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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Feb 20. 2022

[책리뷰]-『선량한 차별주의자』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기존 질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북토크 리뷰]-『선량한 차별주의자』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기존 질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이웃에서 자행되는 탄압과 차별을 외면하면서,

세계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더 분노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 칼 T.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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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선량한 차별주의자]                         

✅작가 : 김지혜                         

✅출판사 : 창비          

✅북토크 일시 : 2022, 2, 19, 토     

✅북토크 장소 : 잠실 모임처                         

✅준비물 : 마스크 착용 필수, 책, 필기도구, 능동적이고 즐거운 마음                         

✅참여자 : 책친구님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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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현장 써머리]      

2022년 2월 ‘함께읽기책’은 책친구님의 추천책인 ‘김지혜’ 작가의 연구논문 에세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습니다.     

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김지혜’ 교수가 연구논문 형식의 에세이로 출간한 이 책을, 출판사 ‘창비’에서는 ‘가끔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야 할 때가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세상에서 평등을 외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라고 소개하였는데요, 이 책을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별점과 함께 읽은 소감을 나눠봅시다. (1점부터 5점까지 별점을 주세요.)     


✅북토크 참여자들이 준 책의 평점과 이유, 그리고 독후 소감(5점 만점)     

✔4.8

이 책이 내 서가에 꽂혀 있었고 장기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를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책이었기에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함께읽기책’으로 추천을 하였다. 사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신박한 제목에 시선이 이끌렸던 것도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사례가 아주 풍부했는데, 그것이 실제적인 사례인데다 그 사례를 들어가며 작가의 논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 논리근거가 너무도 명확하여 설득이 되면서 몰입하였다.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순서 또한 체계적이라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와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이런이런 문제들이 많고도 많다’라고 쭉 늘어놓고는 결론 부분의 대안 제시가 ‘차별금지법’에서 마무리되었다는게 다소 아쉬웠다. 방대한 문제제기에 비해 대안 제시가 너무 미흡한 편이어서 무슨 말을 하다가 만 것처럼 뒷마무리가 약하다고 생각되고 2% 부족함을 느꼈기에 –2점 차감하였다.     


✔3.8

나는 내가 평소에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서 어쩌다 보니 나도 꼰대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뒤돌아봐졌다. 나는 일터에서 관리자 입장에 놓여 있고 어찌 보면 ‘갑’의 위치일 수 있는데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하면서 생각 자체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서 차별대상들에게 나도 모르게 차별을 가하고 있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나도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듯 한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책 저자의 주장대로 사회적 약자만이 약자라고 보기에는 그 이면의 또다른 편에 서 있는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매사에 얼마나 조심을 해야 하며, 인내하고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약자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할 문제라고 느낀다. 차별이 있다면 역차별도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차별의 다양한 시선을 보지 못하고 너무 약자 위주로의 관념들만 쭉 늘어놓고 같은 논리만을 반복하고 있는듯해서 다소 아쉬웠다. 좀 더 다각도로 조명해볼 만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는 면에서 이 책을 한번쯤은 읽어볼 만했다.     


✔4.2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하 논의를 이렇게 깊게 하며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가 소득수준이 높아졌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시점인데 국민의 의식수준은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너무 고속성장을 이루다 보니, 과정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결과만을 놓고 평가받는 냉혹한 사회가 된 것 같고, ‘안되면 되게 하라’는 무식한? 말도 있듯이, 모든게 결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성과주의에만 과몰입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성숙할 시간과 기회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모순이 너무 많고 갈수록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빈부격차의 심화와 양극화가 증폭되고만 있다. 날이 갈수록 사회갈등이 너무 커지고 있는게 어쩌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대어 개인의 자율에 맡겨 놓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사회적 손실이 너무 커서, 건강한 사회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확신은 든다.

이 책의 저자가 차별과 혐오에 대해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듯 식상함이 들기도 했지만, 귀가 따갑게 듣고 또 들어도 뇌리에 남을 수 있는 부분이 미미할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일반인들에게는 관심에서 밀려난 논제라는 문제의식을 최대한 상기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처절한 몸부림 아니었을까 하는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이런 불편한 사회적 논제를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균형추를 맞추어 나갈 수 있기에 반복을 해서라도 함께 깨닫고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안 없는 문제의 나열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더냐?’ 싶은 반감도 살짝 올라오게 만드는 조금 미흡한 느낌의 대안과 결론이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어쨌든 이 책은 한번쯤 읽어봐야 할 참 좋은 책이었다.          


✔4.0

나는 평소 소설, 수필 장르를 좋아하고 사회, 정치, 종교, 철학, 과학 등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잘 읽지 않는 편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읽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독서토론팀에서 북토크 지정책으로 강제독서, 억지독서를 하다보니 내가 평소 선택안했을 다양한 책을 읽게 되어 참 좋은 계기를 만나서 감사하다.

솔직히 나는 자기개발서라든지,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나열하며 독자를 가르치고 훈계하듯 하는 책들에 대한 저항감이 무의식중에 잠재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저자가 이주민, 성소수자, 여자, 노인, 아이, 장애인 등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하면 안되고 평등하게 대우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무한반복하고 있는 듯한 이 책의 논조에 다소 피곤함이 밀려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조금은 각도를 다르게 생각해보고 작게나마 깨달은 바가 있어서 2월 북토크에 내 시각을 넓혀주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4.5

이 책의 주제의식만을 놓고 본다면 5점 만점을 다 주고 싶을 만큼 좋은 내용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차별을 자행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 이 책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과 일반인들이 얼마나 극악한 차별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한 성토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어서 집중이 잘 안되는 면이 있었고 다소 지루함까지 느껴졌다. 작가가 너무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획기적인 대안이 있으려니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으나 결론 부분의 대안이 너무 부족해서 실망이 되었다. 무슨 사안이건 간에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 하며 투덜투덜 문제들의 나열만 하고 그에 따른 대안제시는 하지 않는 ‘대책 없는 비판’은 피로감과 혼란만을 야기할 뿐, 좀 더 개선되고 발전된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문제제기와 비판의 실효성이 더 증폭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4.0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논문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평소 주의를 기울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만큼 내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차별과 혐오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면에서 이 책은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책 자체가 학술논문처럼 지루하기도 했고, 주요 논점을 각 챕터별로 딱딱 끊어지고 마무리 짓는 맛이 없다고 느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는 했으나, 세밀한 소주제를 부분별로 다루고 마무리 짓고 넘어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한데 엉켜 안고 반복하며 질질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면이 논제를 뽑는 작업을 할 때 다소 아쉬웠기에 1점을 차감하였다.               


✅본토론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정리 불가함. (논제 요점만 정리함)            

✔10퍼센트로 구색을 맞추는 토큰을 제공하는 정도만으로도 공정한 상황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토크니즘’을 ‘공정성’의 관점과 연결지어 논의하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에 기초하여, ‘만일 당신이 권리로써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의견에 대한 생각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에 대한 생각들

✔‘소수의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이 다수의 비성소수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라는 성소수자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한 생각들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생각들

✔‘고정관념’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근거한 생각들

 ‘대학 간판’, ‘대학 서열화’에 대한 생각들

✔'혐오표현’과 ‘비하성 유머’에 대한 생각들

✔‘반응 없는 반응’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들

✔‘팀플 무임승차’등과 같은 일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일이므로, ‘정의란 누구든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룬 성과만큼 차등적으로 대접해주는 것’이며 ‘차별이 공정하다’라는 견해에 대한 찬반의견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과 같이 특정집단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

✔‘여성’,‘유색인종’ 등과 같이 특정 피해자를 제약하는 ‘증오범죄’를 비롯하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생각들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생각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생각들

✔‘지위의 유동성’으로 인한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생각들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등과 같이 경계를 가르는 기준과 ‘집단에 소속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공포’, 그리고 ‘인간이 무리에 속하려고 하는 근본적인 속성과, 집단에 소속하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들의 소외와 좌절’에 대한 생각들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관한 각자의 생각과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현실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논의          


✅핵심 메시지 또는 한 줄 총평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기존 질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서열을 정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본능을 가진 동물일까?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함께 가자.

✔차별주의자는 불량이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공정함과 공평함은 분명 다르다.

✔능력은 한 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읽는 내내 불편하였으나 꼭 필요한 책이었다.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나는 방법은 ‘백문이 불여일견(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by 컬투 김태균)

✔내가 직접 겪지 않고 깨닫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마라.      

    

✅오늘 책과 토론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 및 마무리 발언           

✔이 책이 해를 거듭하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하니 참 잘된 일이다 싶다. 앞으로도 이 책이 계속 이슈화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생활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반인들의 무의식적인 차별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와 생각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좋은 책이었다.

지적인 책친구님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특정 논제를 가지고 토의하며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혹시 이 책의 내용들이 나의 무의식에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었나 생각해 보는 시간은 되었으나, 이 책이 지금껏 나름대로 별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작건 크건 간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생소한 주제에 대해 함께 논해 볼 수 기회가 되어 이 책을 2월 북토크에서 함께읽기책으로 권유해준 책친구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문학과 비문학은 분명 차이가 크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보다 비문학이 읽기가 난해하고 머리도 좀 아픈 것이 손이 잘 안가는 면이 있는데, 힘든 책을 다함께 읽을 수 있어서 훨씬 수월하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선상 자체가 차별상황인 현실을 돌아보고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오늘 북토크 시간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왔기 때문에 다음 북토크에서는 좀 더 라이트한 문학을 다루게 되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서 공정함과 공평함에 대하여 그 차이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1을 당연하게 생활화한다는 게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어렵고 싫어도 가야만 할 길이라면 함께 논의하며 좋은 변화를 위해 노력해 보는 작업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겠다.

오늘 독서토론에 처음 참여하였는데, 좋은 책친구님들과  알찬 북토크 시간이 기대 이상으로 참 좋았다. 책도 의미로웠고 책친구님들과의 논의도 즐거웠다. 처음이라 여러 가지로 준비가 덜 된 듯한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으며 다음번 책모임에도 참여하고 싶은 의지가 불끈 솟았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수다 중에 어린 시절 많지도 않은 형제간에도 부모님의 작은 차별이 느껴지면 서러워했던 적이 있었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런 작은 차별조차도 평생을 관통하며 기억에 남아 있는데,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과 혐오, 멸시를 받는 입장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던지에 대해 깨달았으며 나의 무지함에 대해 부끄러워졌다. 솔직히 기존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어렵고 싫어도 가야만 할 길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일단 내 일상 속에서 차별과 혐오를 실수로라도 자행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늘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다.

의미 있는 책으로 독서토론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 책을 추천해주신 책친구님과 책모임 친구님들 모두께 감사하고, 2월 북토크에 새로 합류하신 책친구님도 재미와 의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셨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진국이므로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꼭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오늘 이런 토론의 자리처럼 건강한 토론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은 불편할지리도 현실과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이런 종류의  또다른 책들이 계속 나와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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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책리뷰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기존 질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사서일을 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지난 연말에 몇 권의 책을 선물받았다. 도서관에서 연말결산을 하면서 특정 프로그램 이수자들에게 책선물을 하는 사은행사로 각자가 원하는 책을 신청받아 택배발송하는 과정에서 고맙게도 내 생각이 나서 몇 권의 책을 나에게도 보내준 것이라 하였다. 눈송이가 흩날리는 어느날 저녁에 집으로 배달된 책들 가운데 노란색 바탕에 귀여운 오리들이 단순한 모양새로 그려진 책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 당장 읽고 있는 책들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있었기에 책장 한 켠에 꽂아두고 저 책들을 언제쯤 읽게 될까나 싶다가 어느새 잊고 있었다.

내가 매달 진행하고 있는 책모임에서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북토크책을 선정하고 있는데, 책친구님의 추천에 의해 2월달 ‘함께읽기책’으로 결정된 책이 공교롭게도 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마침 연말에 선물 받아 책장 한구석에 묻혀있던 이 책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된 것이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량’이라는 따뜻한 느낌의 단어와 ‘차별’이라는 차가운 느낌의 단어가 서로 상충하는 듯하면서도, 함께 조합하여 놓으니 각각의 언어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효과를 가지게 되어 책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목차를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목차를 확인하면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골격을 어느 정도 잡고서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되면, 어떤 책이든 대략적인 구조화가 가능하게 되어 책을 읽어 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 역시 책을 손에 잡아든 처음 시점에 책을 열어 목차를 먼저 확인하였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3장, 2부에서는 4장, 3부에서는 3장으로, 총 10장의 챕터로 나누어져 세분화되어 각 장마다 디테일한 내용으로 꽉 채워진, 전체적으로 형식과 내용 양 면에서 매우 잘 짜여진 논문과 같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1부에서는 우리가 차별을 감지하지 못하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과정과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1부 1장에서는 우리에게 너무 일상적으로 주어져서 그것이 특권인지 의식조차 할 수 없는 익숙한 특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가진 조건과 위치와 지위가 다르기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조차도 착시일 수 있으며, 그것이 누군가의 입장과 위치에서는 편향되고 불평등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의 이런 설명을 읽어나가다 보니 내가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진 선량한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차별을 자행하며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1부 2장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크로스 되는 경계에 따라 구분지어진 집단이 있고, 그 집단에 속하느냐 배제되었느냐에 따라 서로를 차별하거나 차별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1부 3장에서는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경계지어지고 구조화된 일상적 모순 속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그 당사자조차도 그 사회의 기존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그 불평등이 유지되어 나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2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차별이 어떻게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더 나아가 그 차별이 ‘정당한 차별’로까지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의 일상 속 다양한 실사례를 예로 들어서 차별이 일상화되고 그것에 대한 인지가 얼마나 둔화되고 있는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차별이라고 논란이 되어졌던 실제 사례들을 가져와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그 사건을 통해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지점을 다양한 연구와 이론들을 첨언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차별과 평등의 묘한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다. 2부 4장에서는 흑인을 비하하며 웃음거리로 만든 ‘시커먼스’ 분장이 논란이 되었던 사건을 가져와 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를 비하하고 희화하면서 그것을 유머나 농담이었다며 쉽게 넘어가는 일반인들의 행태가 얼마나 무개념인 차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부 5장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능력 위주로 차등을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주의 신념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2부 6장에서는 대중 목욕탕 같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되고 분리된 실사례를 들어서,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누군가를 배제하고 분리해버리면서 이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에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시선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다. 2부 7장에서는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면서 ‘퀴어문화축제’를 예로 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광장에 나와 떠들썩하게 축제를 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의 불편한 심기에 대해, 공공의 공간에 나와 그것을 이용할 권리가 소수의 특정한 집단에는 배제되고 다수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당연시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현실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3부에서는 차별과 혐오에 일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들의 보편적인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간 불거져 나왔던 갖가지 논쟁거리와 여러 실험들을 다양하게 가져와 드러난 현상을 다각도로 바라보기를 제안하였다. 또한 평범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혐오와 차별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각자의 위치와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대안과 방향을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3부 8장에서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와 차별을 시정하려면 용감하게 도전해야 하는 노력들이 필요한데, 그것은 이미 너무 자연스럽게 세팅되어 있는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의 벽에 대한 긴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이미 세상은 정의로운 곳이라고 믿고 싶어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혼란을 초래하기는 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려면 기존 질서에 문제제기를 하고 도전하여 부당한 법과 모순된 현실 체제에 항거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역사가 진보해 온 것처럼 우리 모두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3부 9장에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논쟁을 가져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편화시켜서 포괄할 수 있는 큰 틀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3부 10장에서는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첫걸음으로써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 일반인들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와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일종의 상징이며 선언의 의미로써 중요하기에 법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 책의 첫페이지를 열면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라는 저자의 프롤로그가 펼쳐지는데, 그 시작인 첫단어가 ‘결정장애’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위트 있게 표현한답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흔히들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로 익히 듣던 말이라, 저자가 어떤 논리를 풀어가려고 ‘결정장애’라는 단어로 첫마디를 시작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짜장면과 짬뽕 등의 한끼 메뉴를 결정할 때에도 자주 사용되는 ‘결정장애’라는 이 단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말이라는 것을 평범한 일반인들이 얼마나 의식을 하고 있을까? 순간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듯 크게 경종을 울려주는 듯한 첫문장의 첫단어였다.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게다가 차별과 혐오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다문화학과의 교수인 저자조차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사용했다가 그것이 차별적인 단어라는 지적을 받고 놀랐다는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그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음을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솔직하게 밝히고 있었다.

‘결정’이라는 말에 ‘장애’라는 말을 붙이면 ‘결정을 잘 못하는 열등한 사람’이라는 의미 전달이 된다는 것을, 평범한 우리들은 아무런 자각을 하지 못한 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웃자고 하는 이야기들이건만, 정작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폭력으로 느껴지는 말이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매우 진지한 고민들이 필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말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는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많이 있을지, 되도록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게 하는 프롤로그였다.     


누군가는 차별을 당했다며 아우성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차별에 관한 경험들은 분명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차별을 당했다’는 사람은 많고 많은데 반해 ‘차별을 했다’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우리가 보통의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 내에서 생각한다면 ‘차별’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면으로부터는 상당히 거리가 멀고 분명 부정적인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고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차별을 행했다거나 누군가를  차별했다는 말을 당당히 드러내 놓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차별을 당했다’는 사람들은 차고 넘쳐도 ‘차별을 했다’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선한 소시민들이 본인들은 선량한 일반시민이라고 생각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자행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자각시켜 주고 있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 또한 해당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기에, 나는 차별을 하는 나쁜 사람이 결코 아니라고 부정하며 항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다소 괴로운 마음이 살짝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타인을 함부로 경시하거나 차별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에 두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편의시설들이 장애인들은 쉽게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한 사실이니만큼, 그 기울어진 구조 자체가 커다란 차별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은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야 알고 있으나, 생활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상의 차별 상황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으며, 실제 차별과 혐오를 받는 사람들이 참다못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조차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양 먼 산 바라보듯 스쳐 지나갔던 때도 많았던 것이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대학의 다문화학과에서 큰 범주의 인간평등사상에 기반을 둔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학자이기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일반인들보다는 좀 더 심하다 싶은 면도 있고, 뭐 이런 것까지 차별이라고 아우성을 칠 일이더냐 싶게 다소 억지스럽다고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목소리를 내고 극대화시켜야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혐오, 그리고 억압에 관한 실체적인 현실 모순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고, 그나마 선량한 일반 시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설파할 수 있었으리라는 이해가 되었다.      


한편,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말씀을 하시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차별과 기회의 불균등이 일상다반사였던 데다가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던 고난의 시절을 힘겹게 살아내셨던 당신들의 젊은날을 회고하면서, 그 시절에 비하며 훨씬 먹고살만해진 현대사회의 풍요로움과 폭넓어진 교육의 기회를 강조하신다.

조선시대까지는 출생한 집안 배경 자체가 본인의 신분으로 이어졌었으니 불평등한 사회 그 자체였고, 근현대 시절에도 회오리치듯 변화무쌍한 시대라서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관건이었기에 개개인의 경제 상황에 따라 교육과 기회의 차별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풍요의 시대이기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도약하고 상승할 수 있는 평등한 시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향한 일명 ‘꼰대 마인드’로 목소리를 높이시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어르신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당장 먹고사는 것과 생존 자체로 직결되는 문제들로 인해 불안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절실하게 살아낸 구세대의 시각으로는, 현대사회의 풍요로움과 다양한 기회들이 얼핏 보기에는 차별과 혐오, 억압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병폐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사회의 이면을 짐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이해된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이루어냈고,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어내야 했던 사회적 혼란들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삐거덕거리며 갑론을박 논란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모순에 매몰되어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과도기를 거쳐서 다소 더디더라도 조금씩이라도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평등한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이고,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해를 거듭하면서도 반복하여 재인쇄를 거듭하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걸 보더라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서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함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혐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미약한 부분일 뿐, 눈에 보이지 않게 수면 아래에서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의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생활 곳곳에 여전히 만연하고 있으며 실존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기존 질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얼핏 보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사람은 제각각 평등하지 않게 태어난다. 현실적으로는 원래부터 불평등한 기본값이 정해져 있는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점 자체가 다른, 불평등한 조건이 태생부터 주어져 버리는 삶의 현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점을 꼽자면 바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니, 불평등한 세상을 좀 더 평등하게 바꾸어 나가려면 우리 인간들의 ‘미덕’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사상가, 고전주의 철학자, 비판적 지식인이었던 ‘볼테르’는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태생이 아닌 미덕이 차이를 만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을 되새겨 보자니, 인간은 본디 평등한 것이고, ‘미덕’이 사람 간의 명성이나 평판, 그리고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면서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덕을 잘못 발휘하면 불평등한 차이를 극대화시킬 것이고, 제대로 잘 발휘한다면 현실적인 차이를 좁혀서 본래 인간의 평등성에 가깝게 개선할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들 각자가 인간의 ‘미덕’을 좋게 발휘하려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채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직, 간접 경험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도모하면서, 나 자신부터라도 세상의 차별과 혐오,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불평등한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지라도 내 주변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데 디딤돌 하나 정도는 올려놓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일단 내 주변이 차별과 혐오로부터 벗어나 서로 화합하며 따뜻해진다면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과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나부터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나 선량한 마음만 갖고 있다고 하여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평등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내어서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문제제기를 하며 논쟁의 장으로 끌어내어 이슈화 시킬 수 있다고 하여,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일순간에 극복되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이 현실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힘들고 험란한 길을 계속 가야만 하는 풀기 어려운 고난도의 숙제를 우리 모두가 무겁게 떠안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깨어 있는 지식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고, 현실 모순을 꼬집은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며 좀 더 평등해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많이 생길수록 우리 사회의 차별은 사라지고 평등을 이룰 수 있게 될 가능성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이득이 있으면 손해가 있는 법이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변화와 개혁의 물결이 활발하게 일렁일수록 좀 더 치밀하고 은밀하며 고도로 설계된 새로운 형태의 차별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겨나고 자행될 가능성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날로 성숙하는 시민의식을 추구하면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순간들을 좀 더 세밀하게 인식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나 같은 일반인들은, 우리 사회 속의 차별과 혐오의 사각지대에 놓여져서 신음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활동가이면서, 차별과 혐오에 관해 여러 학문을 융합하여 통합적인 시각으로 연구하는 학자인 이 책의 저자 김지혜 교수처럼 예민한 차별 감수성을 갖고 매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행동하지 않으려면 좀 더 색다른 시각을 가지고 기존 질서를 바라보려는 ‘낯설게 보기’를 실천하면서 ‘기존 질서 너머’까지 폭넓게 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2월의 ‘함께읽기’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 책모임의 책친구님이 추천해 준 책이었는데, 마침 나도 소장하고 있는 책이라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고, 북토크와 논제발제를 위해 좀 더 진지하게 집중모드로 읽게 되어 더욱 좋았다. 한편, 저자가 현장의 활동가이기도 하면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라서 그런지, 통계학·사회복지학·법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여 통합하는 관점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관하여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이 나에게는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아마도 이론적인 베이스가 튼튼한 학자이자, 학교 현장에서 ‘다문화학과’라는 전문분야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전공을 하며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라서 그런지 책 자체가 에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문적이며 무겁고 재미가 없는 편이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평소에 책을 한 번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단숨에 휘리릭 읽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좀 지루함도 느끼면서 챕터별로 끊어읽기 하면서 완독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마치 논문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 살짝 머리도 아파오기도 했으며, 학술포럼에서 논쟁선상에 오를 수 있는 전문 논제로써 토의자료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나 같은 평범한 일반시민에게는 평소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평소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무심함과 무식함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토록 의미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책친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또한 2월 책모임에서는 북토크 장소를 평소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보았고, 처음 참여하신 신입 책친구님이 계셔서 좀 더 새로운 기분이 들었던 독서토론 날이었다. 아무쪼록 신입회원님께도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북토크 시간이 되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을 모르고 확산되기만 하는 코시국의 어려운 상황이 좀 더 호전되어서, 책모임을 할 때 오프모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움츠려들지 않고 더 많은 책친구님들을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의미로운 구절]                   

p8~9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걸까? 모욕을 한 사람은 없고 모욕을 당한 사람만 있으니, 모욕을 당한 쪽에서 감내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p24

‘토크니즘’이란 역사적으로 배제된 구성원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을 말한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p27~28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다..... 호의와 권리에 대한 이 이른바 ‘명언’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써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p49

고정관념이 작동하면서 정보처리를 교란시켰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더 잘 흡수하고, 이는 판단을 편향시킨다. 이렇게 사람을 구분하는 경계를 따라 고정관념이 생기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변한다.     

p65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대학 ‘간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은 그 ‘간판’이 실제로 개인의 능력도 만들고 기회도 만든다.

.....

상대적으로 지방대생,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유리한 편견이 이익이 되듯이 불리한 편견은 불이익을 초래한다.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덜 우수하고, 덜 성실하고, 노력이 부족하며,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기대를 받는다.     

p79

사람들 마음속에 내면화된 낙인과 열등감은 불평등한 구조를 감지하는 신호일 수 있다. 대학 서열을 둘러싼 심리적 불편함은 어쩌면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교육이란 본래 모든 사람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 본질적인 기능이 왜곡되어 누군가에게는 우월감을,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주는 체제가 되었다. 대학 서열이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믿으며 이 모순을 애써 외면하기에는 ‘딱지’와 ‘얼룩’이 너무 크다.   

p79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p90~91

잔혹성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서 온다고 했다.....‘농담은 농담일 뿐’이라며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잇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이다.     

p96

지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향하는 비하성 유머는 비하당하는 사람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 지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향하는 비하성 유머는 말하는 사람이 그 순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더 크다.     

p98~99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p104

어떤 사람들은 차별이 ‘공정’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차별하는 것이 더 옳고 도덕적이기 때문에 차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실하게 일해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과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한 사람을 똑같이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팀 프로젝트에서 무임승차한 사람을 다른 구성원들과 똑같이 대우할 수는 없다. 정의란 누구든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룬 성과만큼 차등적으로 대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113

능력은 한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p122

단체 체벌은 책임이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불합리한 제도이고, 잘못이 있는 사람에게도 지나친 형벌이다.     

p130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며 배척하는 주장은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 최소한 종교적 신념이 타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p131

사실 누가 한국인인지도 모호하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서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해도 한국인이라고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아도 한국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 경계를 가르는 권력이 누군가에게 있다는 점이다.     

p132

‘다문화아동’이라는 단어는 왜곡된 한국의 풍경을 보여준다. 다문화라는 말은 본래 다양한 문화의 상호존중과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인 ‘다문화주의’에서 온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p133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

.....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p139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제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p142

사실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있는 자리와 나의 위치에 따라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한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권력이다. 이 권력을 잘 쓰이면 매우 의미 있다. 권력자를 향해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시민이 권력을 획득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부하가 상사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권력관계는 기존과 달라진다.     

p145

권력자 또는 다수는 싫어하는 집단을 배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다.     

p155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모두의 권리이다. 하지만 이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각은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입장이 바뀌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p156

공공의 질서는 많은 경우 인권과 긴장관계에 있다.     

p157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공공질서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이 한 마디는 상황에 다라 때로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극단적으로는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자의 모든 권리를 부정하고 활동을 억압하는 손쉬운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공공질서’라고 할 때의 ‘공공’이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수가 동의하는 질서가 공공질서이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만능 논리가 탄생한다.     

p159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권위에 순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p181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사람은 경제적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 결과로 다시 무시당하고 배제된다.     

p186~187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삶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위의 유동성에 따라 개인의 만족감이 달라진다. 불평등이 있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안심한다. 하지만 그 편안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생에 걸쳐 쏟는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억울하면 성공해!’라는 흔한 말처럼, 열등한 지위에서 겪어야 하는 모욕과 무시를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이 따라올 것이라 예상되는 성취들을 최소한이라도 확보하고자 한다.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이다.     

p188

이미 우리의 삶은 상당히 획일적인 형태로 굳어져 있다.     

p197

보편성은 차별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 은폐시키기도 한다.     

p205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p205~206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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