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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Nov 20. 2024

[프롤로그]-<아무튼, 영화>

*영화는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입니다.

[프롤로그]-<아무튼, 영화>

♠영화는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입니다.     


【Prologue】     


♠영화는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입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강렬했던 내 인생 최초의 영화는 1982년 <이티-E.T.>였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다수의 대작을 남겨 인류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감독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였지요. E.T.는 SF(science fiction), 즉 20세기 공상과학 장르의 대표격인 미국영화로, 주인공 소년이 외계인 ET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빛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오르던 장면은 전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영화마니아라면 이견(異見)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80년대 초반에 제작된 영화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서간 기발한 발상과 뛰어난 상상력이 무척이나 세련되었고, 스토리 전개 방식과 서사 구조가 매우 탄탄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와 교훈적인 메시지/아름다운 영상과 감성적인 음악 등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단연 시대를 초월한 수작(秀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정하게 흘러간 세월 탓에 기억의 왜곡이 살짝 가미(加味)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E.T.의 개봉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저보다 두 살이 어렸던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꽤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시내 중심가 극장에서 영화 E.T.를 관람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부모님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바쁘셔서 어린 딸들을 데리고 극장에 함께 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던 듯합니다. 그 시절 웬만한 어린이들은 다 관심이 있었다고 할 만큼 당시 최고로 핫(hot)한 영화였으며,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꼭 봐야 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혔던 그 영화를 나도 기어이 관람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극장에 안데려가 주어도 어떻게든 이 영화를 꼭 보겠다는 씩씩하고 당돌한 용기로, 어린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집에서 꽤 멀었던 극장에 갔었습니다.

극장의 위치가 평소 익숙한 집 근처도 아니었고 버스를 타고 시내 번화가까지 나가야 했던 데다가, 어린 동생까지 데리고 가야 했으니 살짝 긴장되기도 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두려움 따위를 나는 모른다는 듯이 위풍당당하게 먼 곳 극장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고대(苦待)하던 그 영화를 무사히 관람하였습니다. 게다가 영화관람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햄버거까지 사 먹고 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참 겁도 없이 용감하고 과감했던 저 자신도, 그런 딸의 고집을 믿어주고 용돈을 쥐여주며 기꺼이 보내주셨던 부모님의 담대함에 대해서도 신기한 느낌마저 듭니다.      

ET는 식빵 같이 생긴 머리에 가느다랗고 긴 팔과 짧은 다리를 지닌 기형적인 외모가 어딘가 좀 이상하고 우습기도 하였지요. 주름투성이의 무서운 생김새는 말 그대로 외계인스럽게 참으로 이질적이었는데, 그 ET 인형을 끌어안고 놀았던 내 어린 날의 즐거웠던 한때가 지금도 스틸컷(still cut)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아마도 1983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이 영화의 열풍으로 ET 인형을 비롯한 각종 굿즈(goods)들이 유행하였습니다. ET 장난감/ET 연필꽂이/ET 책받침/ET 공책/ET 스케치북/ET 티셔츠/ET 신발/ET 이야기 카세트테이프 등 당시 어린이들의 생활권 곳곳에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최절정의 유행을 주도했던 존재가 바로 ET였을 만큼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었습니다.

영화 E.T.는 어디에도/누구에게도 의지할 데가 없이 외로운 외톨이 소년 엘리엇이 우연히 외계인 친구를 만나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했지만, 종국에는 이별의 아픔을 맞닥뜨리고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s)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통해 저 또한 정서적으로 성장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한창 철없고 해맑은 연령대의 초등학생이긴 했지만, 집안의 대소사와 직장의 일로 일상이 바쁜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린 동생에게 늘 의젓하고 믿음직스러운 언니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본능적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 시절 저는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은 성숙한 편이었던 듯합니다.

할 일 없는 날이면 집 앞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벌러덩 드러누운 채 뒹굴뒹굴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을 좋아했었습니다. 푸르른 하늘에 떠다니는 여러 모양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일종의 ‘멍때리기’를 했었던 것이지요. 당시의 저는 그 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린 듯한 망중한(忙中閑)을 경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포터블(portable) 카세트를 옆에 끼고서 잘 알지도 못하는 팝송과 가요 등 다양한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아름다운 음악 선율(旋律)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영화음악 테이프들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그때의 제 모습을 지금 회상해 보니 그 시절에 남모르게 즐겼던 나만 아는 빈둥거림과 멍때림의 시간만큼 저의 정서는 풍부해졌으며 내면도 조금씩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어린날의 이러한 감성적인 경험으로 인해 제 감정이 한층 더 섬세해지고 감수성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남다른 공감의 감정선으로 말미암아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관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예민한 감각이 오롯이 일깨워지는 순간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 덕분에 조목조목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전율(戰慄)과 감동(感動)을 느끼며, 인간과 삶에 대해 추상적으로나마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제 어린 시절 기억 속 가장 강렬한 추억의 영화인 E.T.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인공 소년 엘리엇이 외계인 친구 ET를 자전거 바구니에 태우고 달빛을 관통해서 하늘로 날아오를 때 깔린 배경음악이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이후로 그 음악을 듣게 되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바로 그 장면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영화음악을 통해 그 영화를 관람하던 그때의 위치로 회귀하게 되는 찰나(刹那)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영화음악의 힘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었던 듯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영화음악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그 작품을 관람하던 바로 그 시점의 그 순간으로,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듯 순식간에 이동하게 합니다. 우연히 스치듯 들리는 영화음악 선율(旋律)에서 영화의 장면과 메시지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그 영화를 관람하였던 그 당시 나의 모습과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극장 관람 영화인 E.T.는 한 소년을 통해 ‘상상하고 꿈꾸고 사랑하면서 함께 성장하라.’는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책과 영화를 망라(網羅)하여 성장 스토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제 개인적인 경향성은 아마도 영화 E.T.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영화의 감동은 당시 저의 영화 감수성에 깊숙이 스며들어 침착(沈着)되듯 작용하였고, 이후로 제가 영화의 매력에 빠져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선호(選好)를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그 영화로부터 받은 감동의 자연스러운 발현(發現)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렇듯 어린날 접한 책이나 영화는 한 사람의 정서적 틀을 만드는 데 일조하여 우리의 삶 속에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투영(投影)되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영상과 음악을 통하여 보다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으로 무의식 속에 각인(刻印)되는 영화는, 관련된 접점(接點)을 만나는 순간마다 타임머신을 탄 듯 그 영화를 관람했던 그때 그 당시의 그 시점으로 우리를 데려다줍니다.      


영화는 장르(genre)도 서사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수많은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은 끝도 없이 다채롭기만 하지요. 영화는 우리의 삶 자체와 그 삶 속의 삼라만상(森羅萬象),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irony)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가시적(可視的)으로 구현해 냄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영화는 인간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삶을 투영(投影)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는 다양한 인간들의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담아내어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면서, 간접 경험일지라도 가장 실감 나는 체험을 하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과 삶의 모순(矛盾)을 직시(直視)하게 하고 삶의 오만가지 희로애락(喜怒哀樂)도 느끼게 합니다. 또 영화의 서사와 그 속에 함축된 메시지를 자신의 삶과 상황에 대입시켜 성찰(省察)하게 하면서, 깨달음과 통찰(洞察)의 장(場)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갑니다.

어떤 현실은 영화처럼 비현실(非現實的)적이고, 어떤 영화는 현실보다 더 리얼(real)하며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영화는 현실을 보다 잘 투영(投影)할 수 있는 수단이며, 우리는 영화를 통해 현실의 민낯과 마주합니다. 그렇기에 차라리 외면해 버리고 싶을 만큼 불편한 진실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과 삶의 어쩔 수 없는 모순(矛盾)을 동시에 바라다보는 것이 영화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를 광범위하게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character)들은 가장 인간답기도 하고, 대단히 비인간적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을 영화 속에서는 밑바닥까지 사실적으로 구현(具現)해 낼 수도 있으니, 영화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가시적인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고, 아이러니(irony)로 가득한 삶과 저마다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인생을 직면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과 삶의 실체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소름이 끼칠 듯한 전율(戰慄)이 느껴질 만큼 큰 감동과 마음의 동요(動搖)를 일으킨 영화는 자신만의 특별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더욱이 현대의 영화는 영상(映像)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주고 음향(音響)으로 청각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것에 더하여, 현대에는 빠르게 진보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결과 3D는 물론 4D 극장까지 등장하였습니다. 3D 입체 영상을 내보내는 생생한 화면은 물론이고 특수 제작한 의자를 배치해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4D 영화관도 생겨났습니다.

극장의 좌석을 움직여서 땅이 바닥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을 주거나 바람/물/향기/연기 등의 효과를 통해 오감(五感/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자극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마치 관람객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효과를 내어 기존 3D 영화관보다 한 단계 진화한 형태의 상영을 하는 또 다른 모습의 영화관까지 우리 가까이에 성큼 다가온 마당입니다.

과학의 진보에 따른 영화 기술의 발달은 끝이 없어서 심지어 5D도 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영관에 들어간 관객이 의자를 돌려가며 사방의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360도 입체영상을 표방한 5D 영화관이 현재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관객들이 더욱 실감 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오감 자극의 다이내믹한 영화 상영관도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3D도 대단히 신기하다고 생각되었는데, 3D가 사그라들 때쯤 영화 제작자들은 한 발 더 나가 4D/5D로 넘어가는 수순(手順)을 밟고 있었겠지요. 그랬기에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영화기법을 경험하며 신세계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영화 상영관의 평면 스크린에 펼쳐지던 정통적인 상영 방식의 영화들을 관람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여전하며, 그 레트로 방식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전통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소중히 여기며, 과거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극장과 영화의 환경은 인간의 감각을 최대치로 자극하여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감정적인 동요(動搖)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한층 더 낼 수 있게 된 듯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고 깊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좀 더 테크니컬(technical)한 환경에 의해 보다 실질적이고 가속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듯이 영화가 이토록 빠르게 진화하는 면에서 부작용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인간의 순수한 본성(本性)을 고찰(考察)하기보다는 현란한 기법과 기술을 동원하여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영화기법의 기술적인 발전에 힘입어 영화 환경의 변화를 거쳐온 오늘날의 영화는, 빠르고 대중적인 접근성과 효과적인 전달력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더욱더 독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는 인간과 삶의 본질(本質)에 관하여 다양한 간접 경험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매우 훌륭한 매개체(媒介體)로써 우리 곁에 더욱 단단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판단과 선택을 요구받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생의 매 순간순간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되도록 최선(最善)의 결정을 하고자 노력하지만 어쩌다 보면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선택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한계에 봉착(逢着)하게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최악(最惡)만 피할 수 있어도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차악(次惡)의 선택이라도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잘 살아가고자 나름대로 애쓰는 과정일 것입니다.

일평생 공부하였으나 자신의 일생을 다 걸어 공부한 이유가 학문의 집대성(集大成)이었다기보다는 결국은 인생을 좀 더 잘살아보고자 했던 까닭이었다는 어느 노교수님의 칼럼(column)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인생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인생의 질문을 만들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끝없이 우왕좌왕(右往左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세상은 모순(矛盾)으로 가득하기만 하고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기만 하다는 것이,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고난도(高難度)의 과제와도 같은 삶의 딜레마(Dilemma)인 것 같습니다. 당장 처해 있는 문제들에 골치 아파하며 차라리 외면하거나 도망가 버릴까 하는 내적 갈등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해법을 찾아 애쓰며 동분서주(東奔西走)합니다.

어쨌든 언제까지나 그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며, 어찌하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더딘 속도일망정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지혜로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미완(未完)의 존재인 우리 인간이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죽는 날까지 공부해야 할 듯합니다. 더욱이 현대사회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체계가 등장하고 삶의 방식이 날로 업그레이드(upgrade)되는 상황에서 도태되지 않고 변화에 잘 적응해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과 삶에 대한 공부라는 것이 결국은 경험과 체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나름의 통찰(洞察)일 터인데, 한 개인의 삶에서 우리가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한된 직접경험의 저 너머에 있는 간접 경험의 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대표적인 수단(手段)의 하나가 바로 영화라고 저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한계치(限界値)를 뛰어넘어 간접 경험으로나마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기에 더욱더 의미롭습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공간의 허용치(許容値)를 넘어서는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에서 직접 겪은 인생 경험을 제외한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더라도 영화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인간과 다채로운 삶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또한 각 영화가 보여주고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message)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효용(效用)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영화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캐릭터(character)와 그 인물들이 겪는 인생 여정(旅程)/다양한 사건과 사고/삶의 의미와 철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며, 영화의 실제적인 기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는 너와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한 실재감(實在感)을 느끼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스크린을 통해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의 삶에서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고 낙담하고 감동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고통받고 행복해하는 갖가지 에피소드(episode)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삶의 아이러니(irony)를 가시적(可視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이 펼쳐 나가는 삶의 스토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의 본질에 대해 정면/옆면/뒷면/측면을 망라(網羅)하여 다각도로 조명(照明)해 줌으로써 각자가 처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인식(認識)하게도 하고, 당장의 상황에 매몰(埋沒)되어 보이지 않던 지금 저 너머의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한 영화가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유의미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을 좀 더 잘 이해해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공감(共感)과 감동(感動)을 불러일으킵니다. 반면 또다른 어떤 영화는 너무 가볍기만 한데다가 그저 그런 킬링타임(killing time : 시간 죽이기)의 용도일 뿐 남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살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마다 현실을 잠시 off하고 나만의 동굴로 숨어버리듯이 극장을 찾곤 하였습니다. 그때 만났던 영화들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극장과 영화로부터 받은 휴식과 위로의 시간은 분명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영화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느끼며 사색(思索)하게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삶을 좀 더 입체적으로 고찰(考察)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모든 영화는 의미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졸작(拙作)이든 망작(亡作)이든 명작(名作)이든 수작(秀作)이든 장르(genre)가 어떤 영화이든지 간에 그 작품 자체로써 분명한 기획 의도가 존재하고 있으며 주제를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 나름의 대단히 의미롭고 충분히 가치있는 담론(談論)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영화는 각각의 훌륭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영화는 그 창작과정이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면이 특징적인데, 저는 이 점을 여러 예술 장르(genre)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요소로 꼽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느낍니다. 한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며, 각 분야의 다양한 요소들이 협업(協業)한 결과물이라는 데에 그 특별한 가치를 더 크게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학/음악/미술작품을 비롯하여 많은 예술 장르의 작품은 작가 개인의 열정과 시간을 투입해 오롯이 홀로된 고독 속에서 처절하게 고뇌하며 몰입하고, 예술가의 영혼을 갈아 넣은 끝에 창작된 결과물로써 탄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작가 혼자만의 개인기로 완성해 낼 수 있는 작업영역이 결단코 아닙니다.

물론 재능이 많은 어떤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서 메가폰을 잡고 출연 배우로 등장하는 등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아울러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망라(網羅)하여 감독이 영화 창작의 대표자이기는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음악가/연기자/각 분야의 스텝/제작자/투자자/배급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맡은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가운데 모두가 단일한 목표로 한데 어우러져야만 한 영화가 완성되어 세상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 모든 요소들이 원활하게 협동하고 균형을 맞추어 조화로운 하모니(Harmonie)를 이루어 낼 수 있을 때, 완성된 작품이 탄생하여 우리 관객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뜻깊은 지점입니다. 이렇게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면은 그 자체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제작과정에서는 각자의 강한 개성을 지닌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서로 부대끼는 가운데 인간과 삶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함을 경험하며, 찌그럭거리는 갈등과 갖가지 잡음을 극복해 나가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고난도의 여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 지난(至難)한 과정 속에서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아 작업을 진행해 나가야 하고, 영화의 완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렇듯 쉽지 않은 일련의 협업 과정을 그대로 투영하는 협동예술이 바로 영화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화는 참 대단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삶의 아이러니(irony)가 궁금하다면 ‘아무튼,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당장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겹기만 하여 깊게 공감하거나 인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속 시원하게 정답을 찾을 수는 없을지라도 시간이 해결하는 일들도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껏 반백(半百)살이 넘도록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은 제 나름의 경험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사를 겪으면서 나약한 인간이기에 괴로워하였고, 피할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하고 감당해 내야만 하는 통과의례(通過儀禮)와 같은 일들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오해(誤解)와 몰이해(沒理解)에서 비롯된 실수를 하기도 하였고, 뜻밖의 반전(反轉)에 깜짝 놀라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삶은 본디 아이러니(irony)로 가득 찬 것일까?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토록 무례(無禮)한 것인가?

왜 이다지도 이치(理致)에도 도리(道理)에도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세상에는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 일들이 일어날까?

과연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인과법칙(因果法則)이 있기는 한 것일까?

광활한 태양계의 티끌만큼이나 작고 미약(微弱)한 내가 존재하듯, 어느 행성에는 외계 생명체가 실존하고 있을까?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性惡說)인가? 성선설(性善說)인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상황은 무엇?     


끝을 알 수 없는 의문과 궁금증이 밀려오면서 생각이 생각을 잡아먹어 버릴 정도로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irony)가 궁금할 때마다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책과 영화라고 저는 믿습니다.

특히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세상의 모습을 좀 더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영상예술인 영화인 듯합니다. 동영상에서 구현(具現)되는 인간과 삶의 실체와 본질에 관한 객관화된 모습들을 관망(觀望)할 수 있는 무한대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크나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경험한 바 있겠지만, 저 또한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삶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영화 속 배우가 말한 어떤 하나의 대사가 마음에 콕 박혀서 커다란 감동을 받아 내 상황에 대입해 본 적도 있었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한 장면에서 힐링을 받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아이러니(irony)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나기도 하였고, 좀 더 폭넓고 유연한 시각을 키워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지식한 생각과 편견이 조금씩 수정될 수 있었고, 현실에서 어려워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 포기하거나 수용하기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나름의 기준과 감각으로 최선(最善)과 차악(次惡)의 선택을 하며 다양한 도전을 해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삶의 균형점을 맞춰나가게 되었던 듯합니다. 영화에 얽힌 이러한 추억들이 바로 영화를 통한 직/간접 경험과 깨달음의 과정이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는 삶의 통찰(洞察)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했던 과거에 비해, 어느덧 의식주 해결을 넘어서서 정신건강을 챙길만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시대를 살게 된 것은 분명 크나큰 축복입니다. 정치/경제 이외에도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확대되어 나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예술이 생활이 되는 환경이 우리 삶의 현장 곳곳에서 조성되고 있어서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짐작하건대 우리 평범한 소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 중 대표적인 장르(genre)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사는 곳이 어느 지역이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영화관이 위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극장에 나가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대단히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접근성에 있어서도 영화의 큰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대비하여 비교해보자면 뮤지컬/오페라/연극 무대를 찾는 것에 비해 인근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보다 수월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multimedia contents)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인 각종 OTT(Over-the-top)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기에,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쉽게 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매우 편리하게 조성된 영화 환경입니다. 이러한 접근성과 대중성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인 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소통과 힐링(healing)의 여러 방법 중에서도 그다지 부담스러운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큰 대가(代價)를 치루지 않고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지극히 대중적인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부와 권력/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 접근성을 차별받지 않으며, 본인이 원한다면 영화를 누릴 기회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 바라는 대로 마음껏 향유(享有)할 수 있다는 공평성을 지닌 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이렇듯 접근성에 있어서 그다지 높은 허들(hurdle)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누구나가 영화관람을 통해 다양한 삶의 과정을 관통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洞察)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며, 선택된 특정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아닙니다. 소정의 영화 관람료와 다소의 시간만 투자할 수 있다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상황 등 자본주의 구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쩔 수 없는 수직적인 위치를 뛰어넘어 가장 수평적으로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취미활동이 바로 영화입니다. 이렇듯 영화 취미는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도 아닌 데다가 스스로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삶의 통찰(洞察)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기회입니다.

    

삶의 아이러니(irony)에 대한 궁금증들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가시적으로 풀어주고, 상상 속에서나 펼칠 수 있을 법한 비현실적이고 난해한 생각들을 다양한 영화적 기법과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의 실제적인 활동 장면으로 스크린을 통해 구현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물론 영상을 통한 서사의 전개를 관람한다는 면에서는 간접 경험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에 몰입한 관람객들에게는 마치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부여하여 매우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영화에 몰입해 관람한 후 작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message)를 잘 이해하게 되고 깊게 공감할 수 있다면, 그 감동은 우리의 의식 저 너머의 무의식 속에서도 크게 작용하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공감과 감동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사고하고자 애쓰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삶의 통찰(洞察)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작품에 대한 감동은 물론 인간의 본질과 삶의 실체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의 이치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깨달아 나갈 수 있는 계기를 영화를 통해 맞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라는 것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듯한 내러티브(narrative)를 영화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으며,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태양계의 우주 공간조차도 어렵지 않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듯하면서도 나름의 개연성(蓋然性)을 갖고 전개해 나가는 장르(genre) 영화의 독특함은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상상력을 북돋아 줍니다. 현실에서 이루기 어렵거나 쉽게 누릴 수 없어서 욕구불만인 부분들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고, 인간의 능력 밖인 신의 영역에 대해 도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합니다. 광활한 우주에 대해 탐구해 보면서 지금보다 조금 더 진일보(進一步)한 미래로 한 발을 더 내디딜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가능한 것도 바로 영화입니다.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선호도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견해이기는 하겠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시나리오에 의해 탄생한 논픽션(nonfiction) 영화와 다큐(documentary) 영화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통찰력(洞察力)을 키워준다고 생각합니다. 실화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개연성(蓋然性)이 충분하게 뒷받침되는 논픽션/다큐 영화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서, 보다 현실적인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삶의 통찰(洞察)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주인공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자신의 현실적 삶에도 대입시켜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성찰(省察)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시련을 맞닥뜨렸을 때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스스로 유연하게 고치게끔 만들어 준 것도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직/간접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특별하고 의미 있는 기회를 다각도로 제공하는 것이기에, 영화 취미는 책 취미 못지않게 유의미하고 행복한 활동이라는 것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언장담(豪言壯談)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취미생활이자 여가활동의 일환(一環)으로 책모임을 즐기는 것과 함께 영화모임도 병행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해 왔습니다. 그랬기에 2024년 1월 북에세이(book essay)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어쨌든, 책]을 발간한 데 이어 이렇게 영화 에세이(movie essay)를 모아 (삶의 아이러니가 궁금하다면) [아무튼, 책]으로 출간하게 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독서 활동에 있어서 책장을 열어 혼자만 읽고 완독 후 책을 덮어버리는 것을 끝으로 종결한다면, 기억에 남는 것이 미약(微弱)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들이 태반(太半)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책친구님들을 만나 교감하고 다양한 감상을 나누면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책모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영화 또한 그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토크와 독서토론 모임을 통해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점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기회 속에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을 한껏 누렸듯이 영화모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모임도 책모임과 결을 같이 하는 공감과 소통의 활동이었습니다. 같은 영화를 관람하고도 크게 다가온 사건이나 특별하게 느껴진 메시지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거나 주목하게 되는 캐릭터(character)/배우/장면 등이 제각각이라는 점은 참 흥미로운 현상이었습니다. 아마도 영화모임 회원님들이 지닌 개별적인 삶의 경험에 따라 특히 크게 다가오는 지점이 달랐을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fan心)까지 보태어져서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현상은 뜻밖의 재미를 몰고 오기도 했습니다.

영화토론을 하다 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와는 성향이 다르거나 생각의 각도가 굴절된 사람은 매우 흥미로웠고, 뭐라도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과의 소통에서는 공감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재미있고 즐거운 공감과 소통의 과정이었습니다.     


한편 책모임은 각자가 개별적인 독서를 한 후에 만나 책수다를 나누게 되므로 책을 읽으며 밀려든 감동과 감흥을 조절할 시간차가 생기게 마련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영화는 영화 친구님들과 극장에서 만나 동 시간대 한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티타임(tea-time)을 겸한 영화토크(movie-talk) 시간을 이어가게 되므로 영화의 생생한 감동을 그대로 안고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좀 더 실시간으로 살아 있는 감정선을 유지한 채 영화감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까닭에 보다 생동감 넘치면서 순수하고 솔직한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영화모임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현장감은 뜻밖의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줍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이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일상생활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게 됩니다.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는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적절한 가면을 장착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일 텐데요, 방금 관람한 영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즉흥적이고 솔직한 날것의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다 투명하고 진실한 대화가 가능할 수 있었으니,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 영화를 떠올릴 때면 영화토론을 함께 나누었던 회원님들이 내어놓았던 속 깊고 진솔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행복한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공통 관심사의 중심에 놓고서 영화 친구님들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교감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활동은 온전한 내 삶을 찾아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균형 잡힌 통찰(洞察)의 순간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모임과 영화토론은 분명 가치로운 취미활동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영화 에세이 모음집 (삶의 아이러니가 궁금하다면) [아무튼, 영화]는 제가 평소 브런치 계정에서 발간했던 영화 리뷰(movie-review)들 중에서 선택한 15편의 영화감상 에세이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 친구님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티타임(tea-time)을 이어가며 신나게 영화 수다(movie-talk)를 나누었을 때 오고 갔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함께 영화감상을 나누다 보면 자신이 놓친 부분을 재발견하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 수다 현장에서는 특별하고 주옥같은 내용들이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대화에 묻혀 곧바로 휘발되어버리는 그 일련의 대화 내용들을 속기로 적어서 온전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토크 현장에서 토론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기록과 메모를 병행하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은 일이었고, 영화 수다 내용의 범위와 분량이 방대하여 일일이 글로 정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영화모임을 할 때마다 토론참여자가 매번 고정적이기보다는 각자의 시간과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였던 회원님들의 특성상, 협업하여 공동집필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의 개인적인 영화 에세이만을 모아서 개별적인 책으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기록덕후의 면모가 있었던 덕분에 영화의 여운(餘韻)이 채 가시기 전에 영화리뷰/영화에세이를 작성하고, 저의 브런치 계정에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간 축척된 기록을 모아서 이 영화 에세이 모음집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과 효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평소 사심(私心) 가득한 팬심(fan心)을 갖고 있는 저의 최애(最愛) 작가 중 한 사람인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가 그의 에세이(essay)에서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용어를 언급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 연결 선상에서 생각해 보면 책이 그러하듯 영화 역시 시간이 지나면 내용도 잊어버리고 주인공과 주요 메시지도 뒤죽박죽되는 일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느덧 50대 중년의 갱년기에도 ‘아무튼 쓰는 사람’을 지향(志向)하는 저에게는 중년의 건망증이란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총기와 글발이 나름 꽤 괜찮았던 젊은 날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깜빡깜빡 수준을 포함하여, 망각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게 안타까운 제 현주소임을 자백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영화 친구님들과 ‘함께관람’하고 ‘영화토크’를 나눈 작품들은 좀 더 뚜렷하게 제 기억의 심연(深淵)에 남아 있습니다. 영화를 혼자 관람하고 그냥 넘어가기보다 누군가와 영화감상을 함께 나누는 것은, 영화에 대한 감동을 공유하면서 다채로운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영화토론 시간을 가졌던 작품은 좀 더 명확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영화리뷰를 작성하면서 영화에 대해 다시 한번 리마인드(remind)하며 정리하고 곱씹어 보는 홀로된 시간을 갖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한 일인 듯합니다.

더욱이 영화 리뷰 성격으로 작성한 영화 에세이를 제 브런치 계정에 발간하였을 때, 그 글을 읽어주고 라이크잇(Like It)을 눌러주며 공감 댓글도 달아주시는 구독자님들과의 소통은 저에게 또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영화를 매개로 한 활동은 많은 장점이 있고 여러모로 효용(效用)이 있는 소중한 취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혼자서 영화관을 찾아 홀로 영화를 관람했던 많은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오롯이 홀로인 나만의 시간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면 방금 관람한 영화 이야기를 함께 나눌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던 순간에 영화의 감동과 감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수다 욕구가 올라왔던 과거의 그 어느날에, 소소한 책/영화 커뮤니티(community)를 즉흥적으로 개설했던 것이 제 영화모임의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이후로 좀 더 풍성한 영화 취미활동을 향유(享有)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화관람과 영화모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하는 영화 관련 취미활동을 경험해 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은 혼자서도 물론 좋지만, 함께라면 더더욱 즐겁고 흥미로운 영화 추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린 날 극장에서 만났던 영화 중 뚜렷한 첫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 E.T.로부터, 어느덧 50대 중년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간 만났던 영화들과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영화들을 생각해 봅니다. 영혼을 갈아 넣어 훌륭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데 온 열정을 다 바치는 영화 창작자들을 비롯한 영화 관련 모든 분야의 종사자들 덕분에 풍요롭고 행복한 영화 취미활동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영화모임에서 만나 의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며 즐겁게 소통하였고, 좋은 인연을 맺으며 추억을 공유하게 된 영화 친구님들께도 호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탄생할 다양한 장르(genre)의 영화의 개봉과, 그 영화들을 함께 즐길 영화 친구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고대(苦待)하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영화라는 참 좋은 매개체를 통해 재미와 의미가 충만한 취미활동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영화 친구님들을 만나 긍정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영화모임 활동을 기회가 될 때마다 꾸준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누구든 삶의 아이러니(irony)가 궁금하다면 ‘아무튼, 영화’를 즐겨보시라고 권함은 물론, 영화와 함께하는 취미생활을 강하게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이 영화에 관한 저의 개인적인 소회(所懷)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의 기록이기는 하겠으나, 보태어 영화가 주는 기쁨과 효용(效用)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은 매개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활동과 보잘것없는 글쓰기를 항상 응원해주었고, SF(science fiction)나 추리물/액션/공포 등 제가 평소 관심이 덜하고 다소 생소한 장르(genre)를 다양하게 접하게 해주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쾌하고 스마트한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인 남편 민** 씨와, 어떤 분야의 무슨 주제로 대화를 나누든 시의적절(時宜適切)하고 폭넓은 지식으로 중년의 엄마를 항상 새로움/놀라움에 눈뜨게 만들어주는,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센시티브(sensitive)한 아들 민** 군에게 친애하는 마음과 고마움의 뜻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2024년 10월, 그리너리 라운지 푸른도서관에서

                                                                   김선(金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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