는 노력은 해보려고 하는 게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게 되어 좋은 것 같아. 그래야 상황파악을 좀 더 정확히 할 수 있어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러니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오면 무조건 도망부터 가기 전에 한 번쯤 되짚어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코로나 잠수 동안 책모임 플랫폼도 유령화 되었던 와중에 내 소식 궁금해하며 날 걱정해 주는 참 좋은 책친구님들로부터 문자나 개인톡도 많이 받았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만만치 않게 지속되다 보니 딱히 방법도 없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코로나 블루’에 걸릴지도 모르겠구나 싶을 만큼 우울해지는 때도 있더라구.

코로나 장기화로 더 이상 이렇게 답답하게 참고 살 수만은 없겠구나 하며 친구도 만나고 취미활동도 살살 재개하려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이번에 책영화모임 활동도 재개하게 되었어. 그러던 중에 좋은 계기를 만나 걷기모임에 초대되어 간 건데, 거기에 ㅇㅇ씨가 뙁! 있었지 뭐야?!


내가 감히 ㅇㅇ씨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릴 수도 없고 oo 씨가 인간관계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지 어떤 상처를 받았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어. 내가 느낄  있는 확실한 것은, 내가 겪어본 ㅇㅇ씨는 아주 참하고 두루두루 교양을 갖추어서  어여쁜 사람이었어. 학연 지연도 아니고 책영화 취미모임을 통해 만난 인연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연이 가볍기만   아님을  믿고 있어. 만남의 매개체가 인터넷 기반의 책영화취미 모임이라는 사이버였을  우린 현실세계에서 만나 취미를 공유하며 친구가  사이니까 분명 의미 있는 인연이겠지?!

ㅇㅇ씨처럼 떠나버린 친구님들과 새로 가입해 들어오는 친구님들이 혼재되어 오고 가고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  그저  혼자라도  놀만큼 즐기는 책과 영화를 중심으로 책영화모임에서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러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님들을 만날  있었던  덤으로 얻을  있었던 선물이었어. 앞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이  이어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이  먹고 할머니 되어서도 책영화모임의 인터넷 플랫폼은 그냥 놓아둘 생각이야. 그러니 ㅇㅇ씨! 혹시라도 책영화모임이 생각나고 그리워지면 언제든 다시 와도 좋아! 아무데나 자기 편한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기운 있을  같이 놀고  빠질  쉬어가고 그러면서 서로가 편안한 취미친구들이 모여 있는 놀이터가  있다고 생각하길 바랄게.


ㅇㅇ씨!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ㅇㅇ씨만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할 수 있도록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살자. 인간관계를 진실되게 잘 맺으면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충만감을 놓치지 말고 즐기자.

앞으로는 자꾸 인간관계 유효기간 어쩌고저쩌고 운운하지 말고…! 쫌!

사람이 유통기간 지나면 폐기해야 하는 우유 같은 유제품도 아니잖아?!

항상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고…

ㅇㅇ씨가 늘 평안하고 행복하길 기원할게.

그럼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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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부언 생각나는 대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유리 멘털 ‘그녀’에게 혹시라도 부담을 주게 될까 봐 , 그리고 좀 주제 넘는 충고질 같아서 결국은 보내지 못했다. 부치지 못한 편지 대신 그녀를 애정하는 나의 마음을 담아 아이스아메리카노 커피에 달달구리 조각케잌 쿠폰을 그녀의 개인톡으로 가볍게 보내 주며 나만의 긴 넋두리 같은 메시지를 갈음했다. 어여쁜 그녀가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기를 늘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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