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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y 15. 2022

[책리뷰]-그림동화『긴긴밤』

*고단한 인생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긴긴밤


#루리 작가


  ‘루리’작가의 그림동화책『긴긴밤』독서토론 리뷰      


[북토크 리뷰]-『긴긴밤』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고단한 인생에서, 엉망진창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만회할 기회라 할 수 있는 큰 변화를 경험한다. 

-해리슨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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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긴긴밤』                         

✅작가 : 루리            

✅출판사 : 문학동네

✅북토크 일시 : 2022, 5, 14, 토     

✅북토크 장소 : 송파 모임처                         

✅준비물 : 마스크 착용 필수, 책, 필기도구, 능동적이고 즐거운 마음                         

✅참여자 : 책친구님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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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현장 써머리]    

2022년 5월 ‘함께읽기책’은 책친구님의 추천책으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림동화책 『긴긴밤』이었습니다.

케냐 북부의 유일한 수컷 흰바위코뿔소였던 ‘수단’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 『긴긴밤』은 “압도적인 감동의 힘”,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엄숙함”,“멸종되어 가는 코뿔소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어린 펭귄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 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5번 레인』과 함께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바 있는 ‘루리’작가의 그림동화책 『긴긴밤』을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북토크 참여자들이 준 책의 평점과 이유, 그리고 독후 소감(5점 만점)     

✔4.5

아름다운 책이었다. 주인공 ‘노든’의 동선과 감정선을 따라가듯 읽으니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큰 감동을 받았다. ‘노든’이 만난 여러 인연들과 그들과 엮어 나가는 서사들을 통해, 삶이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함께하면서 타자와는 다른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깨달을 때 성숙한 자아를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노든’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잘 성장해 나가는 씩씩한 아가 펭귄을 통해 어린 존재에게 믿음과 희망으로 앞날을 축복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는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구상의 마지막 수컷 흰바위코뿔소였던 ‘노든’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통해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고단한 과정이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새로운 기회와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삶 속의 너무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다 담아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한 플롯이 다소 무리수를 둔 듯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면서 문학적 완성도로는 어색함이 느껴지는 표현들도 눈에 띄어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문학 전공자도 아니며 이제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열정과 재능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던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한편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개인의 선호도 탓인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죽음을 반복해서 직면하게 하고 세상은 참 무서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겁먹게 만들 수도 있을 만큼 다소 어두운 서사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0.5점을 뺐다.    

 

✔5.0

스토리가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읽으면서 속상하고 씁쓸했던 것이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사람들에게서 접하고 살아야 하는데, 사실 현실적으로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사람으로부터 받고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점이 새삼 안타까웠다. 현실에서는 사람으로부터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대부분 못 듣고 산다. 항상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위로받고 힐링하는 것이 새삼 깨달아져서, 이 동화책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마치 가상체험을 하듯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라는 게 더 크게 느껴졌다.

특히 코끼리 할머니가 너무 현명하시다고 생각되었는데, 이런 성숙한 어른이 한 인간이 성장해 나가는데 얼마나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만나 무너지고, 다시는 못 일어날 것처럼 끔찍한 일을 겪는다 해도,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준다면 긴긴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림, 컬러가 정말 예쁘고 특히 표지의 촉감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마치 바디필로우를 만지는 것처럼 책 표지를 문질문질 하며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좋았고 그 순간에 힐링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힐링받고 싶은데 맨날 책, 영화, 사물을 끌어안고 위로받는 현실이 참 웃프고 씁쓸하기도 하다.     


✔3.0

이 동화책을 읽고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 책을 어른들이 읽었을 때와 어린이들에게 읽혔을 때를 가정할 때 그 평점이 다르게 설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의 시각으로 읽었을 때에 결코 높은 평점을 줄 수는 없었는데,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혔다고 생각해 보아도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우선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화장실, 공부방, 주방에 있는 물건을 갑자기 거실에다가 다 모아서 쭉 늘어놓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왜 이 캐릭터가 여기에서 뜬금없이 나타났고, 이런 사건은 왜 이때 일어났고, 어떻게 이런 경험을 했는지, 연관성과 맥락 없이 작가의 생각과 경험들을 아무데나 툭툭 던져 모아놓은 듯 연결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스토리 전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예전에 ‘인어공주’를 읽고 정서적으로 너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에는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결말의 잔상으로 인해 며칠 동안은 샴푸로 머리를 못 감을 정도로 정서적 타격을 받았었다. 샴푸 거품이 마치 사라져 버린 인어공주 같아서 흠칫 놀라고 오싹해졌었다. 그런데 이 책도 너무 부조리한 세상에서 깨지고 부서지고 당하고 죽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참 많아서 어린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둡다는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동화는 모름지기 아이들의 감수성을 밝고 든든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어른들이 어른들의 시각으로 아이들 대상의 동화를 쓰니까 ‘잔혹동화’가 되어버려서 이렇게 험한 스토리를 자꾸 만들어내게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을 거니까 되도록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서 어린아이들이 세상의 두려움과 어두움을 경험하기 이전에 되도록 화사하고 예쁜 것들을 먼저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4.0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대상층을 아이로 한 것일까? 그랬다면 과연 몇 살을 타킷으로 이 이야기를 쓴 걸까? 아니면 어른을 대상으로면 쓴 것일까? 고민해 볼 정도로 동화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많이 무거웠다. 이 책을 주문해서 받았을 때 첫 순간에는 책 표지가 따뜻하고 밝아서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읽고 조카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을 완독하고 나서는 이 책 내용을 과연 조카가 이해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작가가 성인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내가 작가를 전문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내 식견이 부족하고 개인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인데,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따뜻함을 느끼기보다는 상실감을 느꼈다. 캐릭터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말미에는 죽거나 헤어지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바다를 향해 가고, 들판을 향해 가고, 각자의 길로 홀로 가야만 하고, 결국 ‘노든’은 혼자 남았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누리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다가, 때가 되면 뒤로 물러나 외롭게 혼자 남는 ‘노든’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과 같았다. 이상하게 ‘노든’에게 감정이 많이 투영되었다. 그래서 다소 씁쓸해졌고 참 슬픈 동화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참 아름다운 책이었다.     


✔4.5

나는 독서토론을 처음 해보는 것이고 평점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일단 내가 꽤 높은 점수를 준 이유를 말하자면, 글이 쉽게 읽혔고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동물들인데 동물을 통해서 결국은 인간의 삶을 표현한 것이었고, 동물들이 겪어나가는 스토리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게 잘 녹아있는 책이라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0.5점을 차감한 이유는 구성이 빈약한 면이 느껴졌고, 맥락이 뜬금없는 부분들도 있어서 만점을 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참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긴긴밤’이라는 제목이 잘 드러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긴긴밤’이란 결국 우리 삶의 과정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생의 여정을 뜻한다고 느꼈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에는 혼자 남게 되는 것이고, 인간의 삶은 지독히도 고독한 것이며 누구나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우리의 삶을 대단히 잘 표현해 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5.0

성숙하고 따뜻한 작가의 시선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문장이 시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웠다. 아프리카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의 중요한 가치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노든과 그 친구들을 보면서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기쁨과 행복, 상처와 좌절에 대해 공감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좋은 기억, 가족과 친구임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은 성실함, 책임감에 대해서, 그리고 성숙한 어른들에 대해서도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 바람처럼 빨리 달리고 싶었던 ‘앙가부’, ‘치쿠와 윔보’, ‘어린펭귄’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모두 의미로웠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성공은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아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답게 사는 것,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이 좋던 나쁘든 간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좀 관대해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신도 당신의 삶을 용기 내서 잘 살아보라고, 잘 살 수 있다고 응원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도 다 그렸다고 하는데, 작가 소개에는 미술이론을 공부한 작가라고 간결하게만 소개되어 있었다. ‘미술이론’이란 게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원시시대에 벽화를 그리던 인간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결국은 인문학을 통섭하여 인류를 이해하는 근원적인 학문인지라, 그런 공부를 한 이 작가는 분명 깊이 있게 사유하는 사람일 거라는 짐작이 든다. 그리고 그림을 이토록 잘 그려낸 것을 보면 이 작가가 그래픽 디자인 같은 미술 실기도 전공하고 ‘미술비평’을 연결해 공부한 여자분이 아닐까 짐작해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여성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하고 관대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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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론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정리 불가함.     


✅핵심 메시지 또는 한 줄 총평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고단한 인생에서, 엉망진창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누군가의 배려와 도움의 여부가 어떤 존재를 살게도 죽게도 만든다.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것이다.

✔희망, 도전, 용기, 사랑, 이름, 연대, 동물학대, 멸종, 독립, 정체성, 지지, 가족, 함께, 소수자, 고독, 홀로서기, 죽음, 탐욕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간만에 눈물짓게 만든 책.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가?

✔친구는 서로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함께 있는 것은 중요하다.

✔긴긴밤

✔삶은 결국 혼자이다.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기도, 관계를 안 맺으면서 살기도 한다.

✔인생의 성공은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아 놓는 것이다.          


✅오늘 책과 토론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 및 마무리 발언           

✔오랜만에 참 좋은 동화책을 만나서 기뻤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가장 반짝거리던 나날이 있었고, 죽을 것만 같았던 절망의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입장에도 대입해 생각해 볼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어설프고 잘 몰라서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난날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아프고 걱정스러울지라도,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여 씩씩하게 우뚝 서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주고 축복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동화책을 소개해 주신 신윤선 책친구님께 감사하고, 오늘 책벗님들과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많이 즐거웠다. 앞으로도 짧은 분량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동화책이나 그림책, 단편선들을 우리 책모임에서 종종 다루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합류하신 신입 책친구님을 다시 한번 환영하며, 앞으로 함께 즐거운 책모임을 만들어 나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이 따뜻해서 참 좋았다. 동화책이니까 상징과 축약, 미화도 있으나 그것이 동화의 장점이기도 했다. 이 책은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 학급의 추천도서였는데, 어른들이 보아도 참 좋을 내용이라 생각되어 우리 북토크팀에도 추천했다.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어른만큼 슬퍼하지는 않았고, ‘재밌다, 그림이 예쁘다.’ 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음의 관점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켠켠이 쌓인 삶의 슬픔이 아직은 없다는 것도 좋게 느껴졌다.

사람은 자기의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눈높이를 맞출 수 있고, 세대를 아우르며 광범위하게 포용할 수 있는 참 신기한 책이었다.   

  

✔오래간만에 눈물짓게 만든 책이었다. 최근에는 그림책을 거의 안 보고 지내서 이 책을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눈물이 나기도 하고 지나간 서러운 일들과 맺혀 있던 많은 감정들을 떠올리게 하며 상념에 빠지게 만든 책이었다. 그런데 내 표현의 한계로 오늘 북토크에서 나의 감동을 좀 더 잘 드러내지를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아이들은 ‘한’이란 게 뭔지 잘 모를 정도로 아직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없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도 죽음이 뭔지는 어렴풋이라도 알 텐데,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이 책이 좀 슬프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평점을 5.0 만점을 주었지만 사실 스토리가 너무 슬퍼서 회의감도 살짝 들었다. 평소 그림책을 거의 안 보고 지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번 책모임이 참 좋은 계기가 되었다.

‘노킹 온 해븐스 도어’라는 영화도 생각났다. 그 영화도 이 동화책처럼 너무 아름다웠는데 결말이 정말 슬펐다. 마지막에 결국에는 죽는다. 그러나 서로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라도  서로 의지하고 연대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메시지로 남았다. 이 동화책도 친구와 연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고, 혼자이기보다는 서로 연대하며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 하기에는 아이의 이해도가 얼마나 될까 싶은 내용이라서, 동화를 어른이 쓰고 어른들이 심사를 하니 이렇지 싶었다. 차라리 동화 공모전의 심사를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린아이는 예쁜 것, 착한 것, 좋은 것을 많이 접하면서 정서적 토대를 아름답게 다지게 해야지 싸우고 죽이고 하는 ‘잔혹동화’ 같은 충격적인 내용들은 되도록 아이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오늘 이 책모임에 첫참여라서 어떤 분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임일까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북토크를 해보니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고, 이 모임을 만나게 된 것이 반갑다.

이 동화를 읽고 삶이 참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잠들기 직전이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삶이란 결국 혼자인 게 사실이지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기에, 되도록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고 싶다.     


책을 읽고 북토크를 하면서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델마와 루이스’, ‘버킷리스트’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이 동화책의 맥락과 잘 맞닿아 있는 메시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들어 나이가 점점 드니까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지, 내가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인생을 얼마나 더 즐길 시간적 여유가 나에게 남아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매일 일만 하고 피곤에 쩔어 살지만 말고, 좀 누리고 즐기다 가야 하는데, 매일 닥치는 현실적 삶에 지쳐서 하고 싶은 것을 잘 못하는 게 아쉽고, 용기 내어서 좀 쉬어가고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만든 책이었다.              

           


【『긴긴밤』 책리뷰】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고단한 인생에서, 엉망진창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이 책은 우리 책모임 멤버님의 추천에 의해 5월의 ‘함께읽기책’으로 지정되었고, 자연스럽게 북토크로 이어졌다.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장편소설이었던 4월 책에서 분량의 압박과 난이도를 감당해 내느라 다소 버거웠던 차에, 적시적때에 그림동화책 추천을 해주신 책친구님의 센스 넘치는 제안 덕분에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기쁘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래, 출간되어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고 정평이 나 있던 그림동화책 『긴긴밤』을, 나는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 놓고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에 책보다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스토리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 동네 한 바퀴 산책길에 나서던 순간에 평소 습관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방송을 들으며 걷기 위해 오늘은 무엇을 들을까 방송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동화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한 엄마가 밤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상의 모습을 녹음해 업데이트하는 개인 팟캐스트였는데, 『긴긴밤』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던 중 발견하여 망설임 없이 곧바로 다운을 받아 듣게 되었다. 앞부분을 조금 들어보니 보통은 아이가 잠들기까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설정으로 하는 방송이었고, 완벽한 컨셉을 갖추고 편집을 깔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법한 자연스러운 상황을 여과 없이 들려주고 있는 아마추어 방송이었다. 여타의 프로 방송인들이 만든 깔끔한 형식의 팻캐스트가 아니었기에,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음성도, 엄마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반응하는 아이의 목소리도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내가 그 엄마와 아이를 본래 알고 지냈던 지인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초등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오래전에 이 동화책을 이미 읽었던 것 같았고, 엄마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그날 밤이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순간인 듯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서 이 책 전개의 중간중간에 휘몰아치듯 밀려드는 고통과 두려움, 희망, 그리고 절망과 환희의 순간마다 잠시 낭독을 멈추고, ‘아, 이 책 너무 슬프다... 어우, 정말 너무해... 아이고, 어쩌면 좋아...’하며 그때그때 올라오는 감정선을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상황이 있었고,  그럴 때 아이가 ‘엄마, 그다음에 더 슬픈 일이 또 생겨... ’라고 말하며 엄마와 아이가 주고받는 대화가 재밌으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졌다. 포장되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현장감이 느껴져서 동화책 스토리의 전개와 엄마와 아이의 감정선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책 읽어주는 엄마 팟캐스트’를 통해 이 책을 오디오로 먼저 접한 이후로 집으로 배송된 종이책을 집에 나 홀로 있는 시간에 조용한 서재에 틀어박혀서 집중해서 읽었다. 평소 독서 습관대로 책장을 넘기며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도 붙여가며 책을 읽었는데, 귀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상이 올라오면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변곡점을 접할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들과 깊은 감동의 순간들을 경험하였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노든’이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결정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협적인 어떤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안락한 환경을 포기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서 무섭고 두려운 동물원 바깥세상으로 떠나가는 선택을 한 ‘노든’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을 깨고 나온 새’와 같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진일보하고자 하는 욕구와 희망의 표출로 느껴져서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코끼리 동물원을 떠나기로 결정한 ‘노든’을 믿고 격려하며 축복해준 할머니 코끼리의 지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소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스토리에 대입해 이 부분을 이야기해보자면, 아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과감하기보다는 ‘노파심이 많은 현실 엄마’였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엄마인 나는 되도록이면 ‘안정감 있는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 개인적 성향을 갖고 있었고, 아이가 고생하지 않고 평안한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모험심이 강하고 엉뚱한 면이 많으며 예측불허의 즉흥성과 창의적인 행동파인 아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적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경험한 초보 엄마의 여러 시행착오 끝에, 호기심이 많고 실험정신이 강한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못하고 부족한 내 식견 안에서만 생각하느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했었던 지난 나날들이 있었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내가 엄마로서 참 부족했고, 어떤 면에서는 다소 어리석었다는 깨달음이 올라오면서, 아들을 어린 시절부터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예쁘게만 키우려 하지 말고 좀 더 과감하게 아이에게 많은 선택권을 주고 믿고 지지해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때가 되면 아이는 어느새 청년으로 자라나 본래 타고난 결대로의 자기 인식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씩씩하게 떠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믿어주는 만큼 잘 자라날 수 있고, 식견과 내공이 부족하고 소심했던 초보 엄마보다는 훨씬 큰 그릇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잘 개척해 나가리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다 큰 자녀에게는 한 발짝 물러서서 축복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 외에는 엄마가 달리 해줄 게 없다. 그것이 현실이고 순리이다. 피 끓는 청춘의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이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세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때가 되면 알을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자각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품는 것이 청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실현해 내려는 용기를 갖고, 세상에 나아가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뚜벅뚜벅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코끼리 동물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결정을 하는 주인공 ‘노든’의 마음이 희망과 기대 못지않게, 그 이상의 두려움과 공포로 참 많이 어려웠을 텐데, 그래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현실에 안주하며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고 두렵고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결정을 한 용기가 흐뭇하고 기특하기만 했다.

이런 과감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노든’이 자기 인식을 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노든’이 성장해 가면서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고,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본능적으로 품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기 인식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동화책에서 ‘노든’과 더불어 중요한 캐릭터로써 존재하고 있는 아가 펭귄은 버려진 알에서 태어나 이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믿음으로 살아남고 성장하여 자기 인식의 단계에 이르렀다. ‘노든’과 ‘어린 펭귄’은 주변인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많은 이들의 애정과 보살핌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만큼, 먼저 떠난 이들의 몫까지 잘 살아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운명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능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노든’과 어린 펭귄은 서로를 더욱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며 연대하게 된 것이다.      


‘노든’과 ‘어린 펭귄’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미래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며 전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렇듯 이 스토리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다른 이의 사연과 생각을 듣게 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질고 힘든 삶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삶에서 소통과 공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노든’과 ‘어린 펭귄’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과 타인, 즉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타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고서 나 자신과 타자를 믿고 함께 연대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선대로부터 받은 사랑을 후대에 전해주고, 이웃으로부터 받은 호의를 또 다른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선순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삶이란 고통스러운 만큼이나 꽤 행복한 것이며 기꺼이 살아볼 만하다는 희망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때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면서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스토리의 후반부에서 늙고 노쇠해진 ‘노든’은 기력이 약해져 움직임도 둔해진 노년기에 이르렀을 때에도 다정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어린 펭귄의 앞날에 축복의 메시지를 흩뿌려줄 수 있었다. ‘노든’의 믿음과 지지를 가슴 가득히 안고서 바다를 향해 씩씩하게 홀로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어린 펭귄의 모습에서 우리들 삶의 과정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공감이 되었다.


아기가 세상에 갓 태어났을 때에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극히 작고 연약한 존재였으나, 어느덧 성장하여 때가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하게 된다. 아이도 부모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운명의 때가 되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독립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품 안의 어린아이였던 자식의 모습이 언제나 눈앞에 생생하게 아른거리는 부모 입장에서는, 금지옥엽 키운 아이가 어느덧 자라나 이 험한 세상을 향해 떠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만 하는 이별의 슬픔과 분리의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아이가 만나게 될 통과의례와 같은 성장통과 삶의 희로애락이 걱정되고 안쓰럽지만 언제까지나 아이를 보호해주고 도와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식을 언제까지나 부모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고, 때가 되면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순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학업이나 직장, 그리고 저마다의 처한 상황과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정들로 인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쉽게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고, 가정마다의 비극적인 상황으로 서로 외면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너무도 복잡다단하여 상상도 할 수 없는 생이별도 존재한다. 이 동화책의 동물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찾아 대입해 볼 수 있는 유형들이었고, 전개된 스토리의 면면들이 우리 모두의 인생과 꼭 닮아 있었다. 그래서 감정이 더욱 크게 일렁거리며 감동을 받았고,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길게 여운이 남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기에 우리는 모두들 자신의 삶에서 ‘긴긴밤’과 같은 시절을 겪었던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현재 진행형의 ‘긴긴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긴긴밤’이란 ‘고민과 번민에 시달리면서 잠 못 이루는 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극한의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삶’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 책을 완독한 시점에서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극한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때 누군가와 함께 연대할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역경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모진 세상의 고단함과 사악함에 지치고 만신창이가 되어 상처투성이가 되었을지라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희망의 씨앗을 키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억울함과 분노의 마음이 치고 올라와서 세상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상태로, 다 부숴버리고 자멸해 버리고 말 거라며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설픈 훈계나 비난은 더 큰 독으로 작용하여 악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어떤 상처받은 이가 분노에 치를 떨며 화만 내느라 합리적이지 않은 말만 계속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여 잘 들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인격적으로 성숙한 누군가가 단 한 사람만 곁에 있더라도 결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날선 분노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아 어느새 이해와 용서, 그리고 희망과 미래비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선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동화책이 깨닫게 해 주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자상한 시선, 그리고 사심 없이 믿어주는 마음, 용기를 주는 격려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과 한창 성장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인격적이고 온화한 태도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말들이 그들의 삶에 상상 그 이상으로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기성세대들이 늘 명심해야겠다 싶었다.     


짧고도 아름다운 이 이야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의 근원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무섭고 고통스럽지만 어떻게든 극복해 내면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만 한다. 수많은 위험과 절망의 순간을 만나 처절하리만큼 만신창이가 되어 잠 못 이루고 고민하는 수많은 ‘긴긴밤’들을 버티고 견뎌낸 후에 마침내 맛보게 되는 환희의 순간은, 고통스러웠던 만큼 행복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이 훌륭한 그림동화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희망, 도전, 용기, 사랑, 이름, 연대, 동물학대, 멸종, 독립, 정체성, 지지, 가족, 함께, 소수자, 고독, 홀로서기, 죽음, 탐욕...’ 등 작가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고 모두 다 다루어 내고 말리라 맘먹은 듯, 너무 많은 담론들을 다 끼워 넣느라고 애쓴 흔적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인 면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다 다루려는 욕심이 오히려 서사를 부자연스럽고 산만하게 만들고 ‘수박겉핥기’ 식의 얕고 넓게 살짝 건드림 정도로 밖에는 더 깊이 다룰 수가 없었을 한계가 느껴졌다는 점은 ‘옥의티’ 정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그들이 펼쳐나간 여러 이야기들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완독 이후에도 한참을 이 그림동화책 생각에 감정적으로 허우적거렸던 순간들이 있었을 만큼 여운이 길게 남았던 이 책은 충분히 훌륭했다.


어린아이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어른은 성인의 시각에서 각자가 이해하는 만큼의 선에서 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책벗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그림동화책 읽기도 중간중간 끼워 넣어서 우리 책모임에 쉼표와 방점을 한 번씩 찍어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5월의 행복한 북토크 시간이었다. 그리고 5월 북토크 모임에 새롭게 합류하신 신입 책친구님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아무쪼록 잘 적응하셔서 앞으로 즐거운 책수다 함께 이어나가게 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긴긴밤』 의미로운 구절】

  

p11~12

우리도 너만 했을 땐 그랬어. 조급해하지 마. 마음을 급하게 먹는다고 빨리 나이를 먹는 건 아니니까.     


p12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p12

왜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뿔소 한 마리를 보호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노든은 허기질 일도 없었고, 위험과 마주칠 일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언제나 코끼리들이 함께 있었다.     


p13

하지만 코끼리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것은 곳 싸움으로 번졌고, 싸움은 죽음을 부르는 일이었다. 코끼리는 스스로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코끼리들의 지혜였다. 노든은 현명한 코끼리들이 좋았다.   

  

p14

사람들은 겉에 드러난 것만을 보고 믿는다.     


p15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p18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애.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p19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온 노든은 한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혼자인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p22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p24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과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p26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왔다.     


p29

낮에 심술을 부리니까 밤에 악몽을 꾸지.     


p30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p45

치쿠는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이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했다. 게다가 오른쪽 방향을 잘 보지 못해서 다른 펭귄들이나 장애물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윔보는 항상 치쿠의 오른쪽에서 치쿠가 중심을 잡는 걸 도와주었고, 다른 펭귄과 부딪치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었다. 덕분에 치쿠는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데 적응할 수 있었고, 조금 불편하긴 해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습관처럼 윔보는 늘 치쿠의 오른쪽에 있어야 안심을 했다.     


p46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치쿠가 걱정을 시작하면 윔보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고, 윔보가 걱정을 시작하면 치쿠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둘은 괜찮을 수 있었다. 알을 품는 하루하루가 치쿠와 윔보에게는 값진 날들이었다.    

 

p47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된 외로움은 언제나 노든의 곁에 있었고, 어느샌가 그를 잡아먹어 버렸다. 아카시아 잎을 먹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악몽을 꿀 때도 노든은 혼자였다.     


p48

아내도, 딸도, 앙가부도, 노든에게 소중했던 코뿔소는 모두 떠나 버렸다. 혼자인 것은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p49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 전으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텐데.     


p49

혼자 남으면 탈출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p54

그들은 구해 달라고 울부짖지 않았고, 노든도 그들을 구해 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철조망 안의 동물들과 노든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오갔다. 그게 뭔지는 노든도 잘 몰랐다. 그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노든은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p57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p63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쿠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노든은 알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이 없었지만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았다.    

 

p63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p65

치쿠와 함께 다니는 날들은 노든이 가족과 함께 다니던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노든은 부쩍 아내와 딸이 자주 생각났다. 그 기억은 괴로우면서도 행복했다.     


p67~68

언제나 그랬다. 노든은 옛날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노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p70

‘함께’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노든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p74~75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다. 노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과 연한 구름들이 보였다. 노든은 외로웠다. 그래서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다.     


p81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p81

노든의 말대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p81~82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p81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p98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과 만족감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펭귄들이 나를 좋아해 줄까요?”

“물론이지.”

“노든, 나는 누구예요?”

“너는 너지.”     


p99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p100

나에게 밤이 가장 길었던 날을 기억한다.     


p124~125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p141

노든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삶이 별처럼 반짝이는 몇몇 순간들과 기나긴 지루함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노든의 삶 역시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던 어느 “완벽한 저녁”.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겨우 목숨만 건진 노든이 분노와 불면에 시달리며 복수를 준비할 때, 앙가부는 노든에게 새로운 꿈을 준다.     


p141

우리 삶에는 우리가 자초한 불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불행도 있다.

전자는 내 몫으로 여기고 견딘다 해도 반복되는 후자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p141~142

사는 것보다 죽기가 더 쉬운 세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긴긴밤』 속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는 이어지고 이어져     


p143

‘나는 누구인가’는 문학의 영원한 화두이다. 그간 숱한 작품이 이것을 이야기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이에 화답할 것이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     


p144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바닷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p144

 『긴긴밤』 속 전언처럼 우리 삶은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더러운 웅덩이 속에 빛나는 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이야기한다.     

서로에게 기대어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인사하게 될 것이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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