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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Feb 15. 2024

[영화리뷰]-<길위에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영화리뷰]-<길위에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 천년도 부족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 한 시간으로도 족하다.

– 바이런      


▶영화소개

목포의 청년 사업가, 국민과 함께 파란곡절 역사에 서다! 목포의 제일 가는 청년사업가 김대중.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념의 정치에 희생되던 무고한 국민들이었다. 국민의 정치,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김대중은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보장된 미래를 뒤로 하고 파란곡절의 길 위에 첫 발걸음을 내딛은 그 선택의 대가는 납치, 살해 위협, 투옥과 사형선고가 되어 그를 뒤흔들지만 죽음을 선고 받은 마지막 순간에서도 김대중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외쳤다.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사형수,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세 번의 대선 낙선을 거친 '낙선전문가'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이 대한민국 현대사 위로 아로새겨진다. (출처:네이버 영화소개)     


▶영화기본정보

개봉 : 2024.01.10.

등급 : 12세 관람가

르 : 다큐멘터리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민환기

주연 : 김대중     



▶[영화리뷰]-<길위에 김대중>

내가 퇴근 시간 무렵이면 어김없이 즐겨듣던(얼마 전 진행자인 신장식 변호사가 퇴출되었기 때문에 이후로 나의 즐겨듣기 패턴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인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서는 주간 영화소개 코너가 있었다. 그 시간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세간에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트랜디하고 핫한 영화보다는, 깊이와 의미가 있는 독립영화나 인디영화 중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을 작품들이 주로 등장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평소에도 독립극장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끌리는 독립영화를 관람하는 취미가 있는 나에게는 참고가 될만한 정보들을 많이 얻게 되는 이 영화 소개 코너가 참 좋았다.

다큐 영화 <길위에 김대중> 역시 어느날 불현듯 라디오 전파를 타고 나의 귀에 꽂히게 되었다. 이 영화에 대한 사심 가득함을 숨길 수 없다는 듯한 신장식 변호사의 호의 어린 뉘앙스로 전달되어 더욱더 선명하게 인식된 영화정보에 의해 내 마음에 뚜렷하게 각인된 영화였다.

곧바로 내가 주로 다니는 독립극장의 상영 시간표를 검색해 보았고 나와 스케줄이 맞는 시간대를 골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하나의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바로 내 최애 영화 아지트 중 하나인 홍대 인디스페이스에서 유지태 배우가 펀딩하여 무대인사까지 해주고 함께 관람하는 기획에 관한 것이었다.

안그래도 평소 사심 어린 호감과 팬심 가득 갖고 있던 유지태 배우가 상영관을 통째로 대관하여 응모자들 중 선별된 관람객들을 초대하여 <길위에 김대중>을 함께 관람하는 의미로운 자리를 마련하였다는 것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다. 잠시도 고민할 여지 없이 곧바로 응모 양식에 맞게 개인정보를 작성하여 전송을 하긴 하였는데, 여지껏 살아오면서 무엇이 되었든 노력 없이 공짜로 얻어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나로서는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응모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무렵 뜻밖의 문자메시지가 하나 날아들었다. 내가 응모한 신청서가 채택되어 [유지태 배우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 : 다큐영화 <길위에 김대중> 관람 초대장을 받게 된 것이었다. 살다 보니 나에게도 이런 행운도 오는구나 싶었고 신기하기만 했다. 기분이 붕 들떠서 설레이고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을 향해 달려갔고, 유지태 배우를 근거리에서 만났고, 여러 관람객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얼핏 보아서는 故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에 즈음하여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영화라는 표면적인 소개를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라는 질곡의 세월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작품이었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회오리치는 역사의 한가운데 김대중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의미로운 자리에 운명적으로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일뿐, 결코 김대중 개인을 찬양하듯 부각시키거나 정치적인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상당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김대중은 전라남도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더 들어가야만 할 만큼 변방인 ‘하의도’ 라는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어린날부터 남다른 영특함을 보였던 아들 김대중을 지켜보면서 기쁨과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었던 듯 하다.

깜깜한 밤에 잠이 든 아들 김대중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공부를 잘하고 특별함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잘 키워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 어린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꿈인 듯 생시인 듯 잠결에 어렴풋하게 들었던 날이 많았었다는 일화를 어딘가에서 접했던 기억이 난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어려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의식이 깨어 있는 부모님이 있었던 덕분에, 김대중은 전라도 작은 섬에서 평범한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세계인 목포로 유학하게 되었고, 당시 지역 명문이던 목포상고에 진학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 김대중은 목포상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졸업하고 지역에서는 꽤 촉망받는 청년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편하고 풍요로운 꽃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인생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인의 영달과 보장된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민중과 다함께 잘살아 가기 위해 고생길을 자처하며 고난의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된다.

젊은날의 김대중은 한국 전쟁 이후 휘몰아치는 대한민국의 현실 상황을 삶의 현장에서 세밀하게 목도하였고, 먹고 살기도 힘들고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국민들의 비극적 삶에 눈을 뜨게 됨으로써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민족, 일반국민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온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게 영민하고 여러 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였던 똘똘이 김대중은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명석한 머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운업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하였고 몇십 척의 배를 갖게 될 만큼 사업적으로 남부러울게 없이 승승장구하는 청년사업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돈과 명예와 안락한 삶을 등 뒤로 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와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 고통스럽기만 한 국민의 삶에 눈을 뜨면서 개인의 행복한 삶을 포기한 채 정치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비뚤어진 이념과 모순된 정치에 의해 더욱 나락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안락한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투신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김대중이 처음부터 대통령의 꿈을 품고 자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의 소시민들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던 첫마음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였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다정하고 따뜻한 패기를 지닌 한 청년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상황과 시대적 요구에 의해 운명적인 성장기를 자연스럽게 걸어간 것이었다는 게 가슴 뭉클해지는 부분이었다.

권력욕이나 출세욕이 아닌 마음씨 착한 성정에서 비롯된, 말 그대로 공익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실질적인 뜻을 품은 정의롭고 똑똑한 청년의 꿈과 희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예쁘고 착한 마음만 갖고는 청년이 가족과 이웃과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은 지극히 미약한 것임에 틀림이 없고,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정치의 영역

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김대중은 그렇듯 운명적인 흐름에 의해 정치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고 정치적 기반도 부실한 한 청년이 정치라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만으로 기회가 쉽게 주어질 리는 만무한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거에 나갈 때마다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면서 가족들은 물론 주변인들도 피폐해져 가는 수순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친가와 외가에 본인의 분야에서 일정한 성공을 이룬 후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던 친척어르신이 한 분씩 계셨는데, 그분들이 선거를 치를 때마다 상당한 재산을 탕진하며 가족과 친척은 물론 뜻을 함께하며 돕는 지인들까지도 심신이 피폐해졌던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내가 20대였던 젊은 나이에 그 친척분의 선거를 돕기 위해 유세차량을 타기도 했던 일도 기억이 나는데, 그만큼 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뺏지를 다는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렇게 어려운 선거를 거듭하면서 낙선과 재도전을 반복하였다고 하니, 그 뚝심과 배짱이 참 대단한 청년이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보니 김대중 개인의 인내와 열정,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간절한 염원, 꺾이지 않는 신념만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넘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갖는 상징성과 가능성에서 비롯된 결과로써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과 국민들의 성원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선거에서 수차례 낙선하면서도 오뚜기처럼 일어서 재도전하는 천신만고 끝에 1961년 재보궐 선거로 드디어 뺏지를 달면서 현실정치인으로서 국회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지며 성장하였고, 민중의 삶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깊어지면서 남다른 소명의식을 가졌던 까닭인지, 그는 초선의원이었던 정치 초보 시절부터도 자신만의 확실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펼칠 줄 아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      


정치인 김대중이 이후의 선거에서 재선을 거듭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게 되고 열혈 지지자들과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의 깊은 지지와 폭넓은 지원을 받으면서 점점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될수록,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면서 머리가 아픈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었고, 역사의 큰 물줄기는 휘몰아치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 회오리 한가운데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중심의 잡고 있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늘 그렇듯,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구세력과, 기존 고인물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정의를 구현해 내려는 신세력 간의 갈등은 인간의 삶과 역사의 현장에서는 끊이지 않는 현상일 것이다. 당시 기존의 견고한 질서를 오랜 세월 이어가던 구세력에게는 민주주의의 구심점으로 등장한 걸출한 신정치인 김대중의 존재가 위협적이고 눈에 가시 같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인류학적으로 윤리적으로도 순리를 거스르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은 절대 이행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납치되었고, 끊임없는 살해 위협을 받았고, 감옥에 투옥된 끝에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김대중 개인의 파란만장한 시련이라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가벼운 사건들이 아니며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펼쳐진 질곡의 세월을 대표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시대의 표상적 역사 현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극강의 시련을 관통하는 세월 속에서 김대중은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개인성은 이미 없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은 어떤 정해진 운명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와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김대중이 지닌 정치인으로서의 가치와 그가 품은 시대정신을 알아본 정치적 동반자들과 지지자들을 포함한 동지들이 점차 늘어갔고, 청년 김대중이 정치인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아낌없는 성원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었기 때문에 김대중 개인의 안위와 생존을 위해 중간에서 포기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으며 끊임없이 넘어지면서도 일어서고 또 일어서며 험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것이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면 연관되어 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민주주의’일 것이다. 김대중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간절함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정치적 배경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현실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밑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가며 고군분투했던 그의 인생여정을 생각하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분명 김대중이라는 민주주의자로 인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며 민주화에 가속이 붙었던 것은 사실이나, 오직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쳐 깨지고 부서지면서 싸워야 했던 그의 개인적인 삶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얼마전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하였다. 다큐영화는 아니었지만 역사 자체가 스포였던 덕분인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리얼리티를 너무도 잘 살렸던 역사물이었던 영화 <서울의 봄>은, 그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나에게도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게 하였다.

이 영화 <길위에 김대중> 역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을 깔고 영화 전개가 흘러가고, 더욱이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다큐영화이기 때문에 좀 더 현실감이 느껴지면서 몰입감을 최고조로 만들어 주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다큐 영화가 지니는 현장감을 대단히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우리나라 현대사의 역사적 현장과 역사 속에서 활동했던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고, 故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육성이 들리는 가운데, 마치 그 시절 그 현장으로 되돌아간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다큐영화는 촉망받으며 성공한 청년사업가로서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꽃길만 걸어갈 수도 있는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국민, 민중과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요구에 눈을 뜨면서 어렵고 험한 길을 기꺼이 걸어갔던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과 동시에 경외의 마음이 올라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나는 정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인데,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거라는 관점은 일반화의 오류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느꼈다. 나는 이 다큐영화를 통해 김대중이라는 민주주의자가 우리 역사 속에서 실존했었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진일보한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라는 것을 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여고시절에 관람한 영화 ‘간디’로 인해 전세계에서 ‘비폭력 평화주의자’의 대표격으로 간디를 꼽는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길위에 김대중>을 관람하면서 故 김대중 대통령은 간디를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더더더 상위 레벨의 비폭력 평화주의자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대들보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김대중은 작은 섬마을 소년에서 성공한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였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자로서 우리나라 정치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등극하였다. 이승만, 박정희, 신군부 정권을 거치면서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르게 되고,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지켜내면서 미국망명길에도 오르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1987년 선거에 나서게 되는데 그 당시 김영삼과의 양김 협상후 단일후보를 만드는 합의가 불발되는 지점까지가 이 다큐영화 <길위에 김대중>의 스토리라인이다.

이 영화의 종결지점 이후로도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은 김대중이 결국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 되었고, 그 다음에 펼쳐지는 역사 또한 깊고도 넓은데도 불구하고 김영삼과의 양김 협상 지점에서 영화를 종결한 것은 감독이 계속해서 그려 나가고 있을 또 다른 큰 그림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다음화에 계속’이라는 클로징 자막에서 짐작하건대, 아마도 후속작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영화가 좀 더 활발하게 상영관이 늘고 관람객이 늘어서 손익분기점을 거뜬히 넘어설 수 있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그래야만 감독의 창작 의지에 불을 지피고 후속작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데, 여느 독립영화가 자주 그러하듯 생각만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많이 하여도 좋겠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흐름의 큰 변곡점이 되었던 시대와 인물에 대한 역사교육도 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거대담론에 대한 개념을 잡아 나가는 데에도 자연스럽게 바탕이 될 수 있는 뜻깊은 영화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편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선보였던 멋진 연기력과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건강하고 반듯한 정신세계를 가꾸어 나가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어지고 있는 느낌의 유지태 배우를 실물로 만날 수 있어서 더없이 영광이었다. 영화 상영 전 가졌던 무대인사에서 유지태 배우는 말했다. 원래는 영화탄생의 일등공신인 감독이나 제작자가 전면에 서야 마땅한데, 자신이 배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무대인사도 할 수 있을뿐 자신이 기여하는 바가 큰 것이 아니라고. 사실 자신은 정치를 잘 모른다고.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생각을 넓히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번 돈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좋은 예를 유지태 배우가 보여준 듯하다. 이렇게 의미로운 영화를 펀딩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해 준 개념 배우 유지태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무한박수를 보낸다.


▶인상적인 메시지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김대중)

✔우리는 지금까지 정의가 기댈 언덕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국민은 결코 독재를 영원히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김대중)

✔나에게 있어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김대중)

✔보복하지 말고 민주주의만 확고히 해라.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김대중)

✔미국은 자국 내 정치는 민주적일지 모르나, 외교 간에 있어서는 민주적이지 않다.(김대중)

✔나는 길 위에 있었어요. 부르면 늘 어디든 달려갈 수 있게...(김대중)

✔너무 무리한 모험을 하지 마라, 하지만 적당한 모험은 필요하다.(김대중)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내 인생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는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김대중)

✔타협, 화합, 평화(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이 걸어온 삶을 목소리로 안내하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배우 장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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