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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Sep 26. 2023

[책리뷰]-『연을 쫓는 아이』

* 사랑과 신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독서리뷰

        -할레드 호세이니 作     


*부제 : 사랑과 신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 당신이 거짓말을 하면 당신은 진실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 할레드 호세이니      


[ 『연을 쫓는 아이』 독서리뷰 ]


‘자신과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법’

 『연을 쫓는 아이』 를 읽고 난 후 큰 감동이 먹먹함으로 밀려들면서 여러가지 메시지들이 뇌리에서 맴돌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문구였다.


누구나 삶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의 양심과 도덕성에 가책이 없게끔 떳떳한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평생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남모르는 고통 속에서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이 한 줄의 메시지는 바로 ‘정의와 신의’에 관한 압축적인 시사이면서 우리 모두에게 울리는 경종 같았다.    

 

이 세상에는 꼭 성문법이 아니더라도 불문법, 관습법, 문화와 보편적인 상식, 무엇보다도 인간의 지각과 양심에 의해 옳고 그름과 선악의 기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동물이 아닌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스스로 그것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오판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양심의 가책을 애써 외면하게 된다면, 그 후회와 자책이 일평생 마음의 부채로 남아 번민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삶을 아프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말고 상황을 직시하여 자신과 직면하면서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낼 수 있을 때, 세상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그럼으로써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떳떳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싹트는 우정과 사랑, 부끄럽고 잔혹한 배신, 잘못된 판단으로 나쁘게 결정해 버린 어리석은 선택과 돌이키기에는 너무 지체되어 버린 때늦은 후회, 일평생을 통해 괴로워했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구하는 용서와 속죄의 마음, 그 뒤에 기적적으로 되돌아오는 사죄의 기회와 숭고한 구원에 관하여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풀어나간 장편소설이었다. 특히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물리적/정서적 거리감이 있는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인 두 소년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였던 인생의 고통과 희망에 대하여 격정적인 스토리로 엮어낸,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사였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는 책모임 회원님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으로 원작의 유명세는 물론이거니와, 영화화되어 흥행에 성공했을 정도로 익히 알려진 작품이다 보니 그 존재감은 일찌감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딱히 접할 기회가 없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고, 어렴풋하게나마 두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소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서토론의 함께읽기 지정책으로 결정이 되고 보니, 서둘러 책을 구입해 좀 더 집중하여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 반가웠다.

처음에는 완독에 의의를 두며 가볍게 읽었고, 책모임 날짜가 정해진 후에는 재차 읽었다. 그때는 책수다 주제와 토론 논제 등을 발췌하기 위해 인상적인 부분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인덱싱도 해가며 좀 더 자세하게 읽게 되었다. 그랬던 만큼 이 책을 더욱 심층적으로 읽어볼 수가 있었는데, 작가의 마음을 깊게 이해하면서, 책 속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의 정서 속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느낌으로, 나만의 특별한 공감과 감동이 벅차오르는 의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책모임의 함께읽기 지정책으로 처음 만나서, 약간의 의무감까지 보태어져 자세히 읽게 되고, 독서토론을 표방한 책수다와 책리뷰 쓰기 등의 독후활동까지 하게 되는 작품은 좀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 그 책은 개인적으로 더욱 큰 의미로 남게 된다. 이런 과정 중에서도 상당히 큰 감동을 받게 된 이 책은 자연스럽게 ‘내 인생책’ 리스트 상단에 올리며,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되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가 쓴 영어 소설로는 최초이기도 하다는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대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첫 데뷔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올 만큼 완벽하고 웅장한 장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필력이라니…

그의 작가로서의 유명세와 명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이 책을 읽어본 독자로서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 창작자를 경외히며 진정한 실력자를 본능적인 감각으로 알아본다고 자평하는 나는 그의 타고난 천재성읗 잘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호세이니’가 지닌 타고난 작가적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이민자’라는 독특한 이력으로부터 운명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슬픔과 혼란, 고국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등을 예술적으로 꽃피우는 문학장르인 ’이민자 문학‘, 즉 ’디아스포라 문학‘의 대표격인 작가의 기본정서에 관하여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 세계가 경악하며 걱정스러워하는 자신의 조국이 처한 혼란한 시대적 아픔과 국가적 비극, 믿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본국민들에 대해 느끼는 동족으로서 피할 수 없는 부채의식과 크나큰 슬픔을 문학이라는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성숙한 작가적 감수성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게다가 이렇듯 대서사를 쓸 수 있는 그의 글쓰기 달란트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교차하기도 하였다.      


『연을 쫓는 아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악명이 높은  탈레반의 분쟁지역으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시대적 불행이 연속되면서 나라가 아무리 시끄럽고 불안정할지라도, 그곳도 인간이 사는 곳이니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속되어 나가는 법이다.

이 소설은 상류층의 도련님인 주인공 ‘아미르’를 중심으로 하여 운명과도 같은 친구이자 동생인 하인 ‘하산’과의 우정 어린 기쁨과 슬픔이 그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펼쳐지는 서사가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어린 소년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포함하여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단순히 ‘성장소설’이라고 일차원적인 분류를 하기에는 작품이 담고 있는 거대 담론들이 너무도 웅장하였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내포하고 있는 삶의 철학들도 상당히 방대하였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장편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고통스러울 만큼 아프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서사였고, 선과 악에 관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깨닫게 만들었다.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느끼는 갈등의 다중적인 심리, 삶 속의 극심한 고통, 운명적으로 수렴해야 하는 죄와 벌,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저지른 뼈아픈 과오에 대한 돌이킬 수 없게 뒤늦은 후회,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고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청하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치유되고 복원되는 진정한 인간성의 가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만들면서, 무의식중에 자각하게 되는 깨우침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훌륭한 소설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완독한 후 그 감동이 너무 크고 가슴이 먹먹해서 한참을 이 소설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책의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의 줄거리를 나름대로 요약해 보는 과정에서,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하고, 그 지점에서 내가 특별히 주목한 포인트와 그것과 관련해 강렬하게 떠오른 감상을 풀어나가고자 하였다.

떠오르는 단상을 붙잡아 여과하지 않고 마구 써댄 초고를 축약하는 작업을 재차 하면서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하고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작가의 메시지와 창작 의도를 통합적으로 헤아리며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더 좋았다.

이렇듯 처음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새로운 단상들이, 다시 쓰고 고쳐 쓰는 글쓰기의 매력이라는 것을 이 장편소설의 리뷰를 쓰면서 덤으로 깨달았다.

나에게는 이래저래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만큼 의미 충만한 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였다.


1.

이 소설은 신분과 성향이 극명하게 다른 아프가니스탄의 두 소년 ‘아미르’와 ‘하산’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로 인해 경제적으로 부족할 것 없이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 ‘아미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하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다. ‘아미르’는 어린 날부터 어딘가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등 내향적 성향이었다. 그에 비해 아버지 ‘바바’는 남자는 모름지기 용맹하고 강하며 운동도 잘하고 활동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남성상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정적이고 내성적인 ‘아미르’를 다소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바바’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엄하고 절제된 사랑을 주는 편이었다.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공허했던 ‘아미르’의 애정결핍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 사람은 착하고 충직한 하인인 ‘알리’와 그의 아들인 또래 동생 ‘하산’이었다.     


‘아미르’와 ‘하산’은 형제처럼 자라지만, 주인과 하인이라는 서열관계과 명확하였고 사회적으로 신분차가 컸기 때문에, 친구나 형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고 주종의 관계로 설정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이미 친구나 형제와 못지않게 서로에게 친근한 유대감과 깊은 사랑을 갖고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관계였다.     

똑똑하고 지적이지만 소심하고 꽁한 면이 있는 ‘아미르’는 ‘하산’에 대한 신뢰와 의지하는 마음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도련님’의 위치를 애써 상기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데다가 성정이 착한 ‘하산’은 ‘도련님’이자 ‘형’인 ‘아미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것이든 기꺼이 하며 즐겁게 살아간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인간이 계급을 나눈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명예로든 뭐로든, 특권을 갖는 사회 지배층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 있겠지만, 피지배층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모든 인간이 존엄할까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숭고하고 존엄한 존재임이 분명한 것인데, 나라마다 사회마다 그들의 관습과 사회규율에 따라 계층을 나누어 선을 그어 놓고 사람을 차별하며 살고 있다. 꼭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가 아주 먼 옛날의 일들을 들추어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도 분명 계층과 계급 간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표면상 평등사회라 주창하더라도 계층과 계급을 구별하는 보이지 않는 선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또래 소년들도 서로 다른 계급의 신분을 갖고 있었고,  ‘도련님’과 ‘하인의 아들’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간다. 이 지점이 바로 비극의 시작점이 된 것 같아서, 인간이 그어 놓은 계급과 계층의 선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사회의 이율배반적인 그 모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함께 살아가는데, 사회에서 계급과 계층이 인간의 존재조건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람과 세상을 접하고 바라보는 관점과 존재방식에 차이가 생긴다. 인종, 민족, 종교, 경제력, 학력, 직업 등에 따라 사회의 계층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을 그룹으로 분류하여 상대적인 위치를 부여하고, 그렇게 주어진 신분과 계층의 규정 하에서 복종하거나 득세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식이 결코 아닐 것이다.

사회의 불안정성과 복잡성이 크면 클수록 계급과 계층화가 더 끈질기게 존재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합리적이거나 정상적인 판단 하에서는 유지될 수 없는 불평등한 조건인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아프가니스탄 또한 정치적으로 혼란한 국가의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이슬람의 종교문화까지 보태어져서 좀 더 극명한 계급화, 계층화가 존속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꼭 봉건국가였던 시절이나 독특한 문화를 가진 후진국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고 주창하는 현대사회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계급화, 계층화가 분명 존재하고 있고, 그 유리천장은 너무도 교묘하고 견고하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이며, 인간다움과 인간 존재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공동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벽돌 하나라도 얹을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2.

‘아미르’와 ‘하산’이 우정과 사랑을 쌓으며 즐겁게 살아가던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의 명절 같은 기념일에 겨울마다 열리는 큰 행사인 ‘연싸움 대회’에 두 소년이 참가하게 된다. 대회에서 우승하여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를 위해 ‘하산’은 온 힘을 다하여 돕게 되고, 그 도움 덕분에 마침내 ‘아미르’는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며 환희를 더 드높이고 우승의 증거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잘려 나간 연을 찾아내어 우승의 ‘상징’으로 확보하기 위해 뛰어나가면서 ‘하산’은 기쁘게 말한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이 한 마디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가슴이 저리게 마음 아픈 말이 된다.   

  

‘하산’의 ‘아미르’를 향한 충직한 마음과 순수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이 장면에서 나는 마음 한켠이 찌릿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뭔지 모를 아련한 슬픔 같기도 하고 환희에 찬 기쁨 같기도 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듯 순진무구하고 순결하며 누군가를 위해 조건 없는 사랑과 신뢰를 마음에 품고 밖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참 귀하고 고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3.

연을 찾아 나간 ‘하산’이 오랜 시간 돌아오지를 않아서 ‘아미르’가 찾아 나서게 되는데, 연을 찾아 품에 안은 ‘하산’이 그 연을 빼앗으려는 동네 불량배 일당에게 포위된 현장을 발견한다. ‘하산’이 연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조건으로 그 못된 것들에게 극심하고 비인간적인 고초를 겪는 현장을 발견하고도, ‘아미르’는 불량배 일당들이 두렵기도 하고, 연을 가져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에 순간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 끔찍한 장면을 숨어서 보고 있으면서도 달려 나가 ‘하산’을 구해내 오지 않았으며, 위험에 처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하산’을 방치하고 외면한 채 비겁하게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후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아미르’는 ‘하산’을 피하면서 멀리하다가 마침내 ‘하산’에게 억울한 도둑 누명까지 씌워 ‘알리’와 ‘하산’ 두 부자가 집을 떠나가게 만들어 버린다.


“널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형 같고 형제 같은 도련님 ‘아미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다 기쁘게 감수할 만큼 충직하고 신의로운 ‘하산’이 자기 때문에 회복되기 어려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도 돕기는커녕, 이기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겁하게 도망쳐 버린 자신의 비인간적인 선택으로 인해 ‘아미르’는 감당하기 힘든 내적 갈등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하산’의 순결한 영혼을 배신한 대가로 ‘아미르’가 치루어야 하는 괴로움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여 한 순간도 자유로워질 수 없는 괴로움과 수치심, 미안함에 시달리게 될 것을 당시의 ‘아미르’는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착하디 착한 ‘하산’에게 돌이킬 수 없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서 비롯된 죄책감, 크나큰 죄의식을 떨쳐낼 수 없어서, 차라리 안보고 회피하고 싶은 비겁한 마음에 아예 쫓아내 버린 비정한 짓을 추가로 또 저질러버린 ‘아미르’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공감이 되어 참 비정하고 야속한 운명이구나 싶었다.

‘아미르’가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결코 씻어낼 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휩싸여 어쩌지 못할 우울감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하산’의 비극적인 삶 못지않게 안쓰럽기도 하였다.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해결할 방법도 없고, 끝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빚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만 했던 ‘아미르’의 삶이 마치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려놓지 못하고 평생을 괴로워하는 ‘아미르’도 참 여리고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느껴졌다.


세상에는 크든 작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도 많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극악하고 추악한 죄를 저지르고도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의지는 전혀 없이 뻔뻔함으로 일관하며 어이없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인면수심의 인간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극한 일이기도 하면서 인간적으로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평소 자주 하던 터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미르’와 ‘하산’ 두 인물 모두 참 아프지만 너무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이렇듯 근원적이고 순결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어야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의미가 있고 그런 인간성의 자정작용에 의해 우리 사회가 이어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

세월은 야속하게 흐르고 흘러가는 가운데 이후로 소식이 끊긴 두 소년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게 된다. 안그래도 역사적 혼돈 속에 불안정했던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이 쳐들어오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곳곳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드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더욱 불안정하고 위험한 국가로 전락하고 국민들은 삶은 나날이 피폐해진다. 그런 극악한 나라에서 더 이상 삶의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는데, 그런 망명자 물결에 ‘아미르’와 그의 아버지 ‘바바’도 합류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기회와 희망의 땅이라 믿었던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새 삶을 호기롭게 시작하였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한 삶이 아니었으니, 모국인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레벨이 아무리 높았었다 한들 그것은 흘러간 옛 노래이며 이미 시들어버린 꽃에 불과할 뿐이었다. 현실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후진국에서 온 성가신 난민 정도로 취급받으며 가난에 시달리고 편견으로 멸시받는 미국 사회의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아미르’는 미국에서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나가고 생계를 위해 이리저리 뛰면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어느덧 노쇠해진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게 변화하게 된다. 이후로 결혼을 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작가로서의 성과를 얻고 사회적 명성과 지위도 생기면서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꽤 성공한 삶으로 잘 안착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평화를 지키지 못하고 혼돈에 빠진 고국을 불가피하게 떠나 낯선 타국에 이방인으로 끼어들어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의 조국인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하고, 새로운 나라에서 고군분투하여 자신의 안정된 위치를 찾아 안착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겪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남다른 삶의 경험과 복잡한 심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부분이었다.

꼭 작정하고 쓴 자전적인 이야기나 자서전이 아닐지라도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겪은 개인적인 일들과 자신만의 경험, 그리고 자신이 속한 나라와 시대의 분위기와 특수성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숙명과도 같은 과정일 것이다.

‘할레드 호세이니’ 역시 『연을 쫓는 아이』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출신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불행한 상황에 대해서 늘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 극악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동포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관하여 연민과 부채의식을 느꼈을 듯하다. 고국을 떠나 미국 이민자의 삶 속으로 들어와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운이 좋게도 작가로서의 명성도 얻고 돈도 벌면서 성공한 지성인으로서 잘 안착하여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원뿌리인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뭐라도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저자는 고국인 아프가니스탄을 돕는 활동을 물심양면 여러 방면으로 활발하게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휘돌아 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울컥하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하며 큰 감동을 느꼈다. 그러면서 평소 별로 관심도 없었고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해 보고자 하는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다. 그러는 과정에서 생소한 이슬람 문화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도 되었는데, 때마침 여름 휴가지로 두바이와 아부다비로의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이슬람 문화와 그 문화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아프가니스탄과는 사뭇 다르게 안정적인 부자나라이기는 했으나,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하여 그 나라의 민속촌 같은 지역도 둘러보면서 현지 도슨트의 안내와 해설을 듣게 되면서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여행을 통해 그간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약간이나마 개념이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갖고 있던 타문화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무지하고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다소 선입견이 있었던 아랍 지역이나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그들의 유서 깊은 역사와 그 민족의 가치관, 공동체적으로 체계적이면서 품격을 갖춘 문화에 대한 상식을 확장시키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렇듯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을 접한 독자들로 하여금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현재는 어떠한지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작용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작가와 문학작품이 가진 크나큰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본국과 동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공헌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간절한 바람으로 창작활동을 한 결과 이렇게 위대한 장편소설의 탄생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되었고, 작가가 새삼스럽게 더 위대해 보였다.   

5.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던 ‘아미르’는 어느 날 파키스탄으로부터 아버지의 친구이자 어린 ‘아미르’의 멘토와도 같은 존재였던 ‘라힘 칸’으로부터 날아든 소식을 도화선으로 하여 어린 날 아프간에서 있었던 ‘하산’과의 일들을 상기하게 된다. 그 순간,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허술하게 봉합해 두었던 상처와 죄의식이 또다시 올라와 또다시 괴로움에 사로잡힌다.

‘라힘 칸’의 설명을 쭉 듣고 ‘하산’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떠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아미르’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나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사실은 ‘하산’이 단순한 하인의 아들이 아니라 배다른 형제인 이복동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 옛날 ‘아미르’의 모략으로 도둑으로 몰리는 사건 끝에 집을 떠난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는 새롭게 터를 잡은 안전지역에 잘 안착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착한 아내와 예쁜 아들아이를 낳고 아버지인 ‘알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하산’이 ‘라힘 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충직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아미르’와 ‘바바’와 함께 살던 옛집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의 그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고향집을 가꾸며 살아가던 중 남의 집을 점거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고 극악무도한 탈레반이 그들을 잔인하게 죽여버렸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하산’의 한 많은 삶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된다.


그러면서 ‘하산’의 아들인 ‘소랍’의 존재를 알게 된 ‘아미르’는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어린 ‘소랍’을 찾아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위험천만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온 ‘아미르’는 탈레반에 끌려가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는 ‘소랍’을 천신만고 끝에 만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어린 날 ‘하산’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동네 불량배였던 ‘아세프’가 탈레반이 되어 어린 ‘소랍’을 괴롭히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그 끔찍한 소굴에서 ‘소랍’을 구출해 내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끝에 극적으로 ‘소랍’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난투극이 벌어진 그 상황에 수세에 몰린 ‘아미르’를 돕기 위해 ‘소랍’이 기지를 발휘하는데, 그때 쓴 방법이 ‘하산’의 주특기였던 새총이었다. 아버지 ‘하산’으로부터 새총 쏘는 법을 배운 그 아이가 새총을 정확히 조준하여 탈레반 악당 ‘아세프’의 눈을 쏘아 ‘아미르’를 구해내어 결국 위험한 탈레반 소굴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소설 속 이 장면의 묘사 부분에서 어린 ‘하산’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순박하고 착하디 착한 그의 삶이 가여워서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하산’의 아들 ‘소랍’이 그의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시선이 참  따뜻하고 의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소랍’은 그 난투극의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아미르’를 돕기 위해 새총을 꺼내드는 용기를 발휘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산’의 용감함을 닮았다. 그리고 새총으로 악당의 눈을 정확히 조준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새총쏘는 기술을 제대로 배워 익힌 결과인 것이다. 그 한 면만 보더라도 ‘하산’이 아들 ‘소랍’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소랍’이 아버지 ‘하산’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아들인지를 엿볼 수 있어서 더욱 감동스러웠다. 또한 그렇게 지극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귀한 아이가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극악무도한 탈레반에 끌려와 수많은 고초를 겪었을 일들을 상상하게 되면서 깊은 슬픔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 어딘가에 소설 속 ‘소랍’ 같이 졸지에 고아가 되어 탈레반의 폭정 하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에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탈레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폭도 세력들이 온 나라를 집어삼켜 뒤흔드는 극악한 상황에서는 방어력이 전혀 없고 자신을 지킬 힘이 전무한 아이들과 여성들이 소설에서처럼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발달의 정점에 이르른 오늘날에도 지구의 어느 한켠에서는 21세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과 기아, 폭력에 노출된 채 삶과 죽음을 매일 넘나드는 고통을 겪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고 서글픈 마음이 밀려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피조물보다도 존엄성을 목숨처럼 지킬 수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법인데 상식이 통하지 않게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고통을 겪는 비극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이 오랜 내전으로 불안불안한 화약고 같은 공포감을 오랜 세월 겪으며 나라가 혼란스럽고 수많은 양민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되는 극악한 상황의 중심에 스스로를 이슬람 원리주의자라고 믿고 떠드는 ‘탈레반’은 도대체 어떤 어떤 존재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호기심에 탈레반에 대한 자료를 잠깐 검색해 보았는데, 결국은 이슬람 문화나 코란의 참뜻을 무시한 채 원칙도 없이 멋대로 해석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현실정치에 마구잡이로 적용하여 비윤리적으로 써먹으면서 갖가지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만행들을 저지르고 있는 폭도조직에 불과한 집단이 아프가니스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탈레반의 제멋대로식 코란 해석이 우리나라의 뒤틀린 유교문화와 중첩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유교의 본질을 잘못 받아들이고 그 참뜻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하여 뒤틀린 문화를 만들어낸 우리나라의 유교문화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면에서는 공통된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그 기괴한 행태와 잔혹함에 있어서는 끔찍한 탈레반에 우리의 유교문화를 견줄 대상이 못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종교이든  문화이든 이론이든지를 총 망라하여 본질을 제멋대로 흐리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아무 때나 끼워 맞춰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에 있어서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는 맹목적이거나 자의적인 관점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경각심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6.

우여곡절 끝에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하산’의 아들이자 ‘아미르’의 조카인 ‘소랍’을 찾아내어 잔혹한 탈레반으로부터 구출했지만,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도 비자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으며 힘든 상황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랍’이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은 ‘아미르’가 ‘소랍’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기나긴 여정이 무사히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미국으로 온 ‘소랍’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실어증에 결린 듯 침묵을 이어가면서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이민자들에 의해 그들 민족의 행사로 연싸움 대회를 열리는데, 그 대회에 ‘아미르’는 ‘소랍’을 데리고 참가하게 된다. 그 현장에서 미국으로 온 이래 계속 초점이 흐렸던 ‘소랍’의 눈이 반짝거리며 생기를 되찾게 되는데, 그때 ‘아미르’가 상대의 연줄을 끊어내 주어서 ‘소랍’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어린 날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미르’를 위해 끊어져 날아간 연을 찾기 위해 달려 나갔던 ‘하산’의 모습과 똑같은 마음과 닮은 모습으로, 이제는 ‘소랍’을 위해, 잘라져 날아간 연을 찾으러 ‘아미르’가 힘차게 달려가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아름다운 끝을 맺는다.     


이 마지막 챕터에서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온 이후에도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심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랍’의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게 너무 험악하고 끔찍했던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외상 후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을 겪는 과정을 ‘소랍’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와닿았다.

특히 작가는 ‘소랍’을 통해 혼돈의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약자 중 특히 어린이들이 겪는 비극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리라 느껴졌다. 결국 ‘소랍’은 아프가니스탄 민족들, 나아가 어린아이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어나보니 주어진 운명 같은 나라가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고, 날이 갈수록 더 극악스러워지는 폭정과 전쟁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하는 불행하고 가련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생각하니 실로 안타까운 현실상황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내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 성장하여 성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나름대로의 시련과 어려움을 비껴갈 수 없어서 힘든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평화롭고 행복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감사하다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부디 오늘날 이 순간에도 이 소설 속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하여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파괴되고 삶이 위협받는 비극적인 일들이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게 된다.     


“널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소설을 완독한 시점에서는 이 아프고 아름답고 속깊은 메시지가 가슴속 깊이 각인되었다.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이 한마디로 리마인드하게  만드는 임팩트 있는 이 말을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소리 내어 읊조리며 순간순간 울컥하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였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에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이 밀려와 기나긴 여운에서 한참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만큼 감동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뭉클하고, 맘 아프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신분과 계급, 종교, 가족, 민족, 이민자의 삶, 분쟁지역의 실상, 인생의 본질, 선과 악, 죄책감과 속죄 등 인간의 본성과 삶의 아이러니에 관하여 다각도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삶의 품격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리는 존재의 복잡다단함과 관계의 모순, 신의를 지키는 것과 배신하지 않는 삶의 가치, 속죄와 구원의 숭고함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이 너무 끔찍하여, 놀라고 슬픈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비통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 소설로 인해 평소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지리적/정치적 상황을 알게 되었고, 생소했던 이슬람 문화에 대해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타문화에 대한 상식과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이 소설로 인해 나의 미약한 지식 면에서는 또 다른 확장성이 있었다.     


끝으로 ‘우정과 사랑’, ‘죄책감과 후회‘, '속죄와 구원’이라는 테마를 격정적인 서사로 펼쳐내면서 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케일이 매우 큰 이야기를 창작해 낸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가적 재능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개성 있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탄탄한 서사구조, 개연성이 충먼한 스토리, 화제성, 재미와 흥미, 교훈과 진리가 담겨 의미 가득한 메시지, 감동과 여운, 작품성 등 어떤 면으로 보나 단연코 ‘현대의 고전이 된 스테디셀러’라 칭하기에 이견의 여지가 전혀 없는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소설 창작의 ABC가 조화롭게 담겨 있는 문예창작 교과서’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승전결의 매끄러운 흐름, 수미상관을 이룬 탄탄한 스토리 구조, 한명한명 모두가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 펼쳐지는 사건들이 함축하고 있는 상징과 거대담론들이 어느 하나도 흠잡을게 없이 완벽한 소설이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훌륭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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