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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Oct 03. 2021

[일상의 단상]-<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읽는것은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가는 행복한 여정이다.*

[일상의 단상]-<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가는 행복한 여정이다.*


영원히 물러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어느날 부터인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아침공기에 밀려 뒷걸음질 치듯 사라져 갔다. 여름내 겉어차여서 발밑을 겉돌던 이불을 새벽녁에는 끌어다 덮게 되었고, 아침 저녁으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날은 뭘 해도 참 좋은 시기이지만, 하늘빛도 맑고 높은 하늘 위로 갖가지 모양의 흰구름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봄여름내 푸르름이 넘쳐나던 나무들에 어느덧 단풍이 깃든다. 두 뺨으로 머리카락을 드리우며 부드럽게 살랑거리다가 때로는 거세게 밀어내듯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이 떨어져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뭔지 모를 쓸쓸함이 감도는 센치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그런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책 한 권을 들고 편안한 장소를 찾아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책 속에 빠져 들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는 그런 가을날을 흔히들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가을은 기후로나 정서적으로나 책읽기에 안성맞춤인 아름다운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도 책읽기에 더욱더 매진할 수 있는 가을날을 맞이하고자 노력하고 싶어진다.


문득 책모임 친구들과의 티타임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던 그 어떤 가을날의 화두가 생각났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

누구는  속에 길이 있으니 책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고 하였고, 누구는 각박한 현실에서 멘탈 부여잡고 살기 위해  속으로 잠시 현실도피를 한다 하였고, 누구는 내가 가진 가치관과 생각을 복잡다단한 세상사에 휘둘리며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하였고, 누구는 책을 읽어도 읽어도  모자란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읽는다 하였다.

이렇게 책을 읽는 이유가 백인백색이듯 다양하고 색다른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친구들은 책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었기에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꾸준히 독서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책모임 멤버들 중에 학창시절 학교의 생활기록부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취업을 위해 작성했던 이력서에 이르기까지 '취미와 특기'란에 '독서와 글쓰기'라고 적었던 일이 있었던 친구들이 적지 않을듯 하다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본인이 원한다면 개개인의 다채로운 개성이 반영된 다양한 취미생활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향유할  있지만 '' 좋아하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책친구님들을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책읽기' 예나 지금이나 가장 쉽게 접근할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있다. 어떤 취미를 갖든 '장비'라든지 '규칙의 사전숙지' 해야 한다든지 어떤 면에서든 준비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독서를 하는 것에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치 않다. 더욱이 요즘 우리 사회의 도서관 시스템은 얼마나 훌륭하던지,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지자체의 '중앙도서관'에서부터 동네 골목길의 '작은도서관'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도서관 인프라는 단연 최고!이고, 마음만 있다면  혜택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누릴  있으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행복감이  없지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을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와 독특한 독서습관, 그리고 독서후 나름대로 의미를 남기게 되는 독후활동 등도 다양할 것이라서 '' '독서'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확장된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그런 대화를 통해  사람의 경향성과 성향을 짐작하게 되기도 하는데, 나처럼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노안이 시작된 불편함에도 불구하도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꾸준히 독서를 즐기는 분들은  자체로써 '독서' 취미생활로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단정지어 말해도 무리가 없을듯 하다.


이른바 '주입식 교육' 익숙했던 예전의 학교시스템에서 성장했던 우리 중년의 나이대에서든, 다양성과 융합을 지향하는 현재의 교육풍토에서든 변함이 없는 것은 시험과 입시를 향한 공부로써 책을 읽는 것은 분명 고단하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일례로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필독도서인  책을 쫓기듯 읽는 시간과,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또는  책에 궁금증이 생기고 이끌려서 자발적으로 읽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학생 시절에 학교공부를  챙겨가면서 좋아하는 책들을 찾아 읽는다는게  어렵다는 것을 /간접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10 시절에 만난 책들은 자신의 정서에 부지불식간에 녹아들어서 일생을 관통하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 되기도 하는 만큼, 학생 시절에   편안하고 여유로운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만날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 시험공부를 위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이 오로지 책이 좋아서, 책읽는 시간을 즐겨서 내가 선호하는 책을 찾아 읽을  있는 현재의 상황에 문득 행복감을 느낄때가 있다.

독서를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들어 몰입하게 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듯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맛보게 되는데, 좋아하는 책과 더불어 그렇게 오롯이 혼자만의 세계로 깊게 들어가 책 속에서 건져올린 의미로운 구절이나 맥락에 감동받고 공감하며 뭔가 가슴 가득히 충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러던 중에 책모임의 즐거움을 추가로 알게 되었고, '혼자하는 독서'를 확장시켜 '함께 나누는 독후활동'의 묘미를 깨닫게 되면서 책모임을 꾸준히 이어나가며 책수다를 즐기게 되었다. 사람마다 그간 살아온 인생여정이 다 다르며, 삶의 경험과 가치관이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책을 읽고도 크게 다가오는 지점이 다 다르며 생각과 느낌이 참 다양하다는게 흥미롭기만 하다.

책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독서를 즐기든, 책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의무감에서 책을 읽든 간에 상관없이 어쨌든 일상 속에서 책을 읽는 책친구님들과의 모임 자리에서였기 때문이었을까? 티타임의 화두가 되었던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논제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나 책에 대해 갖고 있는 가치관들이 참 다양하게 나왔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각자가 달랐지만 서로 다른 생각의 접점으로 분명해진 것은, 책을 혼자만 읽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읽고 생각을 서로 나누면 그 책이 좀 더 특별해지는 기억으로 좀 더 의미롭게 오래 남고 책을 읽는 긍정적 효용에 있어서 더 크게 시너지가 생기면서 의외의 행복감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성인의 독서는 학점을 따기 위해서라든지, 본업처럼 직접적인 이익으로 돈이 생긴다든지, 책읽기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든지 하는 등의 억지로나 당위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발적 의지로 책을 찾아 펼쳐 읽고 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모임에도 참여하시는 능동적인 분들이시다. 책에 대한 이런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삶의 활력이 될 것이다.


갑자기 그 유명한 '공자'님이 말씀하셨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아는척'을 하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고 그래서 그 독서가 요란하고 시끄러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혼 없는 지식의 나열로 기쁨을 느끼는 그런 분들은 얼핏 겉보기에는 똑똑하고 대단해 보일지는 모르나 진정으로 독서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아닐 것이며 어쩌면 그의 책읽기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을 해본다. 오히려 책 속의 지식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뽐내기와 잘난척에 빠져 사느라 자신만의 진정한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꼭 세상 이치를 깨달은 '공자'님과 같이 '성인'에 가까운 인생통찰을 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논어'의 저 구절이 의미하는 것을 우리 모두 잘 깨달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더라도 그 공부가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면 어쩌면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즐기는 단계까지 가게 되면 그 행복감이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 향유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어린 학생들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마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역할을 너무 성실하게 잘 수행해 내느라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기회가 없었고, 자신이 본능적으로 하고 싶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기에 어쩌다보니 자신의 고유성을 놓쳐버리고 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토록 여유없고 바쁘게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현실인데,  안에서 끊임없이 질주하는 듯한  속에서 어느 시점에서는 브레이크를 걸고 멈추어 서서 자신으 되돌아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린날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살면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속의  구절에서 힘을 얻기도 했었던  같다.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등한시한 시간들도 많았지만, 내가 언제든 책을 찾아 손안에 넣고 펼쳐들면 마음의 평안함을 선물처럼 안겨주는 고마운 존재가 바로 책이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은 여정이고 나역시도 휘돌아치는 듯한 인생 여정 속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내느라 내가 원했던 '문인'  속으로 들어가게  만큼 일관되게 책과 더불어  수도 없었다. 돌고돌아 방황하듯 현실적인 삶을 살아내다가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른 지금은 취미생활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책과 영화, 글쓰기'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고 일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미들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분명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면서 나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고 말할  있을것 같다. 다만, 노안이 오기 시작했고 체력이 예전만 못해 오랜시간 책을 붙들고 있거나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생물학적 노화를 체감하게  나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끔 현실감이 좀 떨어져 보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들에 올인하는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는데, 세상의 잣대에서 과감하게 고개돌려 버리고 현실적인 제약과 어려움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잘 이겨내면서 본인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잇는 것을 찾아 온 열정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 중에서 '교사, 공무원, 경찰...' 그런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느라 너무도 짧기에 더욱 아름다운 젊은날을 시험공부 하느라 책상에만 앉아 있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하고, 젊은 날에 수험서가 아닌 양질의 책들을 많이 읽고 자신의 타고난 고유성을 잃지 말고 잘 발견하여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즐기면서 찬란한 젊음을 투신하는 청춘의 나날을 살아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 풍파에 흔들거리며 고난의 순간에 봉착  때에는 자기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를 망각해 버릴 만큼 자신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잣대에 맞추어지면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면 심리적으로 소진되어 버리면서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내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삶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실마리를 찾는 일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살면서 여러번 깨달았다. 물론 책이  세상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에는 여러가지 길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인생을 살아내면서 미숙하지만  발자욱씩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 그리고 세상사에 치이고 지쳐  때에는 다시 원래의 자기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을 책은 가르쳐 준다. 사람마다 개인적인 선호도와 가치관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양하기에 행복을 느끼는 척도 또한 제각각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책읽기의 즐거움' 아는 사람이라면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으로 가는 다양한 길들을 찾아낼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동반하기에 책읽기를 즐길  있다면   차분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 나갈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덧 반백의 나이에 이르게 되어 노안이 오기 시작하였고 집중력도 예전만 못한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는 것에 상관 없이 새로운 책을 만나는 순간의 묘한 설레임과 책을 읽고 난 이후의 가슴 벅찬 감동은 분명 나 자신을 늘 새로움, 놀라움에 눈뜨게 하고 영혼을 깨어있게 만든다. 그렇게 내 삶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이 '독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앞으로 남은 노후의 삶 속에서도 늘 책과 함께 동반하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다. 부디 독서를 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늘 변함없이 책읽고 토론하는 즐거움을 향유하는 노년의 여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불현듯 소설가 '황순원'님이 책에 대해 언급한 한 마디가 떠오른다.

'되읽고 싶은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거기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가는 행복한 여정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짬나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책 속에서 발견한 의미로운 한 구절을 음미하는 자신만의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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