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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Apr 26. 2022

[책리뷰]-『리스본행 야간열차』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독서토론 리뷰


[북토크 리뷰]-『리스본행 야간열차』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실패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더 바보스럽다.   

-탈무드



—————————————————               

✅책  : 『리스본행 야간열차』                    

✅작가 :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 지음/ 전은경 옮김           

✅출판사 : 들녘               

✅북토크 일시 : 2022, 4, 23, 토

✅북토크 장소 : 송파 모임처                    

✅준비물 : 마스크 착용 필수, 책, 필기도구, 능동적이고 즐거운 마음                    

✅참여자 : 책친구님 6인

—————————————————                    

[북토크 현장 써머리]    

2022년 4월 ‘함께읽기책’은 책벗님의 추천책으로, 유럽 문학의 현대고전이 된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였습니다.

독일의 철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파스칼 메스시어’가 일상이 낯설어진 한 남자의 돌연한 일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장편소설인 이 책을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별점과 함께 읽은 소감을 나눠봅시다. (1점부터 5점까지 별점을 주세요.)


✅북토크 참여자들이 준 책의 평점과 이유, 그리고 독후 소감(5점 만점)

✔5.0

별 5개를 꾹꾹 눌러 주고도 부족할 만큼 대단한 책을 만났다. 나는 독일 문학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다. 철학적인 깊이가 바탕에 깔려 있는 독일 작가들과 그들이 쓴 책들은 뭔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다가오면서 인간적인 품격을 갖추게 도와주는 것 같아서 내가 꽤 인격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듯해서 독서시간이 즐거웠다. 이 책의 저자는 스위스 태생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터 비에리’인데, 사실 나는 몇 년 전 한 모임에서 그의 철학서 <교양 수업>을 접한 바 있었다. 단행본과 같이 두께가 얇은 책이었는데, 책 전체를 다 밑줄 쳐야 할 만큼 한줄 한줄이 ‘명언밭’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가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장편소설이었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서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역시 철학적 사유로 이끄는 수작이었다. 내용이 쉽지 않아서 이해하며 읽느라 애먹었으나,  곱씹어 볼수록 하나도 버릴게 없는 삶의 철학들을 접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줄거리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동선과 사건의 변화 자체가 단조롭고 서술구조에 큰 변화는 없으나, 관념적인 사색으로 이끄는 철학적 사유의 끝판이라고 칭하고 싶을 만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수많은 저자와 책들이 삶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정답이 없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인식’이라는 깨달음을 안겨준 책이어서 그 여운이 길게 남을 듯하다. 오직 인간만이 삶과 죽음에 대해 자기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을 수 있고,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어서 의미로웠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지금의 내 삶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게 만들어준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갑고, 가장 좋아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 베스트 랭킹 안에 이 책을 새롭게 추가하고 싶어졌다.


✔5.0

나무랄 데가 없는 책이었다. 꽤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읽는 속도가 잘 나가서 3~4일 만에 다 읽었다. 나는 워낙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한데, 이 소설을 아무 스포일러 없이 접했지만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정말 빨려 들어가듯 몰입이 되었다.

나도 한때는 책을 꽤 읽는 편이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가, 책모임을 시작한 이후에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 예전만큼 책읽기가 수월하지는 않다고 느꼈었다. 사실 책모임을 시작한 이후로 그간 책읽기에 흥미를 느꼈다기보다는 의무감에서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한 것이었는데, 이 책이 너무 잘 읽혀지고 집중이 되어서 다시 예전만큼의 독서 감각을 찾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깊이 있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을 참 좋아한다. 어쩌면 지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지적인 허영심까지도 불러일을킬 정도로 단어와 문구 하나하나가 너무도 지적이어서, 읽는 동안에 지적인 만족도가 충만해지고 순간순간 감동스러운 눈물이 울컥 올라올 만큼 나의 지적 욕구를 건드려준 책이었다. 이 작가를 찾아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토록 지적인 작가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흥분되는 책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너무 우연이 계속해서 겹치는 것이 플롯이 좀 엉성해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인데, 우연의 연속이 유치하다고 하기에는 그것을 상쇄시킬 요소가 차고 넘치게 너무 많았기에 그 우연의 연속마저도 그럴싸해 보였다.

이 책은 나에게 지적인 자극을 충분히 주었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건드림이 너무 좋았기에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책벗에게 감사하다.


✔3.5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는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느껴졌다. 중간중간 명언같은 말들이 참 많았고, 기억하고 싶은 의미로운 문구들이 연속되었기 때문에 명작은 명작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주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노멀한 별점인 3.5를 주었느냐면, 책을 읽으면서 집중이 잘 안되었다. 특히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한 초반에 책에 빠져들기에 너무 힘들고 진도가 진짜 안나가져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덮어놓고 중간에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 후에 다시 책을 보니 이해도도 높아지고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처음보다는 책을 읽는게 좀 나아졌다.

영화도 좋고 책도 좋고 다 좋았다. 아무래도 영상이라서 그런지 매우 흥미로웠던 영화에 비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무슨 진지한 다큐 같아서 재미 면에서는 크게 빠져들 정도는 아니었다는 솔직한 느낌으로 3.5를 주었다.


✔5.0

내가 이 책의 추천자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완독하고 추천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서 이 책을 샀는데 너무 바빠서 다 읽지는 못했었다. 영화의 감동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그때의 감상을 되살려 보자면, 이 영화는 나의 감정선 어딘가를 격하게 건드려 주어서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리스본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훅 올라와서 실제로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그곳으로 여행을 가보았었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 보통은 묘지에 가볼 일은 없는데 나는 영화의 묘지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일부러 묘지에 찾아가 보았었다. 때마침 그날 묘지가 닫혀 있어서 안타깝게도 묘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계기로 그다음부터는 어느 도시에 가보면 그 지역의 묘지에도 가보게 되었다.

60까지 아무런 자극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성실하게 살다가 어느날 무엇에 이끌리듯이 일탈을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자체가 나의 염원과 통했다.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제일 행복해지기 위해 일도 하며 열심히 사는데,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솔직히 정말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매일매일이 너무 피곤하니까..... 매일 야근하고 피곤에 쩔어 살고.....

이 소설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울림이 있었다.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에서 참 좋은 책이었다.


✔4.5

앞에서 여러분들이 말씀해 주신 이 책이 좋은 이유들에 대해 너무 공감한다. 일단 이 책은 완성도가 참 높았다. 작가가 평생을 관통해 생각해온 고민을 이 소설에 다 쏟아부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젊은 시절부터 나이든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늘 화두처럼 안고 있던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들과 그가 겪은 삶의 이야기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역할을 빌어서 최대한 투영해 내려고 애쓴 흔적이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고 차라리 다큐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나는 ‘알랭드 보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아는게 참 많은데, 그것들을 잘 엮어서 그 자신의 독특한 사고를 좀 있어보이게 포장을 잘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고, 그게 다소 지적 허세처럼 보이기도 해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사고의 깊이와 철학의 고민이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어려운 말들의 나열이지만 지적 허세로 느껴지는 면은 전혀 없었고, 진정한 지성미가 느껴져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작가의 진정성 있는 지적 사유가 너무 대단하게 생각된다.

한편 이 책에 등장하는 ‘아드리아나’가 현실성이 너무 없는 캐릭터라서 0.5점을 뺐다.

여동생이 오빠에 대한 존경으로 어찌 한평생을 그렇게 송장처럼 오빠를 추모하는 삶만을 살 수 있는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 부분이 살짝 아쉬웠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진도가 정말 안나가져서 힘들었는데, 이 작가가 언어학자다 보니 단어선택에 한땀한땀 신중에 신중을 기한 느낌을 제대로 공감하기 위해 열심히 곱씹으며 읽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안났던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참 훌륭한 책이라는 것에는 고민의 여지가 전혀 없다.


✔4.5

우리 북토크팀의 회원님들이 다들 이 책의 평점을 너무 후하게 주셨고, 듣다 보니 나도 설득이 되고 살짝 분위기에 떠밀려서 4.5를 주었으나, 소신 있게 별점을 준다면 사실은 3.5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들 이 책에 너무들 반하셨는데, 별점 주고 평가하는 건 다 자기 생각이니까 나의 색다른 느낌을 말해보고 싶다.

이 책은 분량이 꽤 되는 장편소설이지만, 그냥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라는 사람이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 이외에 현재까지의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레고리우스’가 여지껏의 삶에서 경험 못한 것들을 ‘프라두’의 삶을 쫓으면서 일종의 판타지로 세워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의 삶에서 경험 못한 부분들은 결국 판타지로 채워나가는 것이라는게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한줄로 요약할 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 전개에 있어서 너무 인위적이고 우연적인 구성이 다소 거슬리기도 했다.

또한 작가가 언어철학자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말이 너무 어렵다. 독일, 스위스 등 유럽 철학자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참 어렵게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어도 뭔 얘긴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고, 반복해서 읽으며 이해하는데 애먹어야 할 때도 많아서 쉽지가 않다. 하고 싶은 말들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왜 이렇게 어렵게 표현하나 싶기도 하다.

철학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꼭 난해하고 어렵게 풀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려는 철학자가 나랑은 잘 맞다. 사실 유럽 철학자들은 쓸데없이 너무 어렵게 꼬고 꼬아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별로일 때가 있다.

영화도 보았는데 영화는 정말 대단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마약한 느낌’이랄까?

몽환적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라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영화를 다 본 이후에 그 잔상과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서 일상으로 되돌아오기 힘들었다.


✅본토론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정리 불가함.


✅핵심 메시지 또는 한 줄 총평

✔새로운 인생에 시동을 걸기 위한 사유의 힘! 깨달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뭘 해야만 했을까?

✔완전한 삶을 위한 사소함의 강력한 힘!

✔단조로운 일상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관심을 갖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되겠다.

✔상상력은 우리의 마지막 성소다.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

✔터널은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대단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이 결정된는 순간은 사소한 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늘 책과 토론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 및 마무리 발언

✔이 책을 줌바 운동하러 갈 때도 들고 가서 읽을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빠져 들었으며 이 책을 읽고 리스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를 리스본까지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엄청난 파장을 준 책이며, 나의 열정을 한껏 고조시켜준 책이다.

다들 힘들게 읽으셨다고 했는데 나는 너무 빨려들어가듯 빠르게 읽어내서 신기할 지경이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너무 많아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읽고 싶고, 영화는 아직 안봤는데 영화도 꼭 보고 싶다.


✔코로나라서 그간 어디 놀러도 못가고 여행도 못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역시 여행은 꼭 필요하다고 느끼며 어디든 가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디든 낯선 어딘가에 가서 낯선 경험을 하는 게 인간에게 참 중요하구나 싶었다. 현실을 살짝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

나는 사실 포르투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영화도 보고 나니까 포르투갈이 궁금해졌고 꼭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 ‘제레미 아이언스’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영화 속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도 좋았지만 오늘 북토크 서두에 했던 ‘감정목록표’로 나눈 ‘근황토크’가 너무 좋았다.

내가 그간 힘들었던 생활 속 에피소드를 꺼내 놓으니, 책친구님들이 귀기울여 들어주고 ‘아, 그랬겠다! 정말 그랬겠네!’ 하며 공감해 주는데, 뭔가 맺혔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고 다쳤던 마음이 이제 하나도 안힘들게 다 치료가 된 듯 홀가분해지고 참 좋았다.


✔책도 좋았지만,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다. 캐스팅이 너무 잘되어 푹빠져 들었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던 참 좋은 영화였다. 영화 대사 중에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대부분 사소한 순간이다.’, ‘소중한 일상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라는 말들이 강렬하게 남았다.

책과 영화 둘 다 접한다면 훨씬 좋으리라고 생각되어 추천한다.


✔내 카톡 프로필에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라는 말을 써 놓기도 했었다.

영화 대사 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고 깃털처럼 자유로웠으며 불확실했던 그때! 단지 꿈같은 바람일까? 인생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지금 내 모습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하길 원한다면....’이라는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이 대사에서 왜 그렇게 오열을 했었는지, 내 페북에 몇 년 전에 올려놓았던 내용을 끄집어내어 다시 읽어보면서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겨보았다.

사람은 참 다양하고 개성들도 강한데, 우리 북토크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아 좋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여기에까지 이르렀지만, 과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불안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10년 전, 20년 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올라오기도 하니까 소설 속 ‘프라두’의 고뇌가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고뇌가 일의 성취나 돈을 버는 것에 있는게 아닌 것을 알겠다.

예를 들면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수영을 배우고 싶다.’라든가 하는 일상 속 작은 성취들을 해보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삶의 고매하고 고상한 성취도 물론 중요하나,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내 일상 속의 행복인 듯하다. 이 책을 통해 가까이 있는 작고 사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기회가 되는대로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들을 하나씩 채워 나가보자 싶어서 ‘버킷 리스트’를 써보았다. 일상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꼽아보고 있다. 어쨌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이 책을 완독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시간들의 결합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휘리릭 읽어내기에는 너무 깊은 의미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에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꽤 장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숨겨놓고 여유로운 시간에 하나씩 꺼내 보며 흡족해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지극히 철학적인 문장들의 향연에 푹 빠져서 나도 모르게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했었고, 삶과 인간의 근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서 어느덧 스스로 인간으로서 품격을 갖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감정이 참 행복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소개해준 책친구님께 감사한 마음이며, 지극히 철학적인 이 책으로 북토크도 나눌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혹시 완독을 못한 회원님들이 계시다면 기회 될 때 꼭 완독하시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이 책은 완벽한 책이었고 ‘절대소장각’이다.

오늘도 함께 만나 즐거운 책수다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고, 함께 책읽고 책수다 나눌 수 있는 책친구님들이 있어서 참 좋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리뷰】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몇년 전 도서관 토론 모임에서 다룬 여러 책 가운데에서 ‘페터 비에리(Peter Bieri)’의 ‘교양수업’을 만났다. 그 책의 제목에서 떠오르는 ‘교양 있는 사람’이란 ‘많이 배운자’와는 구별되는 사람이었다. 전반적인 내용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특정한 방식에 대해 다룬 책이었는데, 저자는 삶의 방향성과 깨어 있는 의식, 내적인 성숙과 도덕적 감수성, 진정한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조건 등에 관해 논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가치로운 교양의 개념에 눈뜰 수 있도록 다각도로 일깨워주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보통은 포스트 잇을 붙이고 밑줄을 쳐가며 세밀하고 꼼꼼하게 분석적으로 독서를 하는 편인데, 그 책을 읽을 당시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체크해야 했던지, 그 두께도 얼마 되지 않게 적은 분량이었던 『교양수업』은 온통 밑줄 투성이라 완독후 책이 거의 너덜너덜해져 보일 지경이었다. 그때 그 유명한 독일의 저명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의 존재감이 강렬하게 각인되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와 철학적인 사유의 깊이, 그리고 언어적 감수성이 매우 폭넓고 심도 있는 학자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책모임에 새로 합류하신 신입회원님으로부터 ‘함께읽기’ 할 책을 추천받게 되었는데, 그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4월의 북토크 책으로 결정한 이후에 책을 찾아보니, ‘교양수업’의 ‘페터 비에리(Peter Bieri)’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라는 필명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장편소설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04년 첫 출간 이래로 독일에서만 2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해를 거듭하며 연속 랭킹을 고수할 정도로 발간 직후로부터 지속적으로 그 유명세를 떨쳤던 책이었다. 그런데다가 이 책은 세계 각국 30여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베를린자유대학의 언어철학 교수인 ‘페터 비에리(Peter Bieri)’를 세계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품이 되어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이름을 확고부동한 인기 작가로 정착하게 만들어 주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던진 후, 인간의 삶에 대한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과 그에 따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전반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김나지움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곧 60을 바라보는 경륜의 나이에 놓여 있는 그의 삶은 마치 ‘박물관의 조형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로 출근을 하던 길에 우연히 한 낯선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행위를 하는 그녀의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면서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자살행위를 막는 장면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 위태로운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모국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으며, 그녀는 ‘포르투게스’라고 대답했고, ‘그레고리우스’는 그 독특한 단어에서 커다란 울림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우연히 입수하게 된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인이 쓴 자서전적 서사인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손에 들고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단조롭게 반복되던 삶에서 돌연 이탈하여 전혀 다른 낯선 방식을 선택하여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되는 행위로써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나눈 짧은 대화에서부터, 저자가 ‘언어’에 대해 방점을 찍고 집필을 하였겠구나 하는 짐작이 들 정도로 이상하게도 ‘언어’가 이 소설에서 중심적인 메타포로 작용하게 될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에게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하며 상상도 못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인지에 대해 독자들이 스스로 인식하게 만들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언어’를 다루는 학자였고, 출근길에 우연히 만나 목숨을 구해준 낯선 여자에게 했던 첫 질문이 ‘언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으며, 때마침 손에 넣게 된 책이 그녀의 모국어였던 포르투갈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었다. 그리고 『언어의 연금술사』를 손에 들고 그 책의 저자인 포르투갈인의 행적을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 책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가 언어철학 교수인 ‘페터 비에리(Peter Bieri)’와 동일 인물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 저자는 왜 이렇듯 ‘언어’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서 ‘문학’ 즉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인간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내려고 노력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깊이 생각할수록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은 ‘인간’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중요성이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수많은 특징들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니 그에 따른 연구 논문이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나왔고, 현재도 앞으로도 연구는 진행중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생명체들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고, 그래서 지혜롭고 합리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할 수 있을텐데, 즉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그 표현이 고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가 생겨나게 되었고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이유이자,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인 것이다. 언어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에 인간의 상상력을 보탤 수 있게 도와주었고, 눈에 보이는 현상 그 너머의 어딘가까지 내다보거나, 실존하지 않는 어떤 것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 본 후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고 창조해 내는 창의력까지 불러일으켰다.

또한 ‘언어’는 ‘문자’로 정립되어 기록을 남기는 수단이 되어 주었으니, 인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기에 후대에까지 전승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하면서 그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었고, 그것은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왔다. 이렇듯 인간이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 크게 구별되게 자연을 초월하고 현실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언어’를 사용하는 고등동물로서 기록의 역사를 이어왔다는 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성에 관하여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기 위해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로 하여금 ‘언어’를 다루는 학자로 역할을 주어 소설 속에 등장시켰다는 것을 책을 읽어 나가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수많은 단어들과 서로 다른 각각의 언어를 파고드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 자체가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간이었다. 그는 스위스 베른에 살고 있는 60이 코앞인 나이의 남성이었으며, ‘언어’를 활용하여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늘 고심하며 살아왔다. 30년 이상을 고대언어를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고전문학교사’로서 그리스어, 라티어, 헤브라이어에 능통하고 ‘파피루스’라는 별명을 꼬리표로 붙이고 다닐 만큼 언어에 몰입한 학자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심취해 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비오는 어느날 출근길에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한 여자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낯선 여자의 ‘포르투게스’라는 말에 이끌리면서, 그녀의 모국어가 그에게는 생소한 언어라는 것으로부터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기존의 삶에 대해 ‘낯설게 보기’를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지점이 우리 모두의 삶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이 그저 그렇게 유유히 흘러가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날 문득 생경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 내가 과연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뜬금없이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타성에 젖어 그냥 반복하는 일상일 뿐, 나의 의지로 내 삶을 잘 살고 있지 못한 채 뭔가가 빠진 듯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들면서 문득 허무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는 그런 낯선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고, 여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라타게 된 것이었다. 틀에 박힌 삶의 수순과 정해진 구조 안에서 안일하게 머물기만 했던 그간의 삶을 탈피하여 낯선 언어를 도구화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삶의 색다른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낯선 언어의 생소한 단어들은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시선을 옮겨가는 기능을 하면서, 때마침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의 저자인 리스본의 의사 ‘프라두’라는 인물이 살았던 삶의 여정을 추적해 나가게 되었다. 어쩌면 일탈과 모험일 수도 있을 낯선 변화를 시도하면서 ‘아마데우데 프라두’라는 이미 고인이 된 타인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달랐던 고인의 삶에서 커다란 울림을 받는다. 그 낯선 여행의 결과는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된 인식과 새로운 삶의 형태로 ‘그레고리우스’에게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사로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 도착해서 따라간 낯선 동선은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인 ‘프라두’의 흔적이었다. 53세의 나이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던 ‘프라두’는 아버지가 법조인(판사)이었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었고, 실력 있는 의사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평탄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백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했던 비밀경찰 ‘멩지스’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사건 이후로 만인의 비난을 받으며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남몰래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다. 이후로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저항운동의 끝이 되었던 사건인 ‘카네이션 혁명’ 바로 직전에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본다.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프라두’가 서술한 수많은 글들을 마치 자신을 향해 쓴 언어의 향연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불현듯 올라온 어떤 확신을 갖고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는 일탈을 난생 처음으로 감행했던 것과 같이, ‘프라두’ 또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의사라는 신분을 벗어던지고 저항운동에 투신함으로써 거칠고 험한 인생을 택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인생의 방향성을 스스로 알고 제대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 소설의 저자인 ‘파스칼 메르시어’는 독자들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종적을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중간중간 소소한 에피소드도 펼쳐졌는데, 그 부분들 또한 예사롭게 넘길 수 없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한 사건사고를 당하면서 쓰고 있던 안경을 깨뜨리게 된 ‘그레고리우스’가 오랜 기간 썼던 두꺼운 근시 안경을 최신식의 세련되고 가벼운 안경으로 바꾸고, 입고 있던 낡은 재킷을 새로운 양복으로 바꾸어 입는다. 그간 낯익고 편안한 것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새롭고 발전된 것을 받아들이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진열장 거울에 비춰보고 거의 분노에 가까운 충격을 느끼는 이 장면에는 함축된 메시지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이 장면이 ‘그레고리우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느꼈다. 이미 죽은 고대의 언어와 과거의 지식들을 끌어안고 ‘파피루스’라는 별명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정체된 삶에 고착되어 변화를 두려워하며 새로운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그의 삶이, 다른 삶으로 얼마든지 전환하고 새롭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확실히 보장되고 앞날이 예상되어 안정은 되었지만 지루하고 권태로운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작가도 주인공도 독자도 모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은 불확실해서 불안정하기는 하나, 반면에 살아 숨쉬는 생동감과 생생한 감정들이 넘나들 수 있으니 그것을 덮어놓고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반복되는 메시지 중 가장 강렬하게 잔상이 남는 것이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문구였다. 우리 모두가 삶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나머지 부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를 생각해 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극대화되었다.

누구나 현실적으로 벗어던지기 힘든 저마다의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짊어진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도 하고 책임감과 관성이 만만치는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처럼 어느날 갑자기 모두 다 내려놓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 용기를 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소설이라서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극단적인 서사를 끌어와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할 수 있었을 거라고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 맥락을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본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여행’의 기능에 대해 한층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익숙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가끔씩 떠나는 여행에서 평상시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장소와 새로운 풍광 생경한 언어를 접하며 신선한 감각들에 눈을 뜨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평상시에 억누르고 묻어두는 감정들을 좀 더 자유롭게 끌어내어, 이 책의 저자가 반복해서 말한 바로 그 ‘나머지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채워나가고자 애쓰는 몸부림이 바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가 꿈결같이 아름다운 삶을 갈구하고 추구하지만 좋고 예쁜 것만을 쫓아 아름답게만 살 수도 없고, 상황에 떠밀리다 보면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 수도 없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현실에 족쇄 채워진 노예처럼 주어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기도 한다. 삶의 다양한 모습들 중에서 어떤 것의 경중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모든 것이 온전히 우리의 삶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던지려는 수많은 메시지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꼽아보려고 노력하며 책을 읽었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나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에는 자신이 쥐고 있는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결정권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 매몰되지 말고 그 너머의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 늘 깨어 있으면서 새로움에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의미롭고 한층 더 인간적인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

또한 내가 직접 경험하는 삶과, 보고 듣고 배우면서 간접적으로 접하며 깨닫게 되는 진리를 조화롭게 균형 잡아 나갈 때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채울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도 있었다.


이 책은 우리 책모임 신입 회원님의 추천으로 만나게 된 책이었는데, 출간된지 꽤 시간이 지난 상황이라 현재는 절판된 책을 나는 중고서점에서 운 좋게 구했다. 총 2권의 구성으로 분량의 압박이 큰 데다가, 책 속에 담겨 있는 철학적 메시지가 워낙 깊어서 한 챕터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느라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는 없었기에 가독성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읽는데 진도가 빨리 나가지지가 않아서 완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절대로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거나 내던져버릴 수는 없고 힘들어도 끝까지 붙들고 페이지를 넘겨 나갈 수 밖에 없었으며,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서 결국에 완독에 이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대단한 소설이었다. 여타의 고전을 읽을때 느꼈던 바와 같이 읽기는 참 힘들었으나 완독하고 나니 뭔가 충만해지고 뿌듯해지는 책이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난생 처음으로 일탈을 감행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통찰을 하게 되는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와, 그가 낯선 도시 리스본에서 그 발자취를 찾아 여정을 이어가게 만들었던 치열한 삶의 주인공 ‘프라두’라는 두 사람의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망라하여 수준 높은 지적인 사유를 경험하게 된 4월 독서의 시간이 나는 많이 행복했다. 고난이도의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 챕터 읽을 때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소화해 내려고 곱씹어야 할 만큼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관념적인 사유의 끝장인 책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서에 가까웠다. 읽는 내내 인간적으로 고매해지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뭔가 뿌듯하고 흡족해졌다. 특히 파란만장했던 ‘프라두’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다단하고 녹록지 않은 여정인지를 다시금 상기하게 되어 여러가지 상념으로 생각이 참 많아지기도 했다.

지극히 섬세한 문체와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매우 뛰어난 이 책은 ‘유럽 문학의 현대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완독하면서 몇 년 전 ‘페터 비에리’의 철학서 ‘교양수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완전 반해서, 철학자 ‘페터 비에리’든,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어’든, 그는 역시 대단한 철학자이자 훌륭한 작가라는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이 원죄처럼 장착하고 있는 삶의 근원적인 의문들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끌어주는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좋은 영감을 얻어 자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올라왔다.


일상성과 항상성, 타고난 성정과 개인의 개별적 특성, 젊은날의 번민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진로선택에 대한 주관, 부모가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과 자식이 부모로부터 갖게 되는 부담감, 시대와 역사의 요구, 인간적인 번민과 사회적 역할의 균형점,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기주도적 용기, 철학적 사유와 언어의 품격...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유의미한 삶의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끝도 없이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생인 아들아이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기도 했는데, 아들이 실제 엄마 말을 새겨듣고 읽어보게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책과 영화는 독자나 관객들에게 간접경험을 하게 하고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중심메시지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준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켜 나가면서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실패할 것을 미리 예단하여 시도도 해 보지 않고 두려움에 포기해 버리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과 저력을 믿고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일단 해 보는 실천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또한 무엇이든 용기 내어 시도하는 일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최대한 동원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매일 매일이 똑같을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은 평화롭고 고요하지만 너무도 평범하고,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 불현듯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라탄 ‘그레고리우스’의 행동이 즉흥적인 것인지, 결단력 있는 것인지 솔직히 헷갈리기도 한다. 주인공의 모습과 극적인 소설의 전개에서 지극히 ‘픽션’스러운 우연의 연속이라는 비판적인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어쨌든 실패할 것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용기를 낸 그 순간, 상상으로만 꿈꾸던 것들이 현실적인 삶으로 다가와, 지금까지의 삶에 변화를 주고 또다른 삶을 살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소설이었다.

또한 이 소설은 너무도 익숙해진 일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거나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도 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참 희망적인 책이라고 생각되었다. 자기주도적인 의지도 없이 주어진 일을 관성적으로 일평생 반복했던 고단한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서, 내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조해 보고 방향을 틀어보기도 하며 휴식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권장하는 듯한 작가의 메시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때로는 가슴 뛰는 일탈이 삶의 기쁨으로 다가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다른 길로 안내해 주는 새로운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기시켜 주었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워낙 유명세를 떨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원작으로 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가 2014년에 개봉된 바 있었고 그 영화 또한 전세계적인 히트작이 되었다고 한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며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내 삶 속에서 열려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찾아 떠나는 치열한 경험을 하고 싶게끔 만들어 준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 영화로 남았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원작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을 할 만큼 실력파로 인정받은 세계적인 거장 ‘빌 어거스트’ 감독의 영화로 탄생되었던 것인데, 이 영화는 제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중년을 넘어서 노년으로 치닫는 연령대에서 어떻게 그다지도 매력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고 최고로 멋질 수가 있는지 놀라움을 주면서, 중후하고 지적인 분위기로는 동시대 동년배 배우들 중 단연 전무후무하게 최고인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배우이다. 그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고전문학 교사 ‘그레고리우스’를 연기하였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여배우 ‘멜라니 로랑’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스테파니아’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의 최애 영화로 등극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명작으로 남았다.

그러나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그대로 표현해내기에는 영화 특유의 축약과 각색의 한계가 많았기에,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보면 다소 실망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비평가들의 조언을 간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런 만큼 『리스본행 야간열차』 원작이 지닌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삶의 통찰이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며 의식적으로 깨어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국적, 인종, 부모, 신분 등 태어나 보니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은 내가 능동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어찌어찌 잘 살아내어 원하는 성취를 이루고 현재에 이르렀으나, 어느날 문득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처럼 살 수도 있고, 여태껏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결정권과 선택권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그 죽음이 당장, 아니면 내일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에 대해 낯설게 보며 깨어 있는 의식은, 현재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바깥세상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계획이 되었던 여행이든,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게 되는 여행이든, 여행은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현실과 잠시 거리두기를 하고 낯선 세상에 나를 놓아 봄으로써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나 자신을 다른 위치로 옮겨봄으로써, 타성에 젖은 무한반복을 강요하는 이 세상과 매너리즘에 빠진 나 자신에 대해 ‘낯설게 보기’를 하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듯하다.

때로는 타인을 통해 내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손에 들고 어떤 사람의 치열했던 삶의 경험을 함께 쫓아가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마치 어느 날 문득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나버린 여행과도 같았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완독한 후에는 책을 내려 놓고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우리가 이 책 속의 주인공처럼 우연히 일탈하게 된다 하여도 반복되는 현실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닐었던 삶의 궤적들이 더욱더 특별하고 의미롭게 느껴졌던 듯하다.


이 책은 너무도 철학적이고 지극히 관념적이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되새기는 시간들을 병행해야 했기에 꽤 긴 시간을 투자해 힘들게 읽었다. 읽는 내내 소설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어떤 면에서는 성서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의 긴 독백과도 같은 철학적 문장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깊은 사색에 잠기는 순간이 많았고, 나도 모르게 삶과 인간의 근원에 대해 끝도 없이 파고 들어가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매해지고 품격있는 인간의 경지에 이르는 듯한 우아함의 극치를 맛보기도 했다.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들을 되읽으며 버겁다 느끼면서도 좀 더 잘 이해해보려고 저절로 노력하게 될 만큼 너무도 훌륭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매우 행복했다. 5점 만점에 꾹꾹 눌러 담은 5점을 다 퍼주고도 모자랄 만큼 홀릭하게 된 이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책친구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 혼자 골라 읽는 책들은 아무래도 선호도와 경향성이 치우칠 때가 많은데, 이렇게 책친구님들과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니 다양한 책들을 만나게 되고 그 가운데에서 보석 같은 책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4월의 ‘함께읽기’ 책으로 만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노안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좋은 책을 ‘함께읽기’ 하며 책 속에서 삶의 길을 찾는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의욕을 새삼스럽게 불러 일으켜준 매우 특별한 책으로 남았다.


[의미로운 구절]      

<1권>             

p5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저 바다로 흘러드는 강과 같다. (호르헤 만리케)


p7

우린 모두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 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미셸 에켐 드 몽테뉴, 『수상록』제2권I)


p7

우린 모두 여럿, 자기 자신의 과잉. 그러므로 주변을 경멸할 때의 어떤 사람은 주변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주변 때문에 괴로워할 때의 그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우리 존재라는 넓은 식민지 안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1932년 12월 30일에 쓴 글)


p42

뚜렷하지 않은 심연. 인간 행위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아니면 인간은 자신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동과 완벽하게 일치할까?


p51

우리 모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존경하지요. 그의  『명상록』 가운데 한 부분을 기억하실 겁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 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p71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105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많이 겪으면 늘 뭔가 언짢습니다.


p122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마다 독서를 하곤 했다.


p128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는, 스스로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바깥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더욱 커진다.

.......

이들을 특정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기 내부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기대를 가지고 보는 것이다.

.......

우리는 편견 없이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의 외적인 윤곽에조차 다다르지 못한다.


p130

낯선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이 낯선 시선을 자기 안에서 만들고, 그런 시선에서 나온 자기 모습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다. 이제 막 만난 이방인처럼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p149

지속성과 신뢰감과 친밀한 이해심을 보이는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속임수는 아닐까? 매순간 견딜 수 없으므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이 덧없음을 은폐하고 없애려는 시도....


p268

두 번째로 오는 느낌은 처음과 같지 않다. 그것은 반복을 의식함으로써 퇴색된다. 너무 자주 오고 오래 지속되는 감정은 우리를 지치고 싫증나게 한다. 불멸하는 우리의 영혼 속에서 이런 것들이 결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아는 데서 오는 어머어마한 권태감과 절규하는 절망감이 자랄 것이다.


p293

그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인간이에요.


p323

현재 자기 인생에 대한 의식 자체가 불행이라면 누구나 평생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지. 반대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인생을 위한 조건이야.


p324

불안은 이제 앞으로 올 일, 일어날 일에 대해 갖는 감정 아닌가?


p326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p340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p347

신의가 중요하다. 신의란 감정이 아니고 의지요 결정이며, 영혼의 견해표명이다. 우연한 만남과 감정을 필연으로 바꾸는 그 무엇이고, 영혼의 숨결이다.


p355

난 사람들이 말하는 성숙이란 걸 낙관주의나 완벽한 권태라고 생각하오.


p361

익숙한 삶과 결별하려는 인간에게는 대개 이유가 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페터비에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그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p364

무엇보다 자기 인식, 즉 깨달음이 절대적이죠.....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 거요. 오직 우리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고,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p365

지적인 사람일수록 그리고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진실한 욕구를 숨기는 데 능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 대해 특별히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사고가 정제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보다 자유롭고 쉽게 자기 길을 찾아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p366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인 의무감에서 자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삶을 살아가죠.... 그렇지만 의무감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허덕이면서 다른 사람의 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자유로워지려면 상황 전체를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p367

우리 인간의 불행은 대개 감정과 판타지를 언어로 잘 다루지 못하거나 그것들을 말로 표현할 용기를 갖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2권>

p19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잊을 수 있을까?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의 드라마를 상연하는 무대 역할을 한다고 해도? 망각이 아니었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p27

자신의 내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이 경우 우리는 현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과거로 깊숙이 들어간다. 이런 일은 깊은 감각, 다시 말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라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 감각은 시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p30

‘지금’과 ‘여기’가 본질적이라는 확신으로 이것에 집중하는 행위는 오류이며, 또한 불합리한 폭력이다. 중요한 것은 확실하고 느긋하게, 알맞은 유머와 멜랑콜리로 ‘우리’라는 시간과 공간상의 내적인 경치 속에서 움직이는 일이다.


p38

인생에서 싸우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기 자신과 싸울 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p47

난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천박함과 경솔함이라는 치명적인 독에 대항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하니까.


p51

저는 갈기갈기 찍을 것만 같은 모순된 감정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일이리라.’


p52

놓치고 언급하지 않은 것, 표현이 사물의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겁이 납니다. 그럴 경우 힘과 두려움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p64

욕망과 만족, 편안함, 프라두는 이 모두가 헛된 것들이라고 했다. 제일 허무한 건 욕망이고 그다음이 만족이며, 누군가에게서 보호를 받는다는 편안한 느낌도 언젠가는 결국 부서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감정의 저편에 있는, 영혼의 견해 표명인 신의가 중요하다고 했다. 영혼의 낮은 숨결.


p66

고통을 당할 때 말의 힘이란 금방 고갈되고 마는 거니까.


p83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로만 자기를 결정합니다.


p119

현재를 산다는 것, 이 말은 옳고 훌륭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p150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외로움의 본질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말하는 그게 도대체 뭐지?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아.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그러니 그게 뭘까?


p162

멜랑콜리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깨지기 쉬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이 거기에 들어 있어.’

멜랑콜리가 병적인 우울증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p166

‘경멸에서 오는 외로움’

우리가 타인의 존경과 관심에 의지하고, 그것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p174

사람의 마음이란, 틀에 박히고 무미건조한 논리가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p175

‘사실 사유는 둘째야.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시(詩)지. 시적인 사유와 사유하는 시가 존재하는 곳은 낙원일 거야.’ 나중에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건 아마 낙원으로 향하는 길을 내려는 시도였을거요.


p179

“한계가 없는 솔직함이란 불가능한 거요.”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이요. 침묵해야 하기 때문에 고독한 경우도 있는 법이오.”


p194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우리는 낙인찍힌 글을 찾고 해석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면서도, 우리가 그걸 정말 이해했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어.


p206

‘타인은 너의 법정이다.’


p221~222

배신적인 언어. 자기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 대해 또는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해 말을 할 때 우리는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열어 보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이게 우리의 영혼을 잠깐 엿보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p227

스스로의 편에 서는 것도 존엄에 속한다고, 그래야 갈릴레오나 루터처럼 공개적인 혹평을 품위 있게 극복할 수 있다고.


p228

“복종을 요구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야. 그러니까 성서에 나오듯이, 자신을 하느님과 예수의 노예로 생각해야 하는건 용서받은게 아니지. 노예야! 거기 그렇게 쓰여 있어!”


p228

‘존엄하게 죽는 것이란 그게 종말임을 인정하는 거야. 불멸에 관한 온갖 유치함을 극복하는 것이지.’


p236

난 터널을 좋아한다. 터널은 희망의 상징이다. 지금이 밤만 아니라면 이제 곧 터널 밖으로 나가 밝아지리라는 희망...


p246

분노라는 들끓는 독. 타인 때문에-그들의 뻔뻔함과 부당함,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우리가 화를 낸다면 우리는 그들의 권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자란다.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부드럽고 우아하며 평화로운 감정들을 파괴하고 우리에게서 잠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p286

“그러니까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로군. 사물은 말로 표현되고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거군.”

“말은 시(詩)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비을 비출 수가 있어. 변화하는 말의 빛 속에서는 같은 사물도 아주 다르게 보이지.”


p287

독재적인 친근함. 우리는 친근함 속에서 서로 뒤엉켜 있다. 보이지 않는 끈들은 ‘자유롭게 하는 사슬’이다. 이 뒤엉킴은 독재적이라, 독점을 요구한다. 나눔은 배반이다.


p292

인생이 불완전한 상태로, 토르소로 머물 것이라는 공포. 원하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자각.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결국 이렇게 정의했다. 그러난 나는, 엉젠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삶의 불완전함과 부조화를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겠냐고 물었다.


p296

고통이나 외로움, 죽음처럼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장엄함, 행복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여전히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개인적인 삶의 시(詩)입니다. 시가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강할까요?


p320

열린 시선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게으른 존재다. 일상적인 대지에서 호기심이란 희귀한 사치일 뿐.... 힘차게 발을 딛고 서서 매 순간 솔직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예술일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여야 한다. 열린 미래의 모차르트.


p321

정말 솔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하오.


p326

“한계가 없는 솔직함이란 불가능한 거요.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이오. 침묵해야 하기 때문에 고독한 경우도 있는 법이오.”


p334

인생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p336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p337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343

아무리 사소한 일상이라도 인생은 이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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