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이 있는 철학자이다.*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TV>[영화리뷰]-<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TV
*예술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이 있는 철학자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에릭 프롬
▶영화소개
"달을 발견했어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요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은 달이에요” ‘모두가 자신의 채널을 갖는’ 현재를 예견한 20세기 최초의 디지털 크리에이터, 과거를 거슬러 미래를 탐험한 ‘백남준’의 모든 시간을 기록한 반드시 구독해야 할 올해의 채널. (출처:네이버 영화소개)
▶영화기본정보
✔개봉 : 2023. 12. 06.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대한민국, 미국
✔러닝타임 : 110분
✔배급 : ㈜엣나인필름
✔감독 : 아만다 김
✔주연 : 백남준
✔내레이션 : 스티븐 연
▶[영화리뷰]-<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나의 최애 독립영화관 중 하나였던 ‘인디스페이스’가 ‘서울극장’ 영업 종료와 함께 종로에서의 막을 내리면서 홍대로 옮겨왔는데, 나의 거주지를 포함한 개인적인 상황과 접근성이나 시설 편이도 면에서 그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서 매우 만족스럽게 ‘홍대 인디스페이스’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상영관의 컨디션이 참 좋다고 느껴지는 그곳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세계적인 명성에 빛나는 예술가 ‘백남준’의 예술적 생애를 조망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기록영화이다. 백남준은 대한민국 출신의 예술가 중 그 유명세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꼽을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한국인 미국 예술가이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들이 많고도 많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인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은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여 미래를 예측할 만큼 천재적인 예술성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다. 이 다큐 영화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 사후 그의 예술과 생애를 조명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인데, 한국계인 ‘아만다 킴’이 감독하였다. 그리고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하였는데, 그 덕분에 백남준의 일생을 관통한 예술세계는 물론 그의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도 훨씬 친근하게 다가오는 효과가 한층 더 생긴 듯 느껴졌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도슨트의 해설이 첨부되어 인트로 형식으로 상영이 되었는데, 백남준 기념관의 ‘김나율 도슨트’의 전문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인해 백남준이라는 걸출한 예술가의 일생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상영기획은 참 탁월한 구성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2023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세계적으로 큰 호응과 인정을 받았을 정도로 내용이나 작품성 면에서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독립극장이나 인디극장에서 짧은 기간 동안만 상영되고 소리소문 없이 스크린에서 내려진 것이 현실이다 보니, 언제나 그렇듯 좋은 독립영화들의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다시금 심각하게 느껴졌다.
‘백남준’이라는 이름 석자는 미술을 포함한 예술 분야 전반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에게조차도 20세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라 칭송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라는 기초개념은 잡혀 있을 만큼,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여 그 분야의 일가를 이루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을 얻은 존재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남준=비디오아트’라는 공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백남준의 예술은 텔레비전을 비롯한 과학기술을 결합하여 예술작품을 창작해 내면서 융합과 통합의 아트를 구현하였다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백남준은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백남준이 출생하던 당시 조선 직물업계의 거물이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재벌이라 할 수 있는 태창그룹 총수 백낙승의 아들로 태어난 덕분에 그 시절 서울에 딱 2대밖에 없었다던 캐딜락을 굴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집에서 당시에는 희귀했던 피아노, 전축을 누리고 살았다. 그랬던 덕분에 어린 날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당대에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을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클래식을 포함하여 피아노 등의 다양한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보다는 어린 시절 접했던 ‘전위음악’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폐해를 위로하기 위한 ‘전위음악’은 당시로서는 최신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기존의 음악질서를 뛰어넘고 정해진 틀을 깨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백남준의 감성적 특성이, 어린 시절부터 음악의 선호에 있어서도 경향성으로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그의 이런 특징이 백남준이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을 때 전형적인 음악이 아닌 실험적인 음악을 선호하고 나아가 행위예술이라 일컬을 수 있는 특이한 퍼포먼스 활동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비디오아트 이전의 백남준은 일반적 기준에서 생각할 때에는 매우 파격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전위예술의 성격을 띠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구현해 내면서 퍼포먼스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견고히 해냈다. 그럼으로써 그만의 특유의 예술적 형태를 구축해 나갔는데, 그의 작품활동에서는 특이하고 파격적인 그의 예술관이 잘 반영되고 있었다.
백남준의 젊은 시절 예술 활동 초기에는 미술가가 아닌 음악가로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독일로 이주하면서 그 다운 예술 활동에 몰입하게 되었고 결국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TV를 예술적 표현의 매개체로 끌어들여서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함으로써 20세기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던 과정이 이 다큐멘터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 하나인 ‘TV Buddha’의 탄생일화에 대해 꽤 상세하게 다루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에서는 동양철학의 상징과도 같은 부처상이 등장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아 TV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는데, 동양적인 전통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결합하여 예술적 융합을 이루어내었다는 점을 그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한 작품이었다.
사실 나는 ‘백남준’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정도의 누구나 다 아는 개념 이외에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생애와 예술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대단히 의미로운 영화 관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다큐에서는 백남준이 미국과 독일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과정과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예술적 여정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여줬기 때문에, 백남준이라는 걸출한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특히 그의 상징적인 정체성이 구축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백남준이 독일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까지는 음악가 ‘윤이상’과 인연을 이어갈 정도로 현대음악 쪽으로의 관심이 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랬던 그가 작곡가를 꿈꾸며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중에 돌연듯 미술로 진로를 바꾸게 되는데, 그런 계기가 된 것은 ‘존 케이지’의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편협하고 정형적인 기존의 미술을 거부하고 부수어버리고 싶다는 듯, 그 형식과 표현방식이 너무 파격적이었던 그의 행위예술의 시도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너무 앞서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니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빈곤한 가운데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을 듯하다.
실제로 백남준은 어린시절 유복한 집안 환경에서 부족함 없는 풍요로움을 누렸을 뿐, 그 외 일생은 가난했으며 낯선 이국땅에서 인종차별과 빈곤에 노출되어 고생스럽게 살았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점철된 일상이었기에 자신의 삶이 고생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온 정신을 아트작업에 몰두하여 끊임없이 새롭고 재밌는 것들을 추구하며 열정적인 하루하루를 이어가며 살았기 때문에 만족감과 행복을 깨닫고 느끼는 지점이 남달랐으리라.
음악에서 미술로 예술분야를 전환하던 당시의 백남준은 우연성 음악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음악가인 ‘존 케이지’, 미국의 전위 예술가인 ‘조지 마치우나스’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행위예술을 주목하였고, ‘삶이 아트다.’라는 철학적 모토를 지닌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행위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다큐영화에서도 머리카락을 붓 삼아 먹물을 묻혀서 그림을 그리듯 선을 긋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영상이 중간에 나오는데, 참 흥미로운 장면이라고 느꼈다. 지금이야 그것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하도 많이 하니까 그냥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당시의 시대성을 생각한다면 참 이상하고 기이한 짓도 다한다 싶을 만큼 특이하고 별스러운 행위예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서 이루어진 예술작업이었기에 주목을 받는 것이 가능했을 듯한 이 행위예술을 계기로, 이후로 백남준은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미국과 독일을 오가면서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나는 이 ‘플럭서스’란 단체의 의미와 개념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1962년 독일에서 결성되어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반예술적이면서 실험적인 미술운동을 상징적으로 일컫는 미술활동과 그런 활동을 하는 예술가집단을 일컫는 라틴어 어원의 용어라고 한다. ‘변화’와 ‘흐름’을 뜻하면서 모든 예술의 창작의도는 인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기존의 예술과 문화의 형태와 질서만을 쫓는 것을 거부하고 좀 더 자유롭고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새롭고 개성적인 작품활동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틀에서 예상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돌발성 이벤트를 시도하고 음악과 미술/문학/기술과 과학 등 각 분야를 융합하여 하나의 통합된 예술 형태로 구현해 내는 실험을 하는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든 면에서 ‘플럭서스’가 지향하는 예술철학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백남준’이 추구하였던 예술세계와 그 기조가 맞닿아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행위예술가로서 활동하던 초창기 백남준은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그를 알아주거나 인정해 주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백남준이 196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무대에서 피아노를 뒤집어엎거나 때려 부숴버리고, 바이올린을 등뒤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고 넥타이를 자르는 기이한 형태의 행위예술을 하기도 했던 장면들이 담겨 있는 기록영상들이 다큐멘터리에 생생하게 포함이 되어 있다. 게다가 첼리스트를 누드 상태로 무대에 등장시켜 함께 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그 당시 백남준의 뉴욕 시절만 하더라도 백남준은 미국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거나 제대로 평가받는 위치가 아니었으며, 냉혹한 혹평만 받는 수난 시대를 겪었던 듯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남준은 예술적으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이상하고 요상하고 기이한 기행만을 일삼는 어딘가 좀 별스러운 사람으로만 비춰지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짓만 하는 B급 예술가 정도로 치부되며 평가절하되었던 시절이었던 듯하다.
또 그는 행위예술로서의 퍼포먼스뿐만이 아니라 행위음악도 선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1980년대부터는 과학기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다. TV를 활용한 예술작업을 하게 됨으로써 결국 그의 뚜렷한 예술적 정체성으로 남게 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백남준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과학기술에 집중하게 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급기야는 로봇을 만들어 이름도 지어주고 그 로봇을 활용하여 뉴욕 시내에서 로봇의 교통사고 연출을 하고 ‘21세기 최초의 참사’라는 작품명을 지어주는 등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으니 백남준의 실험정신은 실로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열정 가득한 창작의 에너지와 독특한 예술적 감각,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레벨이었을 거란걸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하였다.
제대로 된 평가와 인정을 받지 못한 채 B급 예술가라고 치부되었던 뉴욕 시절의 백남준이 비록 당시 예술계의 중심에서 옆으로 살짝 밀쳐져 있었다고 한들, 백남준 사후에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생애를 회고하는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결코 무모하고 서럽기만 했던 뉴욕 시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은 퍼포먼스 예술이 서서히 떠오르던 시기이기도 했고, 미술 분야만 보더라도 회화나 조각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정형적인 오브제 성격의 예술들이 중심을 이루던 이전 상황에 비해 행위예술/경험예술로 비롯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태동하던 시기였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렇듯 예술의 개념과 범위가 좀 더 넓어지면서 새로운 기류가 태동하는 시기에 선각자가 되어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구자가 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뉴욕 시절의 백남준은 결코 B급 예술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미술계의 미래비전을 예감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존 질서를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해 낼 능력이 있는 앞서가는 예술가였고, 그 시절 그는 좌절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높고 깊은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로 뻗어나갈 바탕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느껴진다.
실제로 백남준의 미국 시절 이후에 퍼포먼스 예술이 좀 더 확장되는 흐름으로 변화하였던 것이 사실이며, 1980년대 이후로부터 순수예술을 아우르면서 여러 활동을 융합하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형태의 무대예술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하니, 백남준의 감각이 남달랐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션쇼/콘서트/오케스트라 등의 광범위한 무대를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는 현대의 무대예술들은 다양한 퍼포먼스가 융합된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미술/음악 등을 비롯한 각 예술 분야에서 정통의 클래식도 고유의 가치를 유지해 나가면서 많은 마니아층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다양성을 추구하게 된 현대 예술계의 기류는 각 분야의 고유성을 유지하되 서로 협업하면서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새로운 예술 형태로 재탄생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21세기의 이런 예술적 흐름과 변화하고 발전하는 예술 기조의 바탕에는 백남준 같은 개혁적인 예술가들이 시대를 앞서 새로운 시도들을 개척적으로 실험해 보면서 하나하나 쌓아 올린 디딤돌이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술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이 있는 철학자이다.
1932년생인 백남준은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지는 역사의 현장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가 민족주의/전체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일방이 아닌 쌍방소통과 상호작용을 중요시 여기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집중한 것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일 듯하다. 라디오는 매체를 나쁘게 활용한 비극적 역사의 원흉의 상징적 인물이 된 히틀러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었고, ‘바보상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은 TV는 현대인들을 미디어에 중독된 멍청한 노예 상태로 만들었다. 백남준은 라디오와 TV가 정해진 정보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대중에게 주입시키며 세뇌시키는 불통의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가 개별적인 소통 채널을 갖고서 자신이 원하는 소통을 자유롭게 하면서 각자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인정받는 세상을 꿈꿨던 듯하다. 이 부분에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가 바라던 꿈과 희망을 예술적으로 구현해 내기 위한 일반적인 창작활동의 일환이었던 것뿐이었을까? 아니면 인터넷과 유튜브를 활용해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개인 채널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개인적/단체적 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을 백남준은 오래전에 이미 예측할 수 있었던 걸까?
정보의 바다/정보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인터넷과 너무도 흡사한, 아니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과거의 백남준은 어떻게 그토록 상세하게 떠올리고 표현하여 작품으로 구현해 낼 수 있었는지 신기함을 넘어서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작은 배를 타고 도착할 해안이 어디인지 잘 모르는 상태로 항해하고 있다고, 전 세계가 그물망 같은 고속도로로 얽히고설킨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표현해 낸, 시대를 앞선 예언과도 같은 백남준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 시절만 해도 이렇듯 앞서가는 그의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이 있는 철학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백남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생성한 그만의 깊이 있는 철학과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를 미술을 전공하거나 백남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미술을 심도 있게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백남준에 대한 이렇듯 세세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많이 놀랐고 참 신기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백남준의 시대에는 기초개념조차 없었던 소재와 주제들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활동과 그가 예언처럼 말한 알쏭달쏭한 것들이 수십 년이 지나 모두 현실로 실현되는 신기한 일들이 실제로 펼쳐졌으니 도대체 백남준은 어떤 철학을 가졌던 인물이었으며, 어떻게 이토록 앞날을 정확히 예측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넘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러니 백남준에 관한 수많은 연구와 논문들이 지금까지/지금 현재도/앞으로도 수도 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행위예술과 비디오 아트를 포함하여 현대 미디어 아트의 대부격인 백남준은 단순히 부자라고 칭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당시 상당한 재력을 갖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안락함이 보장된 평탄한 길을 거부하면서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현해 나가기 위해 평생을 고단한 비주류로 살았다. 그가 끊임없이 추구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실험 정신과,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작품으로 구현해 내는 실천적 에너지가 힘세고 총기 넘치던 젊은 시절에만 반짝했던 게 아니라 나이를 먹고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일생을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대단히 놀랍고 그의 끊임없는 열정과 센시티브 한 예술적 감각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는 말년에 중풍에 걸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중에도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마비된 몸을 이끌고도 예술혼을 불태웠다. 성서에 나오는 내용에서 착안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야곱의 사다리’를 형상화한 비디오 아트를 독일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하는 것을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백남준의 예술 여정은 막을 내렸다. 이것 역시 그 자신이 천국으로 이동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음을 예측하며 유작이라 생각하며 마무리한 마지막 작품활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남준의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관람하면서 백남준이라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의 다이내믹한 인생만큼이나 그가 거친 삶의 현장과 시대 상황이 격동기였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 다큐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함 전 세계의 근현대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비디오 아트를 포함한 다채로운 행위예술/설치예술을 창조해 내었고, 세계의 현대미술을 선봉에서 이끈 전 세계 현대미술의 대부인 백남준이라는 훌륭한 예술가가 존재했다는 것이 고마운 일임에 틀림이 없는데, 더욱이 그런 상징적 인물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저절로 올라온다.
그리고 이 다큐 영화는 백남준의 젊은 시절부터 중풍에 걸려 어렵게 작품활동을 하는 말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전체에 대한 회고와 추모의 뜻이 담긴 영화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특별함이 있는 영화였다. 청년 시절의 풋풋한 백남준의 모습에서부터 작고하기 직전의 투병 중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한 예술가의 일생을 관통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백남준의 삶과 예술의 기승전결이 아름답고 슬프고, 안타깝고 행복했다. 인간의 위대함과 삶의 유한함, 예술이라는 것의 아름다움과 창작의 고통스러움 등 참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이렇게 의미가 깊고 내용이 좋은 영화를 독립극장 상영관을 전세라도 낸 듯 달랑 4명이 관람하였다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내가 자주 찾는 독립극장의 독립영화/비주류영화/인디영화/제3세계영화의 상영현장이 항상 이러한 편인데, 그 현장에 있을 때마다 나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양가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복잡거림과 붐비는 사람들로 인해 정신없는 환경과는 대비되는, 편안하고 조용한 독립상영관의 환경을 단출한 인원의 관람객이 맘껏 누리며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큰 혜택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뒤옆 여러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 좀 더 몰입할 수 있고 집중력이 극대화되기도 한다는 장점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관람객이 없는 상황에서 독립극장이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오고, 이러다가 경영난에 시달린 끝에 독립극장이 문을 닫게 된다면 나 같은 독립영화/독립극장 마니아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위기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좀 더 명분 있는 걱정은, 이렇듯 재미와 의미가 공존하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소수의 상영관과 지극히 적은 관람객들에게만 너무 짧은 기간 동안 노출되고 잠시 존재했다가 정말 빠르게 금방 내려간다는 것에 크나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영화 한 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영화관계자들이 ‘피/땀/눈물’로 협업하고 영혼과 열정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넓게 노출되어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독립영화를 상영해 주는 독립극장이 계속 존재하고 있어서 다행이고, 그 덕분에 나 같은 영화취미자들이 참 좋은 혜택을 누리듯 편안하게 만끽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독립영화 만세! 독립극장 포레버! 를 외치고 싶다.
한편 엄마의 데이트 신청을 뿌리치지 않고 고맙게도 귀한 시간을 내어 이 다큐 영화를 함께 관람해 준 아들 덕분에, 백남준 예술세계의 근간이 되었던 그의 정신세계를 만들어 낸 백남준 삶의 이력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어 더욱 좋았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아들은 이 다큐 영화의 초입에 등장한 ‘김나율’ 도슨트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백남준이 한국 전쟁 직후에 도쿄로 건너가 도쿄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백남준은 일본에서의 미학/미술사 학사 졸업 이후로 당시 현대음악의 성지와도 같았던 독일의 뮌헨 대학원에 진학하였는데, 그때 음악 석사뿐만이 아닐 철학 석사도 취득하였다는 것을 덧붙여 말해주었다. 그렇게 백남준이 미학과 미술사, 철학, 음악 등을 두루 섭렵한 과정들이 그의 정신세계를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에 그만의 독특한 예술철학이 예술작품으로 구현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들아이의 설명을 통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영화관람 리뷰를 쓰면서 영화를 리마인드 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더 높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철없는 엄마 포지션으로 지치지도 않고 자꾸 들이대는 엄마가 성가실텐데도, 대부분은 시크하게 팽시키다가도 한 번씩 선심 쓰듯 응해주며 영화도 같이 봐주고 미술관 관람도 함께 가주는 내 영원한 짝사랑인 아들과 함께 관람하고 영화수다도 나눈 작품이라서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인상적인 메시지
✔제목은 주사위 던지기식으로 정하죠. 3개의 후보를 써넣은 종이를 돌돌 말아 고르는 거에요. 백남준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백남준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을 정하는 현장에서)
✔달을 발견했어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요.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은 달이에요. (백남준)
✔죽기 전에 해 볼 장난이 몇 개 더 있어요.(백남준)
✔나는 예술을 만들지 않아요. 예술이 나를 만들죠.(백남준)
✔죽는다는 건 미래가 없는 것이다.(백남준)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미래를 예견했던 백남준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시간이었고, 쉽지 않았던 작업 내내 백남준이 영감과 힘이 되어 주었다.(감독-아만다 킴)
✔놀라운 영혼의 소유자로 누구도 생각 못한 일을 해낸 백남준의 초월적인 삶의 방식을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느끼고 표현하려 했다.(내레이션-스티븐 연)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의 일대기를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선댄스 영화제)
✔미래를 예측한 거인 백남준의 다양한 초상이 담긴 완벽한 아트 다큐멘터리이다.(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백남준을 따라잡지 못했다.(텔아비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인터넷과 유튜브를 예견한 크리에이터 백남준에 대한 매혹적인 기록이다.(가디언)
✔예술보다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깊은 탐구와 찬사(POV)
✔흥분되는 미술사 입문서이자 논픽션 전기. 백남준을 더욱 알고 싶고 사랑하게 만든다.(로저 애버트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